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자 vs 불효녀

희대의 빅매치! 과연 승자는?

by 영백

여름방학이 시작하자, 세상을 불이 삼켜버린 듯이 더웠다. 방학이 되었어도, 방학기간 내내 무더위를 뚫고 돌봄교실에 가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짠한 마음이 밀려온다. 10시 출근으로 근무시간을 변경했다. 9시 30분에 뽀뽀와 함께 집을 나서며 대단이에게 10시까지는 돌봄교실에 가야 한다고 일러두었다. 몇 분이라도 집에서 편안하게 뒹굴거리고 싶은 아이의 마음을 존중해 주었다. 뽀뽀는 대체로 엄마와 함께 나온다. 엄마와 같이 나가는 게 더 좋다고 하니 그 마음 또한 존중해 주었다.


뽀뽀가 다니는 영어교습소는 방학 때도 평상시와 같은 시간에 수업을 운영한다. 그런데 뽀뽀와 함께 수업하는 오빠의 사정으로 선생님께서 하루만 오전에 수업을 하자고 하셨다. 뽀뽀에게 물어봤더니 괜찮다고 한다. 오전에 돌봄교실을 가는 대신 영어교습소를 가면 오후를 여유롭게 보낼 수 있으니 더 좋을 것 같았다. 수업이 있는 날 아침, 뽀뽀에게 어제 이야기한 대로 오늘은 바로 영어학원으로 가야 하니 학원가방과 숙제 등을 챙기라고 했다. 뽀뽀는 알았다며 착착 챙겼다. 현관에서 야무지게 학원가방을 들고 신발을 신으며 뽀뽀가 말했다. "나 학원 안 갈래."


응? 이게 무슨 소리야?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뽀뽀에게 물었다.

"뽀뽀야, 너 어제 엄마가 물어봤을 때 괜찮다고 했잖아. 방금 전까지도 아무 말하지 않았고."

"아니야, 안 갈래. 이따가 오후에 갈래."

"선생님하고 오전에 가기로 약속했는데 갑자기 그러면 어떡해."

"아니야, 안 갈 거야!! 오후에 갈 거야아앙!!!!"


출근시간은 다가오고, 선생님과 약속한 수업시간은 그보다 더 빨리 다가오고. 순식간에 패닉이 된 나는 뽀뽀를 다그쳤다. "아니, 갑자기 왜 그래? 뭐 해야 될 거라도 생각났어?" 뽀뽀는 거침없이 생떼를 부리기 시작했다. "지금 안 가!! 원래 가던 대로 갈 거라고!!!"

아침식사로 준비한 빵을 질겅질겅 씹으며, 보던 만화책에서 눈을 떼지도 않은 채 대단이가 나지막히 읊조렸다.

"저 불효녀."


기분 탓일까. 왠지 'ㄴ'받침도 들린 것 같지만, 일단 시간이 없으니 뽀뽀를 데리고 나갔다. 선생님은 교습소 앞까지 나와 주셨지만 뽀뽀는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고 막무가내 변덕쟁이로 변신한 아이 옆에서 나만 매우 머쓱해졌다.


대단이와 뽀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하지만 눈에 절대 넣을 수 없는 두 아이들. 두 아이들 모두 키우기 녹록치 않았다. 아기 때 좀처럼 울지 않던 순둥이 대단이는 성장의 굽이굽이 나를 고뇌의 늪에 빠뜨렸다. 친구들 간의 상호작용을 이해하지 못해 자잘한 사건들이 끊이지 않았고, 학교에 입학한 첫 해는 내내 외톨이처럼 지내기도 했다. 성향이 비슷한 친구들을 만나 한시름 놓아지나 했더니 이제는 뭐든 그냥 하는 법이 없어 내 애를 열심히 태우고 있다. 대단이에 대한 나의 치열한 고민을 알고 있는 지인들은 대단이가 뽀뽀를 두고 불효녀라고 했다니 배를 잡고 웃었다.


오빠 대단이보다 관계에 대한 이해가 높고, 싹싹하고 명랑한 뽀뽀는 어디를 가도 환영받는다. 하지만 네다섯 살 즈음의 뽀뽀는 말 그대로 야수 같았다. 방글방글 웃다가도 맘에 안 드는 것이 있으면 돌변하는 뽀뽀 때문에 진땀을 흘린 기억이 한두 번이 아니다. 생떼를 부리는 아이를 억지로 차에 태우려다 주차장 바닥에 둘이 같이 나뒹군 것도 수차례. 문화센터 수업이 끝나고 들른 토이저러스. 갑자기 커다란 장난감을 사 달라 몸부림을 치는 뽀뽀와 나의 대환장극을 마트 사람들이 구경하던 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모골이 송연하다.


아이들이 나를 곤란하게 만들고 고민에 빠뜨리게 하는 일이 불효라면, 나는 그 불효를 경험하고 감내하면서 비로소 부모가 되었다. 사건이 생길 때마다 대단이와 뽀뽀라는 두 사람을 끈질기게 연구했다.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달래도 그치지 않는 뽀뽀의 생떼는 그저 가만히 토닥토닥 안아 주면 그친다는 것을. 자기만의 속도로 자라는 대단이는 다그치는 대신, 한 발짝 비켜서 기다려 줘야 한다는 것을 차츰차츰 배워 나갔다. 나를 부모로 성장하게 한 것은 아이들의 불효 덕이다. 속이 답답하다 못해 터져버릴 것 같은 날들은 여전히 현재진행중이지만,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공부할 거야. 너희라는 우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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