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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백 Apr 26. 2024

마흔, 비로소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마흔이 되어서야 나에게 다정한 안녕을 건넸다.

누군가에게는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이 나에게는 너무나 어려웠다. 구 나이로 마흔이 되던 해, 살면서 마주하게 될까 피하기만 했던 실패란 것을 경험했다. 한 번이라도 실패하면 나의 세계는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모래성인 줄 알았던 나의 세계는 알고 보니 철옹성이더라. 넘어져 자빠져 울면서도. 쿵쿵대는 내 심장 소리에 번뜩 잠에서 깨 어쩔 줄 몰라 거실을 배회하면서도 나는 비틀비틀 내 힘으로 그 시간을 걸어 나왔다. 그리고 만 나이로 마흔이 되어 깨달았다. 아, 나는 이제야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게 됐구나.


수중에 돈은 여전히 없다. 그렇게 많고 많았던 시간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나를 위한 시간 따윈 한 줌도 없다. 일하랴 애들 키우랴 남편과의 대화는 더욱 줄고 저 사람이 한 때 내가 뜨겁게 사랑했던 사람이 맞나? 싶기도. 원래도 빈약했던 인간관계가 워킹맘이 되면서 그마저도 사라졌다.  아침에 애들 등 떠밀며 뛰어 나가서는 퇴근 후에 애들을 데려오려고 또 뛰어간다.

매번 뭘 그렇게 깜빡하는지 죄송하다는 말을 달고 살며, 꼭 잡은 아이의 고사리손에서 느껴지는 짠함에 괜한 자책감이 밀려올 때도 있다. 집으로 출근해서는 잠이 들 때까지 이어지는 가사 노동과 돌봄 노동. 한숨 돌릴 때면 하루가 다르게 기력이 약해지는 부모님이 눈에 들어온다. 마흔 살, 나의 하루에 내가 설 곳이 없네?


거울만 봐도 알겠다. 희끗희끗 흰머리가 보기 흉하게 눈에 띈다. 내 몸은 오늘도 부지런히 늙어 간다. 통장 잔고도 노화만큼 성실하게 일을 해줬으면 좋으련만.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음을 느낀다. 살아온 중 가장 나이 든 몸으로 이제까지 살아온 중 가장 실속 없이 정신없게 살고 있다. 답이 과연 있을까 싶은 풀어가야 할 문제도 여전히 산적해 있다. 그런데 왜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편안함을 느끼는 걸까?


이유는, 이제야 비로소 나를 사랑하게 됐기 때문이다.


집에서, 회사에서, 길바닥 위에서 동동거리며 고군분투하는 내가 안쓰럽고 짠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틈나는 대로 책을 읽으며 글을 쓰는 내가 대견하다.

아이들에게 짜증 내고 화를 낼지언정 한결같이 최선을 다하는 나에게 고맙다.

식구들은 맛없다고 못났다고 불평하는 내 음식을 나는 맛있게 먹는다.


탁구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기분을 꼭 끌어안고 숨 막히는 교실에서 갇혀 있던 10대, 교복을 벗는 대신 어른이라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어야 했던 20대, 타인과의 비교로 스스로를 괴롭히다 어느새 엄마가 되어버린 30대. 그리고 지금 여전히 가진 건 없고, 앞날은 불투명하고 어느 때보다 어깨가 무거워진 마흔에 이르러서야 나는 비로소 나의 언어로 나를 사랑하는 법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짜증 난다는 말을 입에 달고 불평만 늘어놓던 나, 조금만 힘들어지면 사라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던 나, 실패가 두려워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았던 나.

나를 미워했던 시절의 나를 꺼내 한 번씩 다독인다. 최대한 다정하게. "참 애썼다. 살아내느라."

이제 나는 웃으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거슬리는 사람에게도 먼저 인사를 건넨다. 짜증 나는 상황이 발생해도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눈은 희번덕일지언정 입꼬리는 의식적으로 올린다.(좀 무섭기도..)




오랫동안 자신에 대한 미움으로 심리적 진창에서 헤매던 사람이 나를 사랑하게 된 이야기, 들어 보실래요?


정신없이 달려가다 고개를 돌려보니 보석같은 광경이 곁에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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