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영써티 직장인의 자기 주도적 인생 프로젝트(9)

9. 충분함에 대하여

by 영써티

9. 충분함에 대하여


나는 드디어 충분함에 대한 실마리를 경험한 대기업 9년 차 영써티 직장인이다.(해가 지나 이제 9년 차다.)


요즘 모든 것이 삶과 연결 지어 생각이 떠오른다.


미술 학원을 다니며 소묘 수업을 듣고 있는 중이다.

연필로 색칠을 하면서 면의 느낌이 나려면 다양한 방향의 선으로 면을 채워야 한다.

단방향의 선으로는 면의 질감이 나지 않는다.

열심히 여러 방향의 선으로 면을 채우다 문득 이게 삶인 건가란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방향의 선이 면이 되고, 그렇다고 모든 선이 좋은 선이 아니기에 선을 잘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하듯,

인생에서 중요한 건 얼마나 가졌냐가 아니라 어떻게 채워져 있느냐인 것이다.


근래 읽고 있는 양귀자 작가님의 모순이란 책에 이런 구문이 있다.

“내 삶의 부피는 너무나도 얇다.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 “

내가 그렇다. 자그마한 씨앗 하나 품을 수 없어 아무것도 피워내지 못하는 내면이라 모든 것이 무섭고 모든 것에서 불안함을 느낀다.


스위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옆자리에

앉은 스페인 친구와 내내 떠들었다.


17살 때 이탈리아 여행이 너무 가고 싶어 북부 이탈리아로 무작정 떠나 저글링 공연으로 여행비를 벌고 공원에서 노숙하며 반년을 여행했다.

그 이후로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며 벌써 90개 나라를 돌아다녔다.

취미는 등산, 등반이고 어디서 배운 게 아니라 어릴 때부터 취미 생활이라 암벽, 빙벽 등반도 어느 정도는 하고 작년에 6,000m 등반에 성공했다.

또, 직업은 사회학자로 항상 이것저것 공부하고 있고 지금은 정치과학 과정을 밟고 있다.

그 외의 여러 경험담도 들었다.


들으면서 점점 부러웠다. 질투가 날 정도로 말이다.

나는 종잇장 같이 얇은 사람인데, 10m는 족히 되는 두께의 사람이 눈앞에 있으니 내 얇디얇은 마음으론 금세 시기심이 비집고 나올 수밖에.


가장 질투가 났던 이야기는 17살에 노숙하면서 여행을 떠난 일화였다. 그 결단력, 불편함을 감수한 용기, 두려움을 떨쳐낸 열정이 부러웠다.

현재의 삶에도 내겐 없는 그 세 가지가 그에겐 여전히 남아있어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부러움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 친구를 만나기 전부터,

미술학원을 다니기 전부터,

이 브런치를 시작하기 전부터,

남들과 비교는 그만하고 스스로를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고 그렇게 살기로 결심한 상태였다.


하지만 유전자에 새겨진 욕심과 비교로 다져온 3n년의 삶이 강한 관성으로 남아있어, 그 관성이 사그라들길 기다리며 노력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남들과 비교하며 흉내내기 바쁜 나를 종종 발견한다.


그래도 좋은 면을 보자면 이제는 물질적인 데에만 흉내내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0m 깊이의 내면을 가진 그가 부러워 나도 산을 올라봤다.

북한산, 처음부터 백운대를 목표로.

역시나 흉내내기 급급했던 나는 준비물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오르다 약수암에서 하산을 했다. 체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하산할 때 사고 날 것 같아 다음에 스틱을 챙겨 오리라 하고 말이다.


막상 내려오니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내려온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서 다시 원효봉으로 올랐다.

원효봉을 100m 앞두고 눈앞에 장광이 펼쳐졌고, 그 풍경을 감상하다 오늘은 이로 충분하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내려왔다.


결론적으로 나는 아무런 봉우리도 도달하지 못하고 내려왔지만 너무도 충분한 산행이었다.

그 풍경이 그날의 산행에 충분했기에 스무 걸음만 올라가면 되는 봉우리를 욕심내지 않았다.

드디어 충분함이 무엇인지 실마리를 잡은 것 같다.

충분함을 느끼게 해준 풍경
작가의 이전글대기업 영써티 직장인의 스위스 여행기(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