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라랜드>, 미래의 시간은 과거의 시간 안에 들어있다.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은 아마도 모두 미래의 시간 속에 있고
미래의 시간은 과거의 시간에 들어있다.
우리는 어디쯤 있는 거지?
아직도 재즈의 시대에 사는 남자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은 요즘 시대에서 찾아볼 수도 없는 클래식한 자동차를 타고 다닌다. 클랙슨 울리기가 취미라고 봐도 무방한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뒤통수로도 느끼지 않는 고수다. 하지만 자신의 뛰어난 재즈 피아노 연주 실력을 선보일 장소가 없다는 것이 그의 가장 큰 수치다. 세상은 너무 이상하게 흘러가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 속에 살고 있다. 그는 그것이 가장 못 마땅하다. 그에게 미아(엠마 스톤)는 딱 그런 사람들의 한 중심에 있는 사람이다.
미아 : 사람들이 좋아할까?
세바스찬 : 사람들? 그깟 사람들!
흐르는 시대에 맞추어 사는 전형적인 여자 미아는 자동차조차도 흔해 빠진 도요타 프리우스를 탄다. 어느 파티에서 발렛에 맡긴 차를 찾을 때도 너무 많은 프리우스의 차 키는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다. 특출난 재능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가장 좋아하는 일인 연기를 하는 오디션에서도 그 성향이 나타난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분야에만 지원하고, 캐스팅 현장에서는 내 시간에만 심사위원에게 중요한 전화가 오고, 나보다 예쁜 애들이 판을 친다. 길을 지나다가 영혼을 잡아 끄는 재즈 연주를 듣고 홀리듯 들어간 곳에서 처음 만난 남자 세바스찬도 역시 그랬다. 그녀는 이 매정한 세상에 맞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그냥 맞추어 사는 것이 마음 편하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열정에 끌리게 되어있어.
자신이 잊은 걸 상기시켜 주니까.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사는 이 둘은 결국 서로를 완전케 한다. 이 말은 과거로 대변되는 세바스찬과 현재로 대변되는 미아뿐만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의 연애, 혹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로도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얼마나 타협을 하며 살고 있나. 봄에 느낀 감흥이 벌써 와버린 겨울 속에 차디차게 식어 있지는 않은가? 그것이 사랑하는 애인이라고 해도, 청춘을 다 던져버린 나의 꿈이라고 해도. 영화를 보면 미아와 세바스찬은 서로의 다른 모습에 끌려 본능적으로 만남을 시작한다. 그 만남 속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들어있다. 그러나 그들의 그 시작이 영원하랴. 흐르는 사계절로 대비되듯, 미아의 스윙 댄스는 봄 같지 않다. 만남 후반에는 서로의 마음을 착각하고 오히려 서로의 입장이 뒤바뀌었다. 만약 시간이 영원히 현재라면 절대 돌이킬 수 없을 거다. 그러나 영화에서도 말했듯 그냥 흐르는 대로 놔둬야 한다. 어쩌면 끝과 시작은 늘 그곳에 있을 뿐이다.
영화를 보면 이 둘이 정식으로 교제하는 사이가 되기 전까지 뮤지컬적인 요소가 다분했다. 화려하고 신나고 두근거리는. 그러나 생각해보면 어느샌가 점점 더 현실적인 노래가 많아졌다. 피아노 앞에서 부르는, 마지막 캐스팅에서 부르는 노래처럼. 왜 그들의 시작과 끝은 이토록 다를까. 그것은 무슨 이유일까. 이 문단 위에 있는 저 대사를 오해하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끝이 시작을 앞설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