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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종이

돈은 인간의 실존이자 부조리다.

by 미래몽상가

조정래 선생님은 ‘작가 정신의 승리’라는 문학계의 찬사가 붙여질 만큼 별도의 장황한 소개가 필요 없는 분이다. 1943년 전라도에서 태어나 국문과를 졸업하고 교사로 재직하시면서 작품 활동을 하셨지만, 유신정권 시절 교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인 전업 작가의 길을 선택하셨다.


이 책의 2권 제일 마지막 ‘작가 연보’에는 선생님의 굴곡진 작가로서의 여정이 기록되어 있다, 문학이란 단지 글을 쓰는 일이 아니라 ‘살아있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담아내는 고된 작업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조정래 선생님의 작가 정신을 진심으로 체감한 건 『천년의 질문』과 『풀꽃도 꽃이다』를 읽었을 때였다. 선생님의 글은 허공을 맴도는 말장난이 아니다. 방대한 자료 수집과 인간적 고민으로 다져진 무게감 있는 언어들이었다. 현실에 발을 딛고 있지만, 결코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단단한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선생님의 글을 읽을수록 내 공감의 반경이 확장되며, 세상을 조금 더 깊이 바라보게 된다.

이번 신작 『황금종이』 역시 그러했다. 돈이라는 괴물 같은 존재 앞에서 진정 자유로운 인간이란, 사실 거의 없다. 우리는 이미 ‘돈 때문에’ 생긴 비극적이고 안타까운 수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다. 살인, 자살, 고소, 가족 해체… 그러면서 ‘우리는 다르다’, ‘난 절대 그럴 일이 없을 거야’ 라며 성급하게 안심해 버린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정말 다를까?




『황금종이』 속 인물들은 익숙하다. 그만큼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어디선가 본 듯하고, 어쩌면 내 안의 한 조각이기도 하다. 부모에게 소송을 거는 자식, 사랑했던 이를 배신하는 연인, 가족의 죽음 앞에서 재산에만 혈안이 된 형제들. 돈 앞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민낯을 마주할 때, 나는 이 소설이 단지 ‘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되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돈 앞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질문을 기관총처럼 쏘아대는 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책은 단순히 ‘돈’에 대한 고발이 아니다. 인간에 대한,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의 기록이다. 조정래 선생님은 이 소설을 통해 독자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돈 앞에서 안전하십니까?’ “돈은 당신의 삶에 어떤 의미입니까?”라고.


돈은 선생님의 말씀처럼 “인간의 실존이자 부조리”이다. 돈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꼭 필요한 수단이긴 하지만, 동시에 온갖 모순과 고통이 그 속에 공존하고 있는 도구이다. 자녀 교육과 부모 부양, 은퇴 이후의 불안 등 돈은 우리 삶의 실존적 토대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삶의 근거가 되어버린 돈은 때로는 우리의 도덕적 기준을 무력화시킨다. 인간의 양심을 뒤흔들기도 한다. 돈 앞에 무기력해진 인간에게 돈은 부조리한 괴물이 되어 우리 삶에 스며들듯 찾아온다. 돈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서, 돈 때문에 인간이 인간다움을 스스로 포기하는 모순 덩어리 인생. 우리는 돈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




소설을 읽던 어느 날, 사무실에서 동료들과 은퇴 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은퇴하면 뭐 하고 싶으세요?” 그 질문에 나는 무심코 이렇게 말했다. “프리랜서 작가요.” 그 말을 뱉고 나서 마음속이 조금 울컥했다. 정말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나 마음 한켠에 숨겨둔 채 살아왔던 것 같다. 하지만 『황금종이』를 읽으며 문득 느꼈다. 진짜 작가란, 세상을 향해 질문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인간의 얼굴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도 언젠가 그렇게 쓰고 싶어졌다. 단단한 이야기로, 누군가의 마음을 흔드는 문장으로.

『황금종이』는 그런 꿈을 다시 꺼내보게 해 준 고마운 책이다. 그리고 조정래 선생님은 다시 한번, ‘작가 정신이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정중하면서도 묵직한 답을 남겨주셨다.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 기여한다'


조정래 선생님의 책은 언제나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이번 책도 마찬가지다. 우리 공동체와 나에게 던진 질문을 다시 떠올려본다. 돈이 삶의 실존이지만 부조리한 괴물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작가 정신의 승리자’이신 선생님께서 나에게는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던지셨다. 이제 남은 건 그 해답을 찾고 실천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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