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을 일찍 깨친 대단이와 다르게 우리 집 둘째 뽀뽀는 아직도 한글을 깨치지 못했다. 대단이를 키울 때는 몰랐는데 한글을 모르는 만 5세를 키우는 즐거움이 꽤 쏠쏠하다.
2년 전쯤 우리 집 남매의 관심을 강타한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그때 뽀뽀는 엉터리중국어처럼 그 노래를 불러 제꼈었는데 안타깝게도 기록이 없다.
오랜만에 그 노래를 뽀뽀가 부르고 있었는데 뽀뽀는 여전히 자기 스타일대로 개사를 했다.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당근 할아버지가 터 잡으시고~"
졸지에 당근 할아버지로 둔갑한 단군 할배. 바니바니 바니바니 당근 당근! 을 외칠 것 같다면 고조선의 후손으로서 발칙한 생각일까?
얼마 전에는 하굣길에 뽀뽀가 잔뜩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나 오늘 반짝 친구들과 인사를 못하고 왔어."
나는 뭔가 잘못 들은 것 같아서
"뭐라고?" 하며 되물었다.
"반짝 친구 말이야." 하면서
뽀뽀는 양손을 귀옆에서 흔들며 반짝반짝 동작을 취했다.
그래~ 단짝 친구들이 반짝반짝 참 별처럼 소중한 친구들이겠다.
뽀뽀의 이행시는 한동안 우리 집과 나의 지인들에게 화제였다.
엄! 엄마는 마! 마따! 가방 안 가져왔다.
회사동료들에게 이야기했더니 뒤집어졌다. 단축근무를 해서 남들보다 일찍 퇴근하는 나는 나갔다 하면 한 두 번씩은 다시 회사로 들어오기 일쑤였고 일주일에 두 번 점심시간에 하는 요가시간에는 운동복을 안 가져와서 나 혼자 평상복으로 운동하는 일도 빈번하다.
집에서 나가기 전 십 분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다. 아이 둘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순간에도 집을 들락날락한다. 아이의 물건을 챙기러 들어갔다가 내 핸드폰을 발견하기도 하고 챙겨놓은 요가복은 어디에다 뒀는지 찾지도 못하고 그냥 나오기도 한다.
지난 월요일은 태권도의 날이라 전국의 태권도 학원이 휴관을 했다. 돌봄 교실 선생님께는 잊어버릴까 봐 진즉에 문자로 말씀을 드려 놨었다.
"대단이는 4시 xx분쯤 엄마와 하교하겠습니다."
퇴근하려고 일어나는데 돌봄 교실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엥? 하면서 전화를 받았는데 친절한 돌봄 교실 선생님의 말씀.
"어머니~대단이가 어머니께서 태권도 학원 오늘 쉬는 날인지 모르시는 것 같다고 해서요."
아! 내가 아침에 대단이에게 말을 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주말에 대단이와 얘기를 나눈 것 같은데....
부랴부랴 학교로 가서 대단이를 만났다.
"대단아~ 오늘은 엄마가 데리러 간다고 했잖아. 기억이 안 났어?"
"어. 엄마가 안 오길래 엄마가 모르는 건가 생각했어."
"그래? 돌봄 교실에 대단이만 있었나 보네. 엄마가 언제 간다고 시간까지 얘기해 줄 걸."
하고 대단이를 돌아보는데 웬걸.
대단이는 태권도 학원 하복을 입고 있었다! 하복은 아디다스 운동복이라 더운 여름에는 도복을 입기가 어려워 태권도 학원에서는 도복을 하복으로 대체한다. 평상복으로 입기도 좋아 태권도 학원을 가는 날에는 으레 이 하복을 입고 학교에 간다. 말그대로 태권도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에게는 교복 같은 것이다. 나는 아침에 부랴부랴 나갈 준비를 하면서 하복을 아이에게 입으라고 건네주고 센스 넘치게 태권도 띠까지 챙겨 넣으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