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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이다.>

삶이 살아 숨쉬는 미술관 한복판에서 나의 꿈을 생각한다.

by 미래몽상가

나는 자주 멈춰 서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책은 멈추기 위해서 읽어야 한다. 이 책은 나를 자꾸만 멈춰 세웠다. 책장 너머로 흘러나오는 고요한 침묵과, 그 안에서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감정들 때문이었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이다』는 제목 그대로,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살아가는 한 남자의 기록이다. 그러나 이 책은 직업에 대한 보고서도, 예술을 향한 일방적인 찬양도 아니다. 오히려 ‘관찰’과 ‘침묵’, 그리고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신의 결혼식이 열려야 했던 날 형의 장례식이 치뤄졌다. 깊은 상실감과 슬픔에 빠진 작가는 직장을 그만두고 메트르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이 된다. 그렇게 가장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다.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며 고요하게 삶을 꾸려나간다.

작가 패트릭 브링리는 화려한 미술관의 전시실 한편에서, 누구보다 예술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누구보다 조용한 자리에 머문다. 젊은 시절의 패기, 우아한 미술관의 관객들, 그리고 그 한복판에서 매일을 살아내는 경비원이라는 존재로서. 화려한 액자 속 그림이 아니라, 그 그림 앞에 오래도록 서 있는 사람들의 무게가 이 책을 지탱하고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작가가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 앞에서 조용히 눈을 감는 대목이다. 그림은 바뀌지 않았지만, 그 앞에 서 있는 사람의 마음은 매일 달라진다. 죽음을 통과한 사람이 예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슬픔과 회복이 어떻게 나란히 존재할 수 있는지를, 이 책은 속삭이듯 보여준다.


어쩌면 이 책은 우리 모두의 자화상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경비원이 된다. 삶의 경계에서 서성이고, 때론 지키며, 때론 잊혀진 채로 하루를 넘긴다. 하지만 그 자리에 오래도록 머무는 일이 결국 삶을 이해하는 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조용히 전해준다.




책장을 덮고 나면, 문득 미술관이 그리워진다. 아니, 미술관이 아니라 그 안의 '사람'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놓쳐버린 누군가의 작은 숨결과 시선을 느껴보고 싶다.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둘러보고 싶어졌다.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 등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을.

책장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여운이 남았다. 미술관을 지키는 경비원이 아닌, 예술 앞에서 스스로를 지켜낸 한 사람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마음에 맴돌았다. 공허함을 달래주고, 삶의 무게를 지탱해 줄 수 있는 무기가 나에게는 있는가?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문득, 내가 좋아하는 ‘독서’와 함께 할 수 있는 삶을 떠올렸다. 사람들과 책 사이에서 조용히 숨 쉬는 일, 글과 마음을 잇는 다리가 되는 삶. 그렇게 떠오른 문장이 있었다.

“나는 00도서관의 사서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문장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조용히 준비를 시작했다. 도서관 사서 자격증을 알아보고, 도전을 결심하게 되었다. 이 책이 내게 건넨 것은 단지 누군가의 기록이 아니라, 나 자신의 길을 다시 그려볼 수 있게 하는 용기였다.




우리는 누구나 어떤 자리를 '지키며' 살아간다. 어떤 이는 미술관을, 어떤 이는 책장을, 그리고 어떤 이는 사랑하는 사람의 곁을. 우리는 이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경비원이 된다. 지금, 나는 책장을 넘기며 그 자리에 천천히 다가가고 있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00도서관의 사서입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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