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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래몽상가 Oct 27. 2022

하얼빈 (김훈, 2022)

31살 청년 안중근의 삶의 무게감을 느끼며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그 내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토 히로부미(이하 ‘이토’)를 하얼빈역에서 저격한 31살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다. ‘칼의 노래’등 우리에게 너무 잘 알려진 김훈 작가의 작품이다. 저자는 대학생 시절부터 안중근의 이야기로 책을 쓰고 싶어 했다고 한다. 그러나, 안중근 의사의 삶의 무게감에 압도되어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김훈 작가는 이토 히로부미(이하 이토로 부르기로 한다)를 저격하기로 한 이후부터 여순 감옥에서 수감되어 있는 청년 안중근에 철저하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토를 저격하는 장면이 생각보다 일찍 등장하고, 오히려 여순 감옥에서 조사를 받는 과정이 더 상세히 소개되고 있다. 책을 읽는 동안 인간 안중근의 삶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기 위해 중간중간 안중근 관련 다큐멘터리도 찾아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훈 작가의 간결하면서도 속도감 있는 문체로 인해 생각보다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얼빈 (김훈, 2022)

 독서는 끝을 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중간에 멈추기 위해서 하는 지적 행위다”라는 김종원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하얼빈>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읽어가려고 노력하는 동안 나를 잠시 멈추게 했던 장면들이 매우 많았지만, 다소 충격적이었던 멈춤의 장면들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중 두 가지 장면만 소개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장면은 안중근이 실제로 이토의 얼굴을 잘 몰랐다는 사실이다. 만약 내가 안중근이었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라는 물음이 떠오르자 잠시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나라면 좀 더 인상착의에 대해서 알아보고 신뢰할 만한 정보를 기다린 후에 행동에 옮겼을 것이다. 그러나, 청년 안중근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어쩌면, 조선이라는 나라에게도 그럴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안중근의 원래 이름은 안응칠이라고 한다. 배와 가슴에 검은 점이 일곱 개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데, 워낙 성질이 가볍고 급해서 그런 성격을 억누르는 의미에서 형제들의 돌림자인 뿌리 근(根) 앞에 무거울 중(重)을 붙였다고 한다. 절대 지체할 수 없는 역사의 시간과 성미 급했던 안중근에게 이토를 죽이고 대한민국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은 그렇게 안중근을 하얼빈으로 이끌었던 것이었다. 


 두 번째 장면은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라는 엄청나게 무거운 결심을 너무도 가볍게 하는 장면이다. 이토가 하얼빈으로 온다는 소식을 신문을 통해 듣고, 안중근은 권총 한 자루만 챙기고 무작정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난다. 거기서 만난 우덕순에게 자신이 왜 찾아왔는지 어떠한 설명도 없었다. 둘의 대화는 대략 이런 식이었다. ‘이토가 하얼빈에 온다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겠소?’‘죽여야죠’ ‘그럽시다.’ 정도의 짧은 대화를 나눈 채 둘은 다음날 바로 하얼빈으로 향했다. 안중근은 고작 7발이 전부였고, 우덕순은 총도 없었다고 한다. 


 세 번째 장면은 이토의 치밀함이 전해지는 당시의 만주 사찰 장면들이다. 이토는 일본의 조선 침략과 지배를 민중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하려고 언론을 기가 막히게 잘 활용했다. 그야말로 정경유착의 거의 끝판왕이다. 이토는 순종과 함께한 순행길에서 사진사에게 사진의 구도 등을 미리 알려주면서, 최대한 일본의 발전된 문명이 강조되고 조선의 미개함과 무력함이 느껴지도록 의도했다. 


 네 번째 장면은 안중근의 둘째 아들인 안준생이 박문사(博文寺)에서 이토의 아들 이토 분기치에게 눈물의 악수를 청하며 사죄하는 장면이다. 처음에는 너무 분한 생각이 들었다. 김구 선생이 안준생을 민족 반역자로 규정하고 처단해야 한다고 했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만약 내가 안중생이었다면?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잠시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가라앉지 않던 분노의 감정은 책의 후기 부분에 짧게 소개되는 안중근 처형 이후 남겨진 가족들의 소식으로 인해 숙연해졌다. 어머니 조성녀(세례명 마리아) 여사는 상하이로 이주해 위암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독립운동을 하셨다고 한다. 장남 안분도는 지나가던 행인이 건네준 과자를 먹고 1910년 7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차남 안준생은 살아남았지만, 변절자라는 오명에 평생 시달리며 숨어 살다가 1951년 덴마크 국적의 병원 선내에서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부인 김아려 여사(세례명 아그네스)는 자식(2남 1녀)들과 함께 힘겹게 살다가 광복 후 귀국하였다. 


 책을 읽으면서 애국심에 불타오르거나 일본에 대한 증오감은 솔직히 많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가 잊지 말아야 세 가지 의미가 가슴에 남았다. 첫 번째는 이토가 사망한 시각과 안중근 의사의 사형이 집행된 시각이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를 저격한 시간은 1909년 10월 26일 오전 09시 30분이었고, 이토가 사망한 시각은 30분 뒤인 오전 10시였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의 사형이 집행된 시간은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였다. 이토가 죽은 시간과 안중근의 사형이 집행된 시간이 같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일본이 꿈꾸던 패권주의는 김훈 작가의 주장처럼 약육강식의 세계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동양평화론을” 주장하며 일본 제국의 잘못된 세계관을 세상에 알리기 위했던 한 개인에 대한 국가의 복수가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하얼빈이 이 책에서 갖는 의미이다. 김훈 작가에 의하면 집필 당시 책의 제목은 <하얼빈에서 만나자>였다고 한다. 하얼빈으로 향하는 세 명의 기구한 운명을 제목에 함축적으로 담고자 했던 것이었다. 그 세 명은 바로 이토, 안중근, 그리고 안중근 의사의 아내 김아려 여사다. 이토는 조선총독부 통감(統監)직을 후임자에게 인계하고 고별 순시처럼 자신이 기획했던 일들이 구현된 현장을 돌아보며 하얼빈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얼빈이 자신의 마지막 생애가 될지 전혀 모르고 있었던 이토를 저격하기 위해 안중근은 만주에서 하얼빈으로 향하고 있었다. 안중근은 하얼빈이 자기 인생의 마지막 종착역이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안중근을 만나기 위해 그의 아내 김아려 여사도 하얼빈을 향하고 있었다. 김아려 여사는 안중근이 이토를 저격한 바로 다음 날 하얼빈에 도착했다. 

 

 세 번째는 이토를 저격하기로 한 무거운 결심에 비해 안중근의 이후 행동은 너무 가벼웠다는 점이다. 가벼웠다고 해서 안중근의 행동이 경거망동하고 신중하지 못했다는 의미가 절대 아니다. 목표가 분명해졌고, 명분도 확실하니 이것저것 재지 않았고 일이 잘 안 되었을 때를 고민하지 않았다는 의미의 가벼움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결정을 하지만, 가족의 생계와 나의 목숨이 걸린 결정 앞에서는 누구나 망설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때로는 그런 결정을 최대한 미루거나, 그렇게 결정해야 할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일부러 노력하기도 한다. 그런데, 인생은 아무리 내가 피하려고 해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것 같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런데, 이 말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해 보고, 아무리 노력해도 피할 수 없다고 생각되면 그냥 받아들이고 즐기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안중근은 처음부터 피할 생각이 없었고 죽음 앞에서 어떠한 망설임도 없었기에 무거운 결심 뒤 거침없이 행동할 수 있었다.

 

 안중근의 유해는 지금도 찾지 못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 20일간 여순 감옥 인근을 탐사한 적은 있었지만 찾지 모했다. 개인적으로 더 안타까운 점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안중근 의사의 유해보다 점점 잊혀가는 그의 결연한 시대정신과 세계관이다. 대한민국이 비록 선진국 대열에 당당히 입성하여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지만, 점점 방향을 잃고 일관된 세계관의 부재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럴 때일수록 안중근 의사의 세계관과 시대정신이 다시 주목받아야 하고 우리의 밝은 등불이 되어야 한다. 효창공원에 있는 안중근 의사의 가묘 옆에는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가 아직도 그의 유해를 기다리고 있다.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는 수많은 선각자(pioneer)와 위인들이 존재한다.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을 모두 첨단기술을 이용해 우리 앞에 불러내고 싶다. 개인적인 소망이 있다면 딱 세 사람만이라도 나타나 줬으면 한다. 세종대왕, 이순신, 안중근! 이 세 사람의 환상적인 콤비는 분명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혼돈의 시대는 물론 앞으로 대한민국이 가야 할 미래를 밝게 비춰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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