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인 물리학자의 인생 철학서
#. 과학자와의 인문학적 소통
시대를 초월하는 큰 가르침에 목이 마를때 나는 과학자들의 글을 종종 찾는다. 현미경처럼 세밀하지만, 망원경처럼 멀리 내다보는 그들과의 대화가 생각보다 따뜻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며 함께 호흡하고 있는 과학자들과의 만남이 큰 위안이 되기도 한다. 이번에 만난 과학자는 김범준 교수님이시다.
과학자들과의 만남은 내게 하나의 인생 여정과 같다. 물리학 교수를 지낸 아버지가 내 인생의 첫 번째 과학자이시다. 어른이 되어 만난 과학자는 최재천 교수님이다. 과학과 인문학을 감성적 언어로 풀어내는 최재천 교수님의 글이 인상 깊었다. 최재천 교수님의 지적이고 선한 영향력 덕분에 대중과 인문학적 소통을 하는 과학자의 모습을 존경하게 되었다.
물리학자는 과연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 작은 호기심에 이끌려 정재승 교수님과 김상욱 교수님을 만났다. 정재승 교수님의 <열두 발자국>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친한 친구와 교수님의 강연을 듣기 위해 멀리 논산까지 찾아가 사진도 찍었던 기억이 난다. 김상욱 교수님의 <떨림과 울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을 읽으며 원자라는 미시세계 의 움직임이 신비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김상욱 교수님만큼이나 대중들에게 과학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시는 김범준 교수님도 꽤 잘 알려진 물리학자이시다.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고 있습니다>는 지금까지 읽어본 과학 교양서와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마치 한 권의 산문집을 읽는 느낌이었다. 물리학의 개념을 시처럼 풀어내며, 무심히 흘려보냈던 우리 삶의 순간들에 조용히 말을 건넨다. 과학적 사실에 기반하여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해준다. 그 속에서 인생의 소중한 가르침을 깨닫게 해준다. 궁극적으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삶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과학책이자 삶의 철학서이기도 하다. 철학하는 과학자, 과학하는 철학자가 필요한 이유다. 이 책은 꽤 오래전에 읽었다. 아직도 머리와 가슴이 따뜻하게 기억하는 가르침과 깨우침 몇 장면을 소개해볼까 한다.
#1. 처음이라는 이름의 우주적 사건
“우주에 처음이 있어서 내가 지금 이곳에 있듯, 내 삶의 모든 처음이 있어 지금의 내가 있다.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만 나아간다. 비가역성이 있어서 거꾸로 되돌릴 수 없다. 모든 처음은 다시 올 수 없는 우주적 사건이다.” - 시간의 화살 위에 점을 찍는 일 中
첫 시도의 가치를 이보다 더 과학적으로 설명해주는 문장이 있을까? 물리학에서 말하는 '비가역성' 처럼, 우리의 삶도 거꾸로 되돌릴 수 없다. '처음'이라는 순간은 단 한 번뿐이다. 다시 오지 않는 우주적 사건이다. 그렇기에 시작은 늘 중요하다. 시작이 없으면 끝도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결말과 결론이 어떻든 간에, 모든 서사의 출발은 단 하나의 점에서 비롯된다. 지금 내가 내리는 결정과 선택들도 어쩌면 시간의 화살 위에 점을 찍는 일일지도 모른다. 시간의 화살은 어디로 향할지 분명하다. 현재에서 미래로밖에 못간다. 인간의 의지로 되돌 수 없는 불가항력이다. 적어도 물리학적으로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우리의 의지대로 할 수 있다. 그 화살이 어느 과녁을 향해 조준할 것인지는 바로 나의 몫이다. 내가 선택한 방향, 내가 찍은 작은 점 하나하나가 모여 결국 나의 삶이 된다. 내가 맞추고 싶은 과녁을 향해 점을 찍는 일, 어쩌면 우주적 사건의 시작일지 모른다.
#2.강화학습과 인간의 성장
알파고는 인간으로부터 이기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 그저 방대한 데이터를 받았고 정답을 알려주는 지도학습을 거쳤을 뿐이다. 이제는 목표만 주어지면 스스로 방법을 터득하는 강화학습을 한다. 그 어떤 고성능 컴퓨터와 정교한 알고리즘이라 해도 한 번에 그 방법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강화학습도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통해 조금씩 나아질 뿐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다르지 않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옛말도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되는 일 보다 안되는 일이 더 많은게 인생이라고 한다. 하고 싶은 일 하나를 위해 하기 싫은 일 아흔아홉개는 감당해야 한다는 걸 우리는 살아가며 배운다. 실패, 좌절, 시행착오, 인내, 그리고 다시 도전. 반복되는 그 과정을 돌아갈 수 있는 지름길은 없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다. 이쯤 되니 뭐 인공지능이 제아무리 뛰어나도 나랑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인공지능 보다 더 복잡하고 감정적인 존재다. 인공지능 보다 더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 과정을 과학이 조용히 설명해주었을 뿐인데, 나는 이상하리만치 깊은 위로를 받았다. 과학으로 힐링된다는 건, 이런 경험일까?
#3. "관계의 물리학", 그리고 "따뜻한 관계"
이 책 2부의 제목은 이렇게 시작한다. “적어도 지구 위에 고립계는 없다 : 관계의 물리학” 물리학에서는 어떤 계(系)도 완전히 고립되어 존재할 수 없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한다. 이왕이면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어한다. 가장 좋은 관계는 따뜻한 관계다. 따뜻한 관계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아내의 차가운 손을 녹이는 순간은 열이 많은 자기 가슴을 내어줄 때라고 교수님은 말한다. 이를 과학적으로 해석해 삶의 가치를 알려준 설명이 낭만적이다. 과학적으로는 열용량이 큰 쪽이 열을 양보해야 온도가 같아진다. 결국 둘 다 따뜻해진다. 너무 차가운 쪽도 없고 너무 뜨거운 쪽도 없다. 따뜻한 평등이 이루어진다. 따뜻한 온기가 있는 가슴이 차가운 손보다 열용량이 더 많다. 누군가의 차가운 마음을 따뜻하게 녹이고 싶다면, 내 온기를 먼저 내주어야 한다고 과학은 가르치고 있다. 따뜻한 관계가 오래간다.
#4. "꼰대"의 과학적 정의, 그리고 과학의 질문
세대가 아니라 이제는 시대가 바뀌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골짜기에는 언제나 등장하는 단골손님이 있다. 바로 '꼰대'. 꼰대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다. 지금껏 한 번도 꼰대를 과학적 언어로 정의한 설명을 들어보지 못했다. 김범준 교수님은 '꼰대'를 과학적으로 정의한 최초의 인물이다. 물리학자는 꼰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판단 기준이 형성된 시간과 공간상의 위치를 원점(0,0)으로 정의하자. 시공간의 위치가 원점으로부터 (t,x)만큼 떨어진 지금 이곳의 상황을 (0,0)에 형성된 기준으로 판단하려 하는 것이 꼰대다.”
한참을 웃었다. 그러고는 문득 진지해졌다. 나도 모르게 밑줄을 여러 번 그었다. 나는 얼마나 유연하게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는가? 시대가 바뀌었는데, 내 생각의 시공간적 위치는 아직 원점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 과학에는 차가운 공식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과학은 내 생각의 좌표를 묻고 있다. 과학이 이런 질문을 할 줄은 몰랐다.
#5. 다름 속 같음 = 본질, 같음 속 다름 = 창의
우리는 흔히 '상대성'이라는 단어를 '다름'의 의미로 받아들이곤 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갈릴레이의 상대성원리를 비교해 보면 결국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갈릴레이는 말한다. ‘등속으로 움직이는 두 관찰자가 본 운동법칙은 같다.’ 아인슈타인은 이 원리에 더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등속으로 움직이는 관찰자에게 빛의 속도는 누가 보아도 똑같다.’ 결국 상대성원리는 다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준이 달려져도 변하지 않는 본질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기준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투고, 선을 긋고, 배척한다. 하지만 과학은 말한다. 진짜 중요한 것은 기준이 달라도 변하지 않는것이 있다고. 그것이 본질이라고. 오히려 다르다고 생각했던 상대방이 나와 같을 수 있다고.
교수님은 말한다.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르게 설명하는 외계의 지적생명체와 만나면 과학은 역사상 가장 큰 도약을 할 것이라고.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과학적 발견이 시작된다고.
외계의 지적생명체는 인간과 다른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지적생명체의 본질은 같을 것이다.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다는 본질. 똑같은 현상을 다르게 해석하는 일상을 우리는 많이 경험했다. 같은 것을 다르게 바라보는 관점이 삶의 통찰이자 창의의 출발점이다. 같음 속 다름이 존중받고 공존하는 사회가 건강하다.
#.불완전한 비행, 그러나 지금 출발
오래전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 쓰는 일은 쉽지 않다. 기억은 흐릿하고, 감정은 무뎌져 있다. 그래서 책을 덮는 순간 써야 한다. 쓰기 위해 다시 책을 열어야 한다. 출발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세상은 결코 우리가 완벽하게 준비될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불완전한 날개를 달고서라도 지금 이 순간 날아보려고 한다. 불완전해도 일단 시작해보고 느린 여정을 계속해보려고 한다. 아직 내가 딛고 있는 현재가 나를 미래로 안전하게 보내줄 만큼 탄탄하지 않다. 발사대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주로 날아가 보려고 한다. 한쪽 날개만 완성된 상태에서 비행을 해보려고 한다. 떨어질 수 있겠지. 그러나 두렵지 않다. 떨어져도 다치지 않을 만큼 바닥은 푹신하니까. 다시 일어서 또 출발하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김범준 교수님처럼 낭만적인 물리학자의 글이 있으니까. 지금 출발하지 않으면 떨어질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