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몸담고 있는 부서에는 또래가 한 명도 없다.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는 분들이 꽤 많고 그나마 위로 연배가 가까운 선배는 문민정부 때 대학을 다녔다.(문민정부학번이라고 놀리자 얼굴이 빨개진 채 문민정부가 뭐냐고 뻔뻔하게 반문했던 선배의 귀여움이 떠오른다.) 소수의 MZ들이 있기는 한데 홀로 둥둥 떠 있는 나를 고맙게도 MZ의 끄트머리라며 MZ에 엮어 주기도 한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MZ의 끄트머리일 뿐 MZ와 섞이기에는 무리가 있다. 한데 정신없이 살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초등 학부모가 되어 있는 나는 가끔 이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있다. 육체적, 물리적 나이를 내 정신적 나이가 따라가지 못하는 걸까?
우리 부서에 청년 인턴이 배치되었다. 줄 수 있는 업무가 제한되어 있기에 업무를 고르고 가르치는 것 자체가 일이어서 인턴이 오는 것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그런데 그동안 스쳐 지나간 인턴들만 해도 수십 명이 될 텐데 이 청년은 인상적으로 '좋은' 사람이었다. 싹싹한 태도와 시원시원한 미소 그리고 편안하게 경청하는 능력까지. 괜히 잘해 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게 하는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챙겨 준다는 명목으로 자연스럽게 점심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는 자리를 갖게 되었고 이야기를 나누며 꽤 진심으로 소통이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 날은 우연히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회사 앞에서 만난 그녀가 마치 도망치듯? 저 앞에 가고 있는 MZ직원을 향해 달려가는 뒷모습을 망연자실하게 바라 보았다. 그 순간 씁쓸함과 함께 웃음이 터져나올 것 같아서 조용히 입을 꾹 막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내 출생 연도에 입사한 어르신 선배님들에게 내가 닿기 어렵듯, 그들도 내가 어렵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녀의 나이 때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지? 무엇을 원했지? 뭣 때문에 힘들었지? 떠올려 보았다. 그때의 그 간절했던 마음들이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세상을 안다고 자신했지만 내 앞에 놓인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했고 그 불안감을 멋진 장소를 검색하고 예쁜 음식을 먹으며 달래곤 했던 그 시절. 막연한 불안감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 예민했고 방황했던 하지만 찬란했던, 그때의 나.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일 수도 있는 지금을 덧없이 보내지 않기를, 내가 갖고 있는 반짝반짝함을 잊지 않기를 당부해 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런 오지랖이 결국 꼰대의 잔소리처럼 들리진 않았을까? JYP 엔터테인먼트의 수장, 박진영 씨가 본인의 권위를 내세우기 싫어 직원들에게 '진영 씨'라고 부르라고 한다는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노화라는 물리적 한계를 철저한 자기관리로 극복하려는 모습이 존경스러운 사람이지만 아.. 저것은 너무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 아닌가?라고 괜히 내가 불편했다. 나이나 직위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것을 나는 소탈함으로 생각하고 싶었으나 상대는 불편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다.
20대의 마음으로 40대가 되어버린 나. 마인드가 젊은 것이 아니라 나이에 맞는 성숙함을 갖추지 못한 것은 아니었는지? 찾아가지 말고 찾아오게 하라. 찾아오게 하려면 내 자리에 맞는 경험과 연륜을 갖추어야 한다. 내게 맞는 옷을 입고 있어야 한다. 영화 '써니'에서 딸의 교복을 입고 있는 모습을 아이에게 들키고 어정쩡하게 서 있던 주인공의 모습이 떠오른다. 예전의 향수에 젖는 것도 좋지만. 20대에는 20대의 찬란함이 있듯이 40대도 40대의 찬란함이 있다. 40대에는 40대의 찬란함으로 40대의 스토리를 가져야 한다. 지금을 덧없이 보내지 않아야 하는 것, 내가 갖고 있는 반짝반짝함을 잊지 않는 것은 40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