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밸리 (김상근)

500년 전 그남자, 왜 악인이 되었어야 했나?

by 미래몽상가

마키아벨리라는 이름 앞에는 늘 같은 수식어가 붙는다. 권모술수. 냉혹한 현실주의. 악의 대명사. 나 역시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김상근 교수의 《마키아벨리》를 읽고 나서, 오랫동안 품어왔던 상(像)이 무너졌다. 처음으로 이 남자가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악인의 초상화 뒤에 숨은 얼굴

마키아벨리는 친구들에게 상습적으로 돈을 떼일 정도로 마음씨가 좋았다고 한다. 자기 가족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서 친척 아이가 고아가 되자 입양까지 해서 호구책을 마련해 주었다. 순진한 애국자. 검소한 삶. 안타까울 정도로 무방비한 선의. 이런 사람이 어떻게 '악의 화신'이 되었을까?


저자는 답한다. 《군주론》에 담긴 마키아벨리의 사상이 강자들의 눈에 너무 위험해 보였기 때문이라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처럼, 그의 실제 모습은 의도적으로 묻혔다.


나는 이 대목에서 책을 덮고 한참을 생각했다. 우리가 '나쁜 사람'이라고 배운 인물들 중에 얼마나 많은 이가 이렇게 오해받았을까. 통설과 다른 해석을 갈망하는 내게, 저자의 시선은 일종의 해방감을 주었다.




약자의 편에서 세상을 보다.

마키아벨리가 태어난 피렌체는 자국 군대가 없어 용병에 의존하던 군사 소국이었다. 프랑스가 침공하자 가장 먼저 항복을 선언하며 스스로 성문을 열어 주었을 정도다. 체사레 보르자의 정복 전쟁까지 겹치며 위기는 깊어졌지만, 지도층은 오직 자신의 권력 유지에만 신경 썼다. 순진한 애국자의 눈에 그 모습이 얼마나 한심해 보였을까.


저자는 마키아벨리를 "억울하게 살고 있는 약자의 편에서 냉혹한 현실을 바라본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그가 《군주론》을 쓴 건 강자에게 아부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약자들이 어떻게 하면 부당한 힘에 짓밟히지 않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절박하게 고민한 결과였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무기

마키아벨리의 아버지는 가난한 법률가였지만, 책을 읽는 사람이었다. 마키아벨리는 고전을 읽고 깊이 사색하는 습관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돈도, 권력도, 군대도 없는 집안에서 그가 얻은 유일한 무기였다. 김상근 교수는 이렇게 정리한다. 힘이 없는 약자들이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우려면 고전을 읽으라고.


이 문장을 읽으며 얼마 전 만난 또 다른 책이 떠올랐다. 조국의 《법 고전 산책》이다. 루소의 《사회계약론》, 예링의 《권리를 위한 투쟁》, 소로의 《시민불복종》,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그 책에서 소개하는 고전들은 대부분 정의롭지 못한 권력으로부터의 저항과 투쟁을 말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건, 《군주론》이 이 책들 대부분보다 먼저 출판되었다는 사실이다. 마키아벨리는 물리적 폭력의 사용 주체를 군주로 전제했고, 후대의 저항 사상들은 그 주체를 주권을 가진 시민으로 바꾸었다. 200~300년의 시간차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미래는 누구의 것인가?

르네상스 이전까지 미래는 신의 영역이었다. 인간의 의지로 바람직한 미래를 창조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금기에 가까웠다. 그러나 헤겔, 볼테르 같은 근대 철학자들이 등장하면서 인류의 미래를 '진보'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미래학이라는 학문도 결국 같은 맥락에 서 있다. 외부로부터의 변화에 무기력하게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의 변화가 외부에 영향을 미쳐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관점. 이를 'outbound change'라고 부른다.


여기서 중요한 건 기본 전제에 대한 도전이다. 신의 영역이라 여겨지던 것을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일. 마키아벨리가 500년 전에 했던 일도 결국 그것이 아니었을까. 군주의 권력이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현실의 역학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폭로한 일 말이다.




인생은 울보를 기억하지 않는다.

김상근 교수는 이탈리아와 한국의 공통점을 짚는다. 반도 국가라는 지정학적 특수성, 강대국에 둘러싸인 처지, 문화적 감수성은 뛰어나지만 탁월한 리더가 부족한 고질적 문제.

김상근 교수.png

'탁월한 리더의 부재'라는 진단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요즘 우리나라를 바라보면, 크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마키아벨리는 말한다. 힘을 갖출 때까지 부단히 준비하며 기다리다가, 때가 되면 단호하게 결정하라고.


그는 결국 자국 군대를 양성하려던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남긴 글은 500년이 지난 지금도 읽히고 있다. 책을 읽는다는 것, 생각한다는 것, 그것이 때로는 군대보다 오래 살아남는 힘이 된다.


지금까지 《군주론》이나 마키아벨리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었다. 김운찬 교수의 번역본, 시오노 나나미의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김경준의 《지금 마흔이라면 군주론》, 신동준 교수의 번역본, 폴커 라인하르트의 평전까지. 하지만 이번에 만난 김상근 교수의 책은 결이 달랐다. 가장 명료했고, 멈춤 없이 읽혔다.


어쩌면 마키아벨리는 악인이 아니라, 악인으로 불려야만 했던 사람인지도 모른다. 강자들이 두려워한 건 그의 폭력성이 아니라 그의 통찰이었으니까!


책을 덮으며 생각한다. 나는 지금 어떤 고전을 읽고 있는가? 그리고 그 책은 나를 어떤 싸움에 대비시켜 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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