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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선 Nov 16. 2023

꽃의 철딱서니

올해 날씨가 따뜻해서 좋았다. 요즘 가끔 추운 날도 생기면서 곧 겨울이 올 것을 암시하고 있지만, 작업실 베란다에 핀 꽃들은 나를 닮아 철딱서니가 없는지, 아직도 풍성하고 황홀하게 계절을 잊고 피어있다. 사피니아는 봄부터 내내 한결같이 꽃을 피워 내 곁에 있던 소중한 친구들이다. 추위가 오기 전에 서서히 꽃과 가지가 시들면, 인터넷에서 본 대로 뿌리만 남기고 실내 창고에 잘 보관해 보려고 했는데, 초록색 잎이 무성하게 더욱더 큰 꽃들을 피우면서 철 모르고 퍼져있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며칠 전 추운 밤도 잘 견디고 다음날 작업실에 가보면 나를 좀 보라는 듯이 더 큰 꽃을 피워대고 있다. 무성해진 꽃을 옮길 실내 공간도 없고, 화원에 갖다 주어도 좋아할지 모르겠고, 어쩔 줄 몰라서 마냥 바라보고만 있다. 그렇다고 추위가 오지 않는 건 아닐 텐데, 그렇다고 꽃과 가지들을 몽당 자르는 잔인한 짓은 하지 못할 것 같고, 오늘은 눈 딱 감고 가지를 정리해서 들여놔야겠다고 생각하고 베란다에 나갔다가도 한없이 예쁘게 피어있는 꽃잎과 하늘만 번갈아 멍하니 쳐다보고 들어왔다. 추위가 며칠만 늦게 왔으면 좋겠다. 그 안에 꽃들과 계속 함께 살 궁리를 좀 해봐야겠다.


꽃들에게 말한다.


'꽃들아, 나를 보고 해맑게 활짝 웃고 있으니 내가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 사실 나는 너희들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오늘 없앨까 내일 없앨까 하고 생각하다 나만 따뜻한 곳에 들어오는 무섭고 잔인한 존재란다. 내 등 뒤에는 커다란 가위가 있단다. 아이구, 미치겠구나! 너희들을 어떻게 하지?'


사랑한다는 건 책임이 따르는구나. 그리고 치석처럼 마음에 떨어지지 않는 돌이 쌓이는 것과도 같은 건가 보다. 나는 꽃들과 정이든 것 같다.


현재의 사피니아ㅜㅜ 황홀할수록 나는 슬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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