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정확하게 간결하게 전달하기
일주일에 두 번 그룹 필라테스를 한다. 벌써 5년째에 접어들었다. 대단한 몸매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근육이 하나도 없었던 과거와 비교하면, 인바디 측정 기준 평균치의 근육량을 가지고 있으니 장족의 발전이다.(지방이 매우 초과인 건 안 비밀.) 순전히 가격적인 메리트 때문에 다니던 센터를 작년에 옮겼는데 연장하는 시점이 되면 항상 고민이다. 이전의 센터가 가격을 제외하면 여러 가지 면에서 낫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여지없이 프로모션 특별가에 넘어가서 60회 연장을 해 버렸다. 그리고 연장 등록을 하자마자 내가 좋아하는 강사님이 센터를 그만두셨다. 나와 맞는 선생님을 찾기 위한 여정이 시작됐다.
다른 강사님의 수업을 들었다. 긴긴 연휴가 시작하기 전이라 운동을 해야 했다. 그런데 웬걸. 50분 내내 나는 강사님의 설명을 알아듣지 못했다. 옆 사람의 동작이라도 따라 하려고 노력했는데 저분이 제대로 하는 것인지도 아리송했다. 기구 필라테스는 동작을 하기 전, 강사가 미리 설명과 함께 동작을 보여 준다. 일반인들은 사실 이 동작이 몸의 어느 부위를 사용하는 것인지, 어디에 힘을 주어야 하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처음 하는 동작은 눈으로 보지 않으면 말로만 듣고선 절대 못한다. 나처럼 센스가 부족한 사람은 자주 하는 동작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런데 이 선생님은 동작을 시연할 때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셨다. 비어 있는 기구가 있는데 왜 바닥에서 보여주시는 거지? 이후로는 대부분의 동작을 말로 설명하셨는데 뭘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페달을 쥐어뜯듯이 잡아당기세요."
(마음의 소리) 쥐어뜯듯이.. 가 어떻게 쥐어뜯으라는 말씀인지?
"어깨를 하늘 방향으로 돌려주세요."
(역시 마음의 소리)응? 이렇게 이렇게? 나만 뭔가 이상한데?
주위를 둘러보니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회원들이 헤매는 모양새였고, 개운치 않게 50분의 운동이 끝났다. 내가 좋아했던 강사님은 천천히, 정확한 설명과 함께 동작을 시연했고 운동을 하고 있는 중에도 동작을 보여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 본 것만으로 따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살짝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어떻게 몸을 써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몸을 잘 쓰지 못하는 사람의 이해를 도우려면 눈으로 볼 수 있게 하고 쉽고 간결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섬세한 관찰력에 더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배려의 마음이 없다면 터득하기 어려운 기술이다.
모처럼의 휴일, 우리 가족은 광장시장에 갔다. 붐비는 곳이라면 질색이지만 광장시장의 북적임은 싫지 않다. 좀처럼 시장에 갈 일이 없는 아이들도 좋아한다. 특히나 광장시장은 관광객의 물결 속에서 잠시나마 이방인이 되어 보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광장시장에 가면 여행자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래봤자 광장시장에서 즐기고 온 것은 식도락의 낭만이다. 배가 곯을 대로 곯은 상태인 아이들은 평소에는 입에도 대지 않는 녹두빈대떡도 찹찹 먹어치우고, 닭껍질 튀김의 고소함과 생과일주스의 상큼함에 진실의 미간을 보여줬다. 배가 그득 찼으니 집에 돌아 가려는데 꿀타래도 야무지게 챙겼다. 우산을 화장실 앞에 깜빡 두고 와서 다녀온 사이 아이들은 꿀호떡을 사 먹고 있었다. 배 터지도록 먹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하철을 환승하는데 환승 통로가 매우 좁았다. 한국인은 역시 우측통행이다. 자연스럽게 나는 오른쪽으로 붙어 걸었다.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들도 오른쪽에 붙어 걷고 있었다. 내 손을 잡고 있는 뽀뽀는 아랑곳하지 않고 통로 중간을 팔랑팔랑 뛰듯이 걸었다.
"뽀뽀야, 한쪽으로 가자."
내 말을 듣고 뽀뽀는 더더 왼쪽으로 갔다. 잡고 있던 손을 내 쪽으로 잡아끌면서 말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다그치는 어조가 됐다.
"한쪽으로 걸으라니까!"
"한쪽으로 걸으라고 해서 한쪽으로 걸은 건데?"
아! 한쪽으로 걸으라는 말은 저 쪽으로 걸으라는 말도 되는구나. 순간, 아침 운동을 하면서 내가 겪은 불편이 머릿속에 재생이 됐다. 단체생활과 대중교통의 경험이 다년간 쌓여야 오른쪽으로 걷는 것이 국룰임을 알게 된다. 집 밖으로 나가면 경험이 많지 않은 아이들에게 일러 줘야 할 것 투성이다. 아이들과 같이 다닐 때 수많은 말을 한다. 대부분이 금지어나 지시어다. 만지지 마. 뛰지 마. 소리 지르지 마. 이쪽으로 와. 여기서 기다려. 한쪽으로 걸어.
이런 말들이야 어쩔 수 없이 한다 쳐도 나는 그동안 아이들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정확하게 간결하게 쉽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던가? 설상가상 동시에 많은 일들을 처리하느라 '바람 닫아라, 창문 들어온다.' 식의 해석 불가의 말들도 많이 쏟아냈다. "가방은 내려놓고 핸드폰을 들어." "학교에 갈 때는 운동화 대신 반드시 크록스를 신어야 해." 기타 등등 숱하게 많다.
무심코 전하는 말도 아이에게 하는 것이라면 잠깐 멈춰서 눈을 보며 이야기해야겠다. 필요하면 직접 시연도 보여 주겠다. 한쪽으로 걸으라는 말은 오른쪽으로 붙어서 이렇게 걷는 거야. 그래야 마주 오는 사람과 부딪히지 않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