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이 이끄는 나라에서 사는 미래를 꿈꾸며...
오래전부터 나의 교보문고 장바구니에 담겨 있던 책을 드디어 읽게 되었다. 세종대왕을 가장 존경해서 교보문고 나의 보관함에는 세종대왕 관련 책들이 많이 있다. 세종대왕의 배향공신으로 선정된 7명 중 역사적 기록이 그나마 많이 남아 있는 인물들의 삶을 한번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다. 세종대왕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셨던 그분들의 공직 생활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세종대왕을 더 입체적으로 알아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가칭 ‘세종의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그들의 역사적 흔적을 찾아보며 성찰한 깨달음을 정리하고 있다. 그러다 문득 세종대왕이 지금의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면 어땠을까? 대한민국 대통령이 된 세종대왕이 자신의 비전과 국가경영 철학을 실현해 줄 인물들을 임명해야 한다면 과연 누구를 선택할까? 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 이런 생각에 빠져있을 때 발견한 책이 바로 신봉승 선생님의 <세종,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다>였다. (가칭) ‘세종의 사람들’이라는 나의 습작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일단 장바구니에 담아 둔 지 3년이 지나서야 구매했다. 오랫동안 읽지 않았던 이유와 왜 하필 지금에 와서 읽었는지 물어본다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나의 게으름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돌이켜보니 최근에 경험한 리더의 역량과 자질에 대한 개인적인 아쉬움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도 밝히고 있고, 책 속 등장인물들을 소개할 때에도 아는 바를 실천하는 지행합일(知行合一) 또는 실천궁행(實踐躬行)을 자주 언급한다. 저자는 지식인 집단이 공익을 위해 헌신하지 않고 사사로운 이익에 빠져서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한 채 입을 다물었기 때문에 우리가 겪은 참담한 현실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역사의 준엄한 흐름은 어느 한 곳도 예사롭게 지나치지 않는다. 특히, 역사는 지식인들의 배덕(背德, 도덕에 어그러짐)과 오만(傲慢, 건방지고 거만함)을 눈여겨 살펴서 기록한다. 저자는 이러한 준엄한 역사적 심판에서 조선의 명현(名賢, 이름이 난 어진 사람)들로 기록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난했던 조선이 건재할 수 있었다고 보고 있다. 그러면서 조선시대 명현들을 다시 불러내 오늘날 대통령, 국무총리, 각 부처의 장관으로 임명한다면 대한민국의 위상이 드높아져 세계에서 으뜸 국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나에게는 너무도 반갑고 속이 뻥 하고 뚫리는 시원한 프롤로그였다.
저자가 정부 수장들을 조선의 명현 중에서 선정할 때 참고했던 기준은 아마도 문묘(文廟)에 종사(從祀)된 인물과 조선시대 배향공신들이 아니었나 싶다. 문묘(文廟)는 공자(孔子)를 모시기 위해 성균관과 지방의 각 향교에 설치한 사당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문묘는 성균관에 있고, 공자의 제자 중 가장 뛰어난 인물 10명을 공문 10철(哲, 밝을 철)이라 한다. 동방 18현(賢, 어질 현)은 신라, 고려, 조선시대에 걸쳐 최고의 정신적 지주에 올라 문묘에 종사된 18명의 유학자를 말한다.
배향공신(配享功臣)은 왕의 재위 시절에 특별한 공을 세웠거나 평소 왕이 많이 의존했던 사람으로 종묘 공신당에 위패가 모셔져 있는 인물들이다. 저자가 선정한 대한민국의 지도자는 아래 표와 같다. 파란색으로 표시한 인물들은 배향공신으로 선정된 인물이다. 책이 2012년에 집필되었기 때문에 10여 년이 지난 지금과는 정부 조직도가 다소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며 읽기를 바란다.
예상했던 대로 세종대왕이 첫 인물로 등장하고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임명되었다. 백성들의 평범한 삶을 위해 비범한 노력과 능력을 발휘하신 세종대왕의 첫 등장에 이의를 제기할 대한민국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옛날이나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혼자만의 노력으로 세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개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종대왕에게는 노련한 비서실장 퇴계 이황, 참 군인 최윤덕, 쓴소리 대마왕 허조, 최고의 자문위원 김종서 등이 있었기에 자신의 비전을 실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조선시대 역사를 통틀어 좀 더 광범위하게 세종을 보필할 장관들을 추천한다. 저자가 추천한 인물들 모두를 다 알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한분 한분 만나보며 공직자 신분으로 살아온 나의 지난날을 깊이 반성했다. 한 직종에서 20년 넘게 나름 공직자로서의 사명감과 헌신, 그리고 봉사의 자세로 살아왔다고 자부했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고 묵묵하게 나에게 주어진 운명의 길이라 생각하고 지금까지 잘 버티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과연 저자가 추천한 인물들처럼 아는 바를 실천하는 지행합일(知行合一) 또는 실천궁행(實踐躬行)의 삶을 살아왔는가? 라는 질문에 한없이 작아지고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물론, 장관 후보자로 추천된 책 속 인물들처럼 공직 생활을 해야 한다는 절대적 명분은 사실 없다. 또, 그들처럼 살지 않았다고 해서 너무 나 자신을 자책할 필요도 없다.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고, 과거부터 해왔던 대로 업무하고,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신념이 있는 척, 규정과 방침 그리고 원칙을 잘 지키는 척, 열심히 일하는 척하며 직장 생활을 해도 된다. 그런다고 대한민국이 흔들리고 공직기강이 무너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보다 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항상 있기 마련이고, 공직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들이 언제나 우리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가 강조하는 지행합일과 실천궁행의 측면에서 괜히 꼬투리 잡힐까 두려워 옳다고 생각했던 바를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던 나의 지난날을 돌아보았다. 주변의 시선과 조직의 눈총 때문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침묵으로 덮어야 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주변에서 계란으로 바위 치기를 왜 하냐?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 등등의 달콤한 만류에 넘어갔던 기억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럴 때마다 나의 부족했던 용기에 실망하고 반성하게 되었다. 물론, 매 순간 항상 옳고 양심적으로 살아가기는 어렵다. 그리고, 그렇게 산다고 세상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는 바를 실천하고 옳다고 믿는 바를 선택하는 지행합일의 삶을 추구하는 것이 나의 존엄함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인 신봉승 선생님이 너무 궁금했다. 찾아보니 정말 어마어마한 분이셨다. 역사책뿐 아니라 영화와 드라마 각본을 정말 많이 쓰신 분으로 대표적인 작품이 MBC 대하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이다. 선생님의 일생을 짧은 검색을 통해서나마 알게 되고 난 후 격하게 공감했던 프롤로그를 다시 읽어보니 선생님은 이 시대의 지식인들에게 따끔한 충고를 날릴 자격이 충분하시고, 세종대왕을 중심으로 정부의 수장들을 추천할 충분한 자격이 있으신 분이라는 신뢰와 확신이 생겼다.
나에게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각 정부 부처 장관을 추천하거나 선발할 권한이 주어지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신봉승 선생님처럼 역사의 준엄한 흐름을 따라 오늘을 톺아보고 내일을 내다보는 넓고 깊은 혜안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지도자는 어떤 자격과 역량을 갖춘 인물이어야 하는지는 항상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어떤 잣대를 들이댈지 고민하기 이전에 나를 돌아보며 성찰하는 노력이 지금 이 시대에 더욱 필요해 보이는 것 같다. 세종대왕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는 날을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