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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래몽상가 Oct 29. 2022

요한, 씨돌, 용현
(SBS 스페셜 제작팀, 2020)

인간으로서 해야 할 당연한 일을 한 사람

 이번 책은 실존 인물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 끌렸고, 방송을 통해 책 속 주인공의 삶을 잠시 엿보았던 적이 있어 더 읽고 싶었다. 마침 같이 근무하는 후배가 받고 싶은 생일 선물이 있냐고 물어보길래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이 책을 부탁했다. 며칠 후 책상 위에 후배의 글씨와 함께 책이 올려져 있었다. 요한, 씨돌, 용현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한 사람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책이었고, 인간으로 해야 할 당연한 일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었다.  


 후배의 글씨체와 완전히 다른 글씨체가 눈에 띄었다.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적힌 다소 엉성하게 쓰인 글씨의 의미가 궁금해졌다. 책 속 주인공은 지금 정선의 한 요양병원에 있다고 한다. 뇌출혈로 쓰러져 왼손만 거동이 자유로운 상태이다. 제작팀이 그를 찾아가 “왜 그렇게 남을 위해 희생하며 사셨나요?”라고 물어보자, 오른손잡이던 그는 왼손으로 노트 위에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적었다고 한다. 참으로 묵직하고 담백하면서도 울림이 큰 대답이다. 출판되는 모든 책에 주인공의 글씨가 인쇄되어 있다.  

 책 속 주인공의 실제 이름은 김용현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대구에 있는 ‘SOS 어린이 마을’에서 자랐다. 그곳은 미혼모가 아이들을 키우던 양육시설이었다. 최해연 여사가 SOS 어린이 마을의 1호 어머니였고, 용현은 1호 아들이었다. 요한은 약자를 위해 법조인이 되고 싶었으나, 고교 시절 교련 반대 시위 이력으로 사법고시를 포기했다고 한다. 요한은 그가 받은 세례명이다.


 시위 현장에서 심한 매질을 당한 요한을 김승훈 신부(1939~2003, 천주교정의사제단 창립)가 발견한다. 정선에 있는 신현봉 신부에게 그를 보내지만, 얼마 후 신현봉 신부가 다른 성당으로 옮기자 요한은 혼자 봉화치 마을에 남게 된다. 그곳에서 “씨돌”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갔다고 한다. 근처에서 감자밭을 하는 옥희 할머니를 만나 절친이 된다. 옥희 할머니가 기억하는 씨돌은 그야말로 자연과 함께하는 순수 그 자체였다고 한다.


 용현은 1987년 정연관 상병이 의문의 죽임을 당했다는 제보를 받는다. 대선을 앞두고 군 부재자 투표에서 야당 후보를 지지한 정 상병이 폭행을 당해 숨졌다는 제보였다. 용현은 당장 정 상병의 어머니와 큰 형을 찾아간다. 당시는 군사정권 시절이었다. 정보요원의 감시를 당하면서도 용현은 끈질기게 진실을 파헤친다. 숱한 우여곡절 끝에 17년이 지나 2004년에 드디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구타에 의한 사망으로 진실이 밝혀진다. 정 상병의 어머니 임분이 할머니와 그의 친형은 고맙다는 인사를 15년이 지난 2019년 정선의 한 요양병원에서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는 요한을 만나 건넨다. 서로를 알아보고 통곡을 하며 재회하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린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민간구조단장도 그를 기억하고 있다. 아무 말 없이 찾아와 묵묵히 구조작업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당시 구조단장이었던 고진광 씨는 순수해 보이는 사람이 가장 위험한 곳에 먼저 들어가던 용감한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한다. 구조작업이 마무리되자 구조단장은 고맙다는 인사를 그에게 건네고 싶었지만, 만날 수 없었다. 용현에서 다시 씨돌로 돌아간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여러 가지 생각들이 맴돌았다. 꼭 그렇게 살아야만 했을까? 우리 사회가 어쩌면 그와 같은 평범한 위인을 만든 건 아닐까?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위안을 느끼며 나는 저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겠지 하는 건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물론 각자의 인생이 있다. 그러나,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살아가는 인생은 그리 많지 않다. 때로는 인간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가는 인생도 있을 것이다. 요한, 씨돌, 용현의 삶을 보면서 그가 남긴 한마디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은 그래서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 수 있세상을 만들기 위해 남은 삶을 살아보자는 희망찬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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