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이가 달라졌어요.

대단이의 덩실덩실 댄스는 언제까지? 못해도 괜찮아!!!!

by 영백

대단이가 바둑대회에 나갔다. 바둑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갈 수 있는 생활체육대회지만 대단이가 바둑대회에 출전한다고 한 것은 정말 의외였다. 그도 그럴 것이, 대단이는 문화센터에서 체스를 수년간 배우면서 단 한 번도 체스대회에 나간다고 한 적이 없었다. 바둑을 배우는 친구 훤칠이가 대회를 나간다고 하길래 너는 체스대회에 안 나가냐고 물어보았더니 "내가 그런 델 왜 가?"라고 펄쩍 뛰던 대단이었다. 대단이의 체스실력이 궁금해 가끔 물어보면, 항상 중간 정도라고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근데 오래 다니는 애들 중에서 자기가 제일 못한다고. 자기보다 늦게 시작한 친구들이 더 잘하는 경우도 많다고.

"그럼 체스를 왜 좋아하는 거야?"하고 물어봤더니 "문제 푸는 게 재밌어서"라는 의아한 대답이 돌아왔다.

...... 그래, 뭐 재밌음 됐지. 수요일마다 3년 넘게 다녔던 체스 수업은 대단이가 수요일에 중요한 일정이 생기면서 아쉽게도 중단됐다.


체스나 바둑은 두 명이 마주하고 수를 번갈아 두는 게임이다. 상대방과 수를 겨루는 것이 게임의 본질인데 대단이는 왜인지 상대와 체스를 두는 것을 어려워했다. 그런 대단이가 배운 지 4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바둑대회를 자진해서 나간다니 놀랄 수밖에.

바둑을 처음 배운 것도 대단이의 뜻이 아니었다. 공부라고는 수학문제집 두 쪽 푸는 것이 다인 대단이를 보고 갑자기 불안을 느낀 나는 동네 문화센터 바둑 수업에 아이를 밀어 넣었다. 마침 읽고 있던 초등수학교육서에서 초등 때 사고력을 키우는 데 바둑만 한 것이 없다고 했다. 대단이의 의사를 묻지 않고 저지른 일은 바둑이 처음이었다. 막상 시작하면 대단이가 바둑을 좋아하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문화센터 수업. 뭐든 그냥 하는 법이 없는 대단이는 처음 몇 주간은 입이 댓 발이 나왔다. '내 맘에 안 드는 게 하나라도 있으면 당장 그만둘 거야!' 씩씩대며 강의실로 들어가는 대단이의 뒷모습이 마음의 소리를 방송하는 것 같았다. 수업이 끝나면 풀이 죽어 나왔다.

"나 오늘도 졌어. 2학년한테."

"2학년 친구는 바둑 배운 지 오래된 친구 아냐? 대단이는 이제 시작했잖아."

"근데 내가 제일 못해."

"이제 시작했는데 제일 못하는 게 당연하지. 바둑교실 친구들은 몇 년째 하는 아이들도 많잖아."

"..............."

"일단 한 번 해 봐. 해보다 못 하겠으면 그때 그만두자."


상대와 마주하고 겨루기를 거북해하는 대단이에게서 자꾸 어릴 적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피아노를 배우던 시절 학원 아이들이 모두 나가는 콩쿨대회를 열심히 준비하다 대회를 앞두고 못하겠다며 포기했다. 무대 위에 선다는 생각만 해도 밀려오는 긴장감이 내 심장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거짓말처럼 공부를 손에서 놓아 버리는 일도 있었다. 노력했는데도 결과가 좋지 못하면, 쓸모없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열심히만 하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가능성이라도 남겨 두고 싶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을 수를 두듯 내놓으며 나의 능력을 가늠하고 진짜 나 자신과 대면해야 한다. 나는 나 자신한테 실망할까봐 두려워 그 순간을 계속 피하려고 했다. 대단이도 그런 막연한 두려움에 갇히게 되진 않을까, 걱정이 됐다.


몇 주가 더 지났을까? 대단이가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바둑 교실을 나왔다.

"오늘 처음으로 이겼어. 선생님이 나보고 잘한대."

"진짜? 축하해! 오늘은 바둑이 재밌었구나!"


그 후로 매번 대단이는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나왔다. 왜 그렇게 춤을 추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단이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했다. 어느 날은 종이를 팔락 팔락 들고 춤을 추면서 나왔다.


"그게 뭐야??"

"엄마, 나 바둑 승급심사 해볼래."

뭐?! 바둑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무슨 승급심사? 극강의 가성비충인 나는 이제 막 시작한 쌩초보가 4만 원이나 내면서 급수시험을 본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선생님한테 확인해 보니 승급심사를 해 보라고 하셨단다. 저렇게 덩실덩실 춤을 추는데, 이제 막 껍질을 깨고 나오려고 하는데 돈 4만 원 때문에 아이의 의욕을 꺾을 수는 없겠지.


승급심사가 끝나고 다음 바둑 수업날, 대단이가 또 종이 한 장을 들고 춤을 추면서 나왔다. 아니, 이건 또 뭐야? '2025년 서울특별시 생활체육 바둑대회'


"엄마, 나 바둑대회 나갈래. 선생님이 실력을 키우고 싶으면 개인전, 상을 받고 싶으면 단체전에 나가라고 하셨어. 나는 단체전!"


이게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단이가 대회에 나갈 실력이 아닌 것만은 확실히 알겠다. 그래도 바둑만 하면 오르는 아들의 흥에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대회비를 입금했다. 그리고 2주 후 우리 가족은 승급심사장이자 생활체육 바둑 대회장인 동대문구청을 또 방문했다. 대회 시작 전, 대단이가 속한 조에서 대단이만 초보인 건지 눈치로 확인했다. 대단이가 초보이기 때문에 조원들에게 피해가 간다면 괜히 너무너무 미안할 것 같았다.(대단이가 아니라 내가..) 개인전과 달리 단체전은 좀처럼 빨리 끝나지 않았다. 왜 이렇게 안 끝나냐며 대회장 앞을 서성이고 있는데 대단이가 메달을 떡하니 목에 걸고 나왔다.


"우와, 대단아! 메달 땄네?!"

"어, 단체전 꼴찌는 메달 준대."

"그래? 단체전 나가길 잘했네. 메달이라도 딴 게 어디야.(그래서 상을 받고 싶으면 단체전!이었군.)"


"..............저기서 내가 제일 못해."


대단아, 너 바둑 두는 폼은 영화 승부에서 본 조훈현 9단 같더라. 못해도 괜찮아!! 엄마는 엄마의 두려움이 만든 감옥에서 아주 오랫동안 갇혀 있었어.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네 모습이 세상에서 제일 멋지다. 엄마보다 백배 나은 우리 아들. 자랑스럽다, 대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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