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지막 4중주>,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4번
오해의 소지가 있다.
나는 분명 달을 가리키는데!
대화를 하다 보면 혹은 축구와 같은 단체운동, 혹은 합주와 같은 연주에서도 내 표현이 의도와 다르게 전달되는 경우가 있다. 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려고 했을 뿐인데, 내가 공을 저기로 찰 테니 저 쪽으로 뛰라는 신호를 줬을 뿐인데, 템포를 조금 죽이고 싶어서 눈을 크게 떴을 뿐인데. 너의 표정은 내가 받아야 할 느낌표가 아닌 물음표를 짓고 있다. 적잖이 당황스럽고 가끔은 나조차 혼란스러워 어지럽기도 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그 방향은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 심지어 내 말과 내 행동은 세상에 나온 순간부터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영화 <마지막4중주>를 보면 왜 서로를 오해하는지 잘 알려준다. 그리고 그 '오해'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도.
25년 동안 세계 최고의 연주를 보여준 '푸가' 4중주단은 나머지 멤버들보다 30살 정도 많은 첼리스트 피터의 알츠하이머 병으로 존폐 위기를 맞는다. 지금까지 무대 위에서의 이 4명은 하나의 유기체처럼 완벽하게 보였지만 마침내 무대 뒤에 숨어 있던 '오해'가 덮쳐 개별적으로 흩어지게 된 것이다. 자기도취에 심취해 본인의 뜻대로 이끌어온 제 1 바이올린 다니엘, 본인이 그랬듯 자신의 딸에게 깊은 사랑을 주지 못한 비올리스트 줄리엣, 그리고 줄리엣의 남편이자 평생 다니엘에게 열등감으로 사로 잡혀 있던 제 2 바이올리니스트 로버트. 이들은, 그들을 묶어주던, 달을 가리키던 스승 피터의 손가락이 땅으로 내려오자 각기 다른 '오해'를 한다.
언제나 자신의 뛰어난 판단이 이 4중주단을 이끌어 왔다는 '오해'를 한 다니엘. '적당한 때가 없다는 것은 언제나 적당한 때'라는 조깅 친구의 말을 '오해'한 로버트. 엄마의 역할이 미비해도 딸에게 잘 자랄 것을 '오해'한 줄리엣. '노인은 자신이 언제 죽을지 안다'는 말을 오해한 피터. 그들은 지금까지 얼마나 큰 '오해'를 만들었는가. 그 '오해'는 현재 자신들의 삶을 조각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4중주단의 25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며 과거의 그들을 그리워한다. 한 마디로 현재는 막장 그 자체로 느껴진다. 지금까지 어떻게 그들이 완벽한 연주를 했는지 가히 믿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정말 현실이 막장이며 과거의 그들은 항상 완벽했을까?
피터의 은퇴 공연에서 연주하기로 한 베토벤 현악 4중주 14번은 어쩌면 이 모든 '오해'를 풀어주는 답이다. 이 곡은 베토벤이 기존에 존재하던 현악 4중주의 틀을 깨버린 곡이다. 4악장까지 있던 기존의 곡들과 달리 7악장까지 작곡이 되었고 심지어 베토벤은 쉬지 말고 연주하라는 주문을 했다. 왜 그랬을까. 베토벤은 '오해'란 푸는 것이 아니라 경험으로 느껴보는 것이라고 말하는 걸지 모른다. 실제로 첼로를 전공하는 내 친구에게 1악장부터 7장까지 쉬지 않고 연주하는 것이 가능한가 물어봤다. 연주자들에게 이렇게 오래 쉬지 않고 연주하는 것은 음률도 맞지 않고, 튜닝도 안 되고, 한 마디로 점점 엉망진창이 되어버린다는 뜻이란다. 그럼 어떻게 연주해야 할까. 연주를 멈출까? 아니면 모두가 불협화음이어도 필사적으로 서로에게 맞추려고 노력해야 할까.
오래된 연인, 꾸준히 발을 맞춰온 축구팀, 무대 위에서 완벽한 연주를 선보이는 연주가들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매 순간순간을 서로 다투고 나를 너에게 설명하고 너의 표현을 오해해서 다른 길로 빠진 셀 수 없는 경험을 등에 진 거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세상은 많은 '오해' 속에 정립이 되어간다. 나는 달을 가리키지만 너는 내 손가락을 볼 수 있다. 너는 내가 아니니까. 그러니 명심해야 한다. 달을 가리키려는 나의 손에 이미 과거라는 '오해'가 덮친 것일 수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