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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의에 대하여 (문형배)

참 좋은 판사님과의 만남

by 미래몽상가

#. 판사보다 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이유.

이 책을 고른 결정적 이유는 저자인 문형패 전 헌법재판관님 때문이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을 주문하던 그의 모습은 이미 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되었다. 가난했던 시절, 김장하 선생님의 도움으로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고, 판사가 된 그는 평균인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셨다. 대통령 탄핵 심판을 마친 뒤 "제대한 기분이었다"며 곧바로 퇴한 것도, 권력보다 양심을 추구하려 했던 그의 일관된 삶의 태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법복의 무게감을 견디고자 야구, 등산과 산책, 그리고 독서를 즐기는 사람의 인생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금했다. 그 궁금증을 함께 나누고자 독서모임의 다음 책으로 추천했다.



#. 판결보다 따듯한 언어.

이 책은 저자가 판사에 입문하고 법복을 벗기까지 작성해온 약 1,500여 편의 글 중 120편을 선별하여 수록한 자서전 성격의 에세이다. 좋은 판사는 될 자신은 없지만, 나쁜 판사는 되지 않겠다는 다짐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그동안 법정에서 했던 고민, 성찰의 흔적과 기록, 사회에 바라는 점 등이 담겨있다. 외압에 굴복하지 않고 공정하며 정의로운 판결이 내려지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없다. 그래서 이 책은 판사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한 인간의 일기장처럼 느껴진다.



#. 판사의 독서.

판사는 타인의 인생에, 특히 극적인 순간에 관여하는 사람이다. 갈등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인생에 대한 풍부한 경험이 요구된다. 하지만 판사에게도 경험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그는 그 부족함을 독서로 메웠다.

"무지를 극복하기 위해서, 무소신을 극복하기 위해서, 무경험을 극복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

그의 이런 다짐은 조용하지만 단단한 울림이 전해진다.


그가 읽었던 책들 중 유독 문학작품이 많아서 놀랐다. 판사와 문학은 어딘가 어색한 조합이지만, 그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선택한 언어는 법이 아니라 문학이었다. 법정에서 다룰 수 없는 이야기들, 법이라는 그릇에 다 담을 수 없는 간의 사연과 모순들을 문학 속에서 이해하려고 했던 것 같다.

루소의 『에밀』을 읽으며 인간의 성장과 자유의 본질을 묻고,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통해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휴식과 성찰의 시간을 돌아본다. 도스토옙스키, 황순원, 알베르 카뮈의 작품들이 그의 글 속에 스며 있다. 문학의 시선으로 법을 바라보려는 노력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가 문학을 가까이 둔 이유는 분명하다. 문학이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사회적 모순, 상처와 위로를 담아내는 언어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학이야말로 모순으로 가득한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훈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법정에서의 냉철함에 사람의 온기가 증발되지 않기 위해서 문학의 도움을 받고자 했던 것 같다.


"문학은 보편의 진실을 찾는 일이고, 재판은 구체적 진실을 가려내는 일이다. 둘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이 문장 속에는 판사로서의 긴장과 인간으로서의 따뜻함이 깃들어 있다. 법이 정의를 세우지만, 문학은 그 정의에 온기를 입힌다는 것을 보여준다.


" 착한 사람은 법을 모르고, 법을 아는 사람은 착하지 않다."


그래서 방법은 간단하다. 착한 사람에게 법을 가르치는 일이다. 법은 아는 사람을 착하게 만드는 일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착해진다는 보장도 없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런 이가 법정에 서는 순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극히 제한적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 담기는 어렵다. 특히 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는 말이다.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그런데, 법을 잘 알고 양심을 속이며 실속을 챙기는 사람들도 많다.



#. 현재의 사람들이 기억해야 역사가 된다.

현재의 사람들이 기억해야 역사가 된다. 돌아가신 한기택 판사를 추모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깨달았다고 한다. 그에게 기억이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책임이다. 망자를 기리는 일은 과거를 되짚는 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는 일이다.


그는 한기택 판사의 삶을 회고하며, 조용히 묻는다. “그의 성실함과 온화함, 그리고 사람을 먼저 바라보던 태도를 우리는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가.” 법정에서 정의를 지키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은, 시간이 흘러도 사람의 선함을 잊지 않는 일임을 그는 그 자리에서 깨달았다.


문형배가 말하는 ‘기억’은 과거의 인물에 대한 감상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그 정신을 다시 이어가는 행위다. 그가 “현재의 사람들이 기억해야 역사가 된다”라고 한 이유는, 기억이 전승될 때만이 한 인간의 삶이 역사가 되고, 그 역사가 다시 사회의 도덕적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그날의 추모는 슬픔의 시간이 아니라 결심의 순간이었다. 그는 그렇게 썼다.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단지 한 사람을 추억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잃어버린 온기를 다시 불러내기 위함이었다.” 결국 문형배에게 역사는 기록이 아니라 기억의 실천이다. 잊지 않으려는 마음, 그 마음들이 모여 역사를 만든다.



#. 법은 정의를 세우고, 호의는 그 정의에 온기를 입힌다.

법이 정의를 세우는 도구라면, 호의는 정의를 따뜻하게 만드는 마음이다. 이 책에서 그는 사회의 제도나 권력보다 '한 사람의 따뜻한 시선'이 세상을 조금 더 살 만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사람은 제도의 산물이 아니라, 관계의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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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고백은 법조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진술처럼 들린다.


『호의에 대하여』 는 거대한 정의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평범함 속에서 진실을 보고 있다. 등산길에 마주친 소나무의 침묵에서 겸손을 배우고, 법정 기록보다 오래 남는 사람들의 눈빛을 기억하고, 세상이 주었던 호의를 다시 사회에 돌려주고자 하는 다짐을 되새기고 있다.


법관으로서의 간결한 문장과 시인의 감성이 절묘하게 공존한다. 담백한 문장에서 오랜 세월의 고뇌가 스며 있다. 권력보다 양심을, 논리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그의 글에는 '높이'가 아니라 '깊이'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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