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롤모델은 라울 뒤피
10. 롤모델은 라울 뒤피
나는 벌인 일이 1개가 2개가 되고 2개가 10개가 되어 제 발에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 보려는 올해로 9년 차 대기업 영써티 직장인이다.
자기 주도적 삶을 살아보겠다고 지난 가을부터 해본 것들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1) 피아노 배우기, 2) 미술학원 다니기, 3) 브런치에 글 올리기, 이 세 가지는 표현력을 기르기 위한 훈련 활동들이다.
4) 운동하기 : 끈기를 만들어줄 체력을 기르고, 최소한의 근육을 생성/유지하기 위한 목적이다.
5) 자전적 단편 소설 쓰기 : 내 오랜 꿈인 소설 출판을 위한 습작 1이다.
6) 타일 기술 배우기, 7) 자동화 프로그램 만들기, 이 두 가지는 개인 사업자로 수입 파이프라인을 만들어보고자 시도해 본 것이다.
8) 등산 시작하기, 9) 스키 배우기 그리고 오랜 연인의 부상 이슈로 연기된 프리다이빙 배우기까지 친다면 10가지 일들을 시작했고 이 세 가지는 취미 활동으로 쌓아놓아 은퇴 후 자연탐험가이드가 되기 위한 취미의 시작점이다.
이 일들의 현재 상태는 이렇다.
- 미술 학원은 타일 학원과 겹쳐서 잠정 휴업이고, 집에서 연습한다고 이것저것 사뒀지만 한 번을 하질 않았다.
- 등산도 새해맞이 1회 이후로 가질 않았으며(변명하자면..! 타일 학원 때문에 시간을 낼 수가 없다.)
- 자전적 소설 쓰기도 한창 쓰다가 막힌 부분부터 진도를 못 빼고 있다.(단편임에도!)
- 브런치 글도 글감이 떨어져 일기로도 드문드문 올리고 있으며
- 구상하고 있는 자동화 프로그램도 구상에서 멈춰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짓수에 마음이 깔려버린 것도 있지만, 내 업된 기분이 가라앉으며 무기력의 단계에 접어들어 멈춰있는 것 같다.
그래도 나름 성공적인 부분을 얘기하자면,
타일 실력은 반에서 제일 형편없지만 속도를 내려놓고 나의 작업을 한다 생각하니 재미가 붙고 있다. 콘크리트 벽에 몰탈밖에 배우지 않아서 실제 현장과는 괴리감이 있겠지만 그냥 수행의 시간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스키도 장장 12시간의 강습 끝에 금잔디는 탈출했다. 여전히 폼이 엉성하고 눈 상태가 안 좋으면 좋지 못한 습관이 바로 나타나고 금잔디 탈출이 예상보다 오래 걸렸지만 그게 올해 목표였으니 일단 목표는 해냈다.
하지만 저 중 진짜 자기 주도적 삶을 위한 활동은 몇가지 없고 그마저도 소정의 성취를 이룬 건 두 가지 정도로 정리된다.
<피아노> 드디어 체르니 100을 뗐고, 부족하지만 피아노 선율에 감정을 실을 수 있게 되었다. 피아노를 배우고자 한 목표에 한 발짝 딛게 된 것이다.
진도만 따지자면 20여 년 전 이미 체르니는 끝마쳤기에 오히려 퇴보했다 보이겠으나, 20여 년 전과 다르게 단순하고 미흡하더라도 감정 표현이 조금은 된다는 점에서 big step이라 여겨도 되지 않을까?
또, <운동하기>도 점심시간마다 이끌어주는 좋은 동료 덕분에 재미를 붙였고 실력도 많이 늘었으며 앓는 소리 대신에 해보겠다는 소리가 먼저 나와 힘듬에 적극적으로 변한 내가 뿌듯해졌다. 흐릿하게 보이는 근육의 모습과 늘어난 웨이트 중량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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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간의 강습으로 스키 강사님과 조금은 사담을 나누게 되었는데,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있으셨다.
불안, 내가 금잔디 탈출에만 긴 시간의 강습을 받게 만든 원인이자, 자꾸 발산하게 만드는 감정.
상대방에/상대방이 부딪힐까 불안함에 스키도 자꾸 뒤돌아 보며 타는 주제에 강사님의 이런저런 불안함에 대해 기세로 덮으면 된다는 말을 건넸다. 정작 자신은 그렇게 살지 못하면서 말이다.
이를 계기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의 지난 가을부터를 복기해 보았다. 분명 처음엔 나 자신을 알기 위해, 오랜 시간 꿈꿔왔던 일을 해보기 위해 시작했던 서너 개의 일들이, 불안이 세포 분열의 촉매인 마냥 10개로 불어났고 마무리도 짓지 못한 채 더 불어나려고 드릉드릉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 일들의 대부분이 무의미할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유행하는 화풍으로 휙휙 바뀌다 종국엔 자신의 그림을 찾은 라울 뒤피처럼 언젠가 내 삶의 그림을 찾는데 도움이 되어주겠지. 물론 라울 뒤피는 다 잘했지만..
어쨌거나 중요한 건 그 일들의 목적을 점검하고 관리하여 나 스스로를 알고 자기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일은 내려놓지 않게, 길을 잃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 스스로 발에 걸려 넘어지지 않게 주의해야 하고 다시 일어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 수업에서, 이젠 고수의 느낌이 난다며 찍어주신 사진. 스키인식 유우-머인가?
두 번이나 넘어졌지만 두번 모두 스키플레이트를 벗지 않고 혼자 일어났다. 한 달 사이에 코어 힘도 단단해진 것이다.
정신적으로는 아직도 멀었지만 sound mind가 깃들 육체는 준비되어 가고 있고 그 안에 하나씩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의 티끌이 모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