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소개되는 22명의 인물들은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그 시대의 상식에 도전했고, 다음 시대의 상식과 대화한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천재란 많은 사람이 상식이라고 믿는 개념과 구조에 반기를 들고 싸운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반기가 나중에는 주류의 깃발이 된 것이 인류 발전의 역사였다.’ 라며, 천재란 그 시대의 논리와 질서에 도전하며 다음 시대의 상식과 대화한 선각자들이라고 정의한다. 소개되는 인물들은 대부분 기득권에 의해 제거되었거나, 이룬 업적에 비해 역사적 평가는 인색했고, 벼슬자리를 끝까지 거부하며 양심적인 학자 또는 스승으로서 생을 마감하였다. 대표적인 인물 몇 명의 삶을 만나보고자 한다.
1. 틀을 깨다
삼봉 정도전(1342~1398)은 너무 유명하기 때문에 자세한 소개는 생략하고자 한다. 정도전이 위대한 이유는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민족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포은 정몽주는 용인에 있는 화려한 묘소에 잠들어 있다. 반면, 삼봉 정도전은 평택에 있는 초라한 가묘(가짜묘)에 모셔져 있다. 정도전의 위대함에 비해 역사적 평가는 그리 후하지 않다는 점이 너무 안타깝다.
정도전만큼 학문적 배짱이 두둑했던 인물은 백호 윤휴(1617~1680)이다. 주자의 이론이 곧 진리처럼 여겨지던 시대에 주자와 다르게 경전을 해석하는 담대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주자의 견해에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던 시대였고, 주자에 대한 도전은 곧 조선의 유학 사상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던 시대였다. 이로 인해, 철저한 주자 신봉자인 우암 송시열과 대립하였고, 심지어 ‘사문난적(斯文亂賊) : 성리학 또는 유교 이념에 반대하거나 비난하는 사람들)으로 불리며 죽임을 당하고 대한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그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이 금기시되기도 하였다.
남명 조식(1501~1572)은 ‘칼을 찬 선비’로 유명하다. 경(敬)과 의(義)를 학문적 지표로 삼고 이를 평생 실천한 인물이다. 항상 차고 다녔던 그 칼은 바로 내적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경(敬)을 실천하지 못할 때 자기 자신을 칼로 베어 버리기 위함이고, 부패를 처단하고 외적을 막는 의로운 행동을 실천할 때 그 칼을 쓰겠다고 했다. 이러한 그의 절개와 깊이 있는 학문을 배우고자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특히, 훗날 조식의 소위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이어받은 제자들은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으로 나라를 구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책상에 앉아 글을 읽고 말로 학문을 논하는 것을 학자의 존엄한 가치로 여겼던 시대에 조식은 ‘실천’을 강조했고, 이는 조선 후기 실학사상으로 이어지게 된다. 조식 선생님은 지리산이 보이는 산천재(山天齋)에서 평생 후학 양성, 정치 비평, 학문 연구에 몰두하였다.
2. 죽음으로 맞서다
허균(1569~1618)은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잘 나가는 명문가 집안의 자제이고 이른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정3품 동부승지(現 청와대 수석비서관), 정2품 형조판서(現 법무부장관)까지 오른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허균은 역모를 꾸민다는 벽서사건에 연루되어 광해군에 의해 사지가 잘리는 능지처참형을 받고 삼족이 멸해졌으며 집터를 연못으로 만드는 등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허균은 계급 사회의 모순에 도전했고, 서얼들의 차별을 반대하며 신분제 폐지를 주장했다. 천하에 가장 두려운 존재는 오직 백성뿐이라며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허균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고 나서도 복권되지 못하고 조선왕조 내내 역적으로 남게 된다. 그의 후손들조차 다른 집안의 족보에 숨어 살아야만 했다.
정하상(1795~1839)은 목숨을 걸고 천주교를 끝까지 지키다가 순교를 당했다. 그는 정약용의 셋째 형인 정약종의 아들이기도 하다. 그의 아버지 정약종은 1801년 신유박해로 처형을 당하는데 그때 정하상의 나이는 여섯 살에 불과했다. 재산이 몰수되었고, 옥에서 풀려난 어머니와 누이동생은 갈 곳이 없어 유랑하며 처참하게 살아야 했다. 그런데도, 끝까지 천주교 박해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고, 교황청에 서신을 보내 조선을 정식 교구로 인정하고 신부를 보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자신의 죽음을 감지한 듯, ‘상재상서(上宰相書)’를 작성하여 천주교의 기본교리를 정리하였고 체포된 다음 날 이를 제출했다. 성리학 이외의 학문과 사상 그리고 종교는 모조리 다 이단으로 치부했던 그 당시에 정하상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세상이 열리고 나서야 시대를 내다본 역사의 선각자였다.
3. 가난을 구제하다
김육(1580~1658)은 평생을 바쳐 대동법을 실천한 인물로 유명하다. 정도전, 조광조와 함께 조선의 3대 개혁정치가로도 알려져 있다. 김육이 평생 주장하고, 기득권과 싸워가며 실현하고자 했던 대동법은 그 당시 신분제 사회와 유학 사상의 기준에서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정책이었다. 가구당 세금을 매기지 말고, 토지의 실제 소유 여부로 세금을 부과하고자 했던 것이 대동법이었다. 토지를 많이 보유한 기득권 세력과 백성을 위한 실용적 정책보다 유학의 실천과 명분을 중요시했던 당시의 지배적인 유학 사상가들의 반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래도 김육은 정치적 위기와 탄압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대동법을 주장했고, 결국 인조 때 확산에 성공하게 된다. 이후 현종과 숙종 때 전국적으로 시행되면서 약 100년의 걸친 기간을 통해 대동법이 완성된 것이다. 땅 많고 돈 많은 사람에게 세금 더 내라고 하는 대동법은 지금의 조세 정의에 맞는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김육은 바로 다음 시대에서 받아들여질 상식을 지금부터 받아들이고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천재이자 선각자였던 셈이다.
박제가(1750~1805)는 ‘놀고먹는 자들은 나라의 좀’이라며 양반도 상업에 종사해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18세기 경제사상은 토지개혁 중심의 ‘중농주의’와 상공업 발전 중심의 ‘중상주의’로 분류된다. 정약용은 대표적인 중농주의 경제사상가이고 ‘북학’의 창시자인 박제가는 대표적인 중상주의 경제사상가이다. 그는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후 ‘북학의’를 편찬하면서 오랑캐라 하더라도 좋은 법과 제도와 문물은 배워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당시 조선의 유학 사상에서는 역적으로 몰릴 만한 주장이었다. 그는 또한, 올바른 윤리와 도덕이 선 다음에 백성들의 삶이 윤택해질 수 있다는 주류 성리학의 정통 학설을 부정한다. 민생과 경제발전이 되어야 올바른 사회 윤리와 도덕을 세울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조선의 개혁과 부국강병을 꿈꾸며 그 당시의 시대 논리에 도전했던 박제가는 결국 정조와 함께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정조의 죽음으로 다시 권력을 장악한 노론 벽파 세력은 정조의 총애를 받던 개혁 관료들을 제거해 갔고, 박제가 역시 유배당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박제가의 경제사상은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에게 이어져 조선의 근대 개화파 사상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였다.
4. 절개를 지키다
김일손(1464~1498)은 무오사화로 인해 그의 스승 김굉필과 함께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 인물이다. 김일손은 사림파 출신의 사관으로 사초(실록편찬의 초안이 되는 기록으로 왕의 언행 하나하나가 기록된 문서) 작성을 담당했다. 성종실록을 편찬하면서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의 정당성과 명분을 비판한 김굉필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에 포함시킨 것이 알려지면서 반대세력인 훈구파에 의해 39세의 어린 나이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이미 죽어서 묘에 안장된 그의 스승인 김굉필은 부관참시를 당하고, 김일손은 사지가 찢기는 능지처참형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목숨을 걸고 올바른 역사를 전해주려 했던 김일손의 절개로 인해 조선의 역사가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5. 시대를 넘어
이외에도 사대부에 맞서 주화론을 제기한 이경석, 주자학 세상에 저항한 중농주의 실학자 박세당, 양명학자임을 당당히 밝힌 정제두, 발해사를 우리의 역사로 본 혁명적 역사관의 소유자 유득공, 당파성을 배제한 역사서를 편찬한 이긍익, 사대주의 시대에 조선에 황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이징옥 등 시대의 벽을 넘어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인물들의 분투적인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시민이 이 책에 소개된 인물들처럼 절개를 끝까지 지키며 신념을 위해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갈 필요는 없다. 다만, 현시대를 지배하는 통상적인 이념, 사상, 세계관에 도전하는 위대한 시도를 무조건 배척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4차 산업혁명시대뿐 아니라 앞으로도 변화와 혁신에 대한 요구는 끊임없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과연 우리는 지금 시대가 아닌 다음 시대에 통용될 상식과 질서를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이 책을 돌아보며 성찰해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