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키 미아코, 2025)
사람이란 참 이상한 존재다. 소란스러움 속에서 고요를 그리워하고, 행복을 만끽하고 있을 때 불안해한다. 때론 남들보다 빨리 달리고 있을 때 속도를 늦추고 싶어 한다. 뭔가 이상하다 생각될 때 책은 잠시 우리를 멈춰 세우곤 한다. 말없이 위로를 건네기도 하고 느낌표를 안겨줄 때도 있다. 물음표로 가득했던 인생에 마침표를 찾아가던 내게 책은 언제나 말없이 날 위로해 줬다.
『나는 숲속 도서관의 사서입니다』는 그렇게 내게 마음의 쉼표 같은 책이었다. 한적한 산속, 책과 나무, 고양이와 사람만이 존재하는 작은 도서관. 그곳은 마치 세상의 소음을 모두 벗겨낸 공간 같았다. 책장을 넘기면, 숲 냄새가 가만히 손끝에 스며드는 듯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은 “책은 창문과 같다.”이다. 그 문장을 읽고 나는 한참을 멈춰 내 주변에 보이는 모든 창문들을 둘러보았다. 저자는 책은 창문처럼 바깥 세계의 부드러운 바람과 강렬한 햇빛, 비에 젖은 흙냄새, 나무와 꽃이 있는 선명한 풍경을 방 안으로 불러들인다고 말한다. 그래서 책을 펼칠 때마다 고요한 방 안에 앉아 숲 냄새를 맡고, 바람을 느끼며, 낯선 이의 삶을 깊이 공감하게 된다고 한다.
또 다른 챕터인 ‘등 뒤의 창문이 열리는 순간’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가 건네준 책을 펼치면 등 뒤에서 창문이 열리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누군가에게 책을 건네받음으로써 지금까지 의식해 본 적 없는 문제나 생각지도 못했던 사상 등, 제 손을 뻗는 것만으로도 결코 보이지 않았던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그리고, 그녀는 그런 경험을 하게 해 준 책으로 박사라의 『가족의 역사를 씁니다』를 소개한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나 역시 누군가 건넨 책 한 권이 내 삶의 시야를 어떻게 넓혀주었는지를 떠올렸다. 그리고, 내가 건넨 책이 누군가에게도 그가 보지 못했던 등 뒤의 창문을 열게 해주지 않았을까? 책은 단지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내가 보지 못했던 창문’을 열어주는 조용한 마법이라는 걸 다시금 느꼈다.
그렇기에 책은 언제나 우리에게 ‘밖으로 나가는 길’이자 ‘안으로 들어오는 빛’이기도 하다. 아오키 미아코가 숲속 도서관에서 겪은 작고 따뜻한 이야기들은 내게도 창문이 되었다. 내 마음에도 바람이 들었고, 오래 닫혀 있던 창이 조용히 열리는 듯했다.
‘포기한 것과 포기하지 않는 태도’라는 제목의 챕터가 있다. 그 챕터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저희는 산에 맞서는 것은 포기했지만 이곳에서 풀과 나무, 새, 동물과 함께 살아가며 읽고 배우는 것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문장을 읽고 나니, 이곳은 단지 책이 있는 장소가 아니라, 삶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매일 아주 작게 싸워나가는 사람들의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서라는 직함은 결국 ‘배우는 것을 멈추지 않는 사람’의 또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자연스레 앞서 읽었던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이다』를 떠올렸다.
삶의 가장 조용한 자리에서 오히려 가장 단단한 감정들이 자라난다는 점에서 두 이야기는 꼭 닮아 있었다. 다만 한 사람은 미술관에서, 또 한 사람은 숲속의 도서관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지키고 돌보는 삶’을 살아간다.
책을 통해 위로받고, 위로하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그러나, 현실의 무게는 그런 생각을 사치스러운 낭만으로 만들어버렸다. 삶의 공허함이 스멀스멀 올라오자 낭만으로의 회귀를 꿈꾸고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결국 머무르고 싶은 자리는, 책장 너머가 아니라 책과 사람 사이의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마지막 즈음, ‘모른다는 희망’이라는 제목의 이야기가 있다. 그 안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모른다는 것은 이제부터 세상을 알아갈 거라는, 혹은 미지를 미지로 남겨두는 단계의 입구에 서 있다는 표현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른다는 끝내는 말이 아니라 시작하는 말이지 않을까요.”
이 말은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아있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 조용한 숲속에서라도 계속 살아가고자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듯했다. 알 수 없는 것을 알고자 하는 마음, 모름을 인정하면서도 멈추지 않는 그 시작이 바로 삶이고, 배움이 아닐까. 느낌표를 하나 선물 받은 기억으로 남았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덮고 나서, 조용히 문장을 하나 떠올렸다. 메트로폴리탄의 경비원을 읽고 생각했던 문장이다. “나는 숲속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작은 도서관 사서가 되고 싶다.” 나는 지금 도서관 사서 자격증에 도전 중이다. 책을 가까이 두는 삶, 그 곁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되는 나를 소망하면서. 내가 찾은 내 인생의 마침표 중 하나이다.
숲속 도서관은 멀리 있지만, 마음속 숲은 언제든 내가 만들 수 있다. 그 숲 한가운데서 언젠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는 당신의 작은 도서관 사서입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