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줄 들어서 나도 갓생을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헛발질을 하든 이불킥을 하든 기록을 글로 남기고 있다. 얼마 없는 지인들 중엔 나의 이런 행보를 응원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재 뭐 하니?"라는 시선임을 느낀다. 그럴 만도 하다. 뭔가 남들 사는 것과는 다르게 살고 싶어 애쓰는 것 같긴 한데 그럴듯한 결과물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눈에 나는 그냥 별난 사람 그뿐이겠지.
제일 가까운 사람들인 가족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창 자라는 아이들을 키우는 나에게 갓생을 살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시간이다. 어른 가족의 지원을 받아야 시간 확보가 가능한데 서글프게도 여의치가 않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들러 육아를 도와주시는 친정 엄마. 시간이 도저히 나지 않아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 회사일과 육아일에 치여 저녁에 헤롱대는 나를 타박한다. 남편은 내가 한다면 막지는 않지만 또 그다지 달가워하지도 않는다. 몸이 피곤하면 짜증이 느는 것은 당연지사다. 일찍 일어났는데 고된 날이면 밤 9시를 기점으로 헐크로 변신하는 나. 남편은 내가 컨디션을 잘 관리해서 평정을 유지하길 바랄 것이다. 분노의 화살이 언제 자기한테 날아올지 모르니.
구구절절 썰을 풀어서 협조를 구하기도 귀찮고 궁색한 일이다. 아이들이 크는 만큼 함께 있는 시간에서 일부라도 내 시간을 챙길 수 있다. 그렇게 나는 또 외롭게 혼자서 협상을 하고 합의점을 도출했다. 마음 깊은 곳의 서운함은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묻어둔 채.
그렇게 충족되지 못한 내 인정욕구의 버튼을 누른 사건이 생겼다. 자기 전에 뭐라도 끼적이려고 노트북을 열었다. 마침 잠자리에 들 시간인데 씻지 않고 늑장을 부리는 딸 뽀뽀가 신경 쓰여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뽀뽀야, 빨리 양치해!" 뭔가에 열중하면 애들은 대답을 안 한다. "아후, 대답도 안 하고 증말!" 부글부글 예열되는 화를 가감 없이 드러내면서 노트북을 노려보았다. 잠시 후 슬며시 웃으면서 뽀뽀가 스케치북을 내민다.
엄마는 오늘도 열심히 뭐를 한다. 엄마, 사랑해.
감동에 꽤 무덤덤한 편인 나인데 나는 종이에 얼굴을 처박고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았던 나의 발버둥. 제일 헤아리지 못할 것 같은 존재가 알아준다. 엄마가 뭘 하는지도 몰라, '뭐'를 한다고 표현한 우리 딸.
네 눈에는 엄마가 뭐하는 것 같니? 네가 생각주머니라고 부르는 것들을 손에 주렁주렁 달고 하나씩 하나씩 모니터 속 세상에 내어 놓는다.
네 눈을 지그시 바라볼 시간을 쪼개 엄마는 글을 쓴다. 한 자 한 자 잔뜩 애를 쓰며 열심히 글을 읽는 네가 언젠가 엄마의 이야기를 읽을 너를 생각하니 참 설레. 너의 사랑이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해 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