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은 시대의 산물이다.
책장을 덮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정확히 어느 페이지에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순간, 데카르트처럼 의자에 앉아 세상 모든 것을 의심하던 철학자의 이미지가 떠올랐고, 나는 그 상념 속에서 한동안 허우적댔다. 폴커 라인하르트의 《마키아벨리》 평전은 그런 책이었다. 읽는 내내 불편했고, 읽고 나서는 더 불편했다.
저자인 폴커 라인하르트(Volker Reinhardt, 1954~)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관한 세계적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폴커 교수님은 마키아벨리의 도발적인 모습에 초점을 두고 권력의 기술자이면서 시대의 상식을 조롱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불편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떳떳한 용기를 지녔고, 몰락한 이탈리아의 역사를 새롭게 설계하여 찬란한 미래를 만들어가고자 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조롱하고자 했던 시대의 상식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인간과 정치 세계의 불편한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이 질문에 폴커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아주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몇 가지만 소개해볼까 한다. 아마 듣다 보면 뜨끔 하기도 하면서 불쾌한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는 것을 느낄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조롱한 것은 시대의 '상식'이었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친절하게, 그러나 냉정하게 그 목록을 펼쳐 보인다. 성공은 모든 것의 척도다. 성공한 이후에 어떻게 그 성공이 가능했는지 사람들은 묻지 않는다. 그러니 군주가 강해지려면 도덕적으로 가장 의심스러운 방법까지 모두 정당화해야 한다. 국가의 목표는 평화가 아니라 전쟁이고, 공화국의 최고 영광은 다른 국가를 정복하는 것이다.
완벽한 정치인은 사자와 여우를 둘 다 체화해야 한다. 파렴치할 줄 알아야 하고, 속임수도 쓰며, 계약도 파기할 줄 알아야 한다. 우정과 연대의 가면을 쓰고 접근해 선의의 동맹을 맺은 후, 서서히 예속의 올가미를 조여야 한다.
읽다 보면 뜨끔하다. 불쾌하기도 하다. 하지만 부정하기 어렵다. 500년 전 피렌체에서 쓰인 문장들이 왜 이렇게 익숙할까.
#독서가 만든 외교관
마키아벨리는 29세에 피렌체 공화국 제2서기국 서기장이 되었다. 명문가 출신도, 대학 졸업자도 아니었다. 1498년, 파격적인 인사였다.
그의 사상은 어디서 왔을까. 마키아벨리의 유년 시절에 대한 기록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마키아벨리의 아버지인 베르나도 마키아벨리의 <회고록>과 마키아벨리가 그의 아들과 주고받은 편지 등을 통해 그의 사상이 여물어 가는 과정을 추적한다.
아버지 베르나도 마키아벨리는 경제적으로 검소했지만 독서와 교육에는 남다른 열정이 있었다. 9개월 동안 리비우스 《로마사》의 지명 색인을 만들어주고 그 대가로 증정본을 받았다. 그것을 제본해 17세 아들에게 선물했다. 마키아벨리는 죽기 3개월 전, 건강이 안 좋다는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 "더는 병을 핑계로 배우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고 고전 연구에 힘을 쏟아라."라고 당부했다. 명성을 얻기 위해 마키아벨리가 연마한 기술. 그것은 결국 독서였다. 역시, 독서는 언제나 옳다.
#달래고, 줄타기하고, 살아남기
서기장이 된 마키아벨리에게 주어진 첫 임무는 '달래는 일'이었다. 당시 피렌체의 상황은 진퇴양난이었다. 1494년 프랑스 샤를 8세가 이탈리아를 침공하자 그 틈을 타 피사가 독립했다. 피사는 한때 지중해 4대 해양 도시국가 중 하나였지만 1406년 피렌체에 점령당한 후 줄곧 지배를 받아왔다. 피렌체는 피사를 반드시 재점령해야 했지만, 자국 군대가 없었다. 주변 군주들에게 돈을 주고 용병을 고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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