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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비누 Dec 08. 2016

너를 닮아가는 건 나를 잃을 뿐인데

영화 <더 랍스터>

여기, 영화 속 두 남녀의 끝은 시작을 재현할 수도 없이 너무 변해 있다.
어쩌면 끝이 시작을 앞선다고 해야 할까.

‘더 랍스터’는 주인공 데이비드가 연인에게 버려지자 짝짓기 호텔에 들어가며 시작한다. 그곳에서는 45일 이내에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야 하고 그러지 못하면 동물로 변해야 한다. 사람들은 정해진 날짜를 늘릴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호텔 밖에 있는 숲 속에서 사람 한 명을 사냥하면 하루가 연장이 된다. 그 사람들은 호텔에서 도망친 사람들이다.

'더 랍스터' 호텔

호텔에 머문 사람들은 정해진 기간까지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너'와 사랑할 수만 있다면, 그래서 이 호텔에서 나갈 수만 있다면, 나는 '나'조차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나'를 버리는 건 그렇다 치자, 그렇게 얻은 '너'를 둘러싼 현실은 자꾸만 그 마음을 죽이는 것 같다. 호텔 속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호텔을 떠나 숲으로 도망쳤다.


'더 랍스터' 숲

그럼 숲에서는 어떤가. 호텔과는 반대로 이곳의 룰은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이제 사랑 따윈 믿지 않는다. 호텔에서 연주하는 로맨틱한 재즈보다 이어폰으로 혼자 듣는 일렉트로닉 음악이 더 좋다. 이제 나는 '나'를 지키고 싶다. 그렇게 '너'를 만난다. 네 눈을 보면 내 눈과 닮아 자꾸 마음이 간다. 이제는 '나'를 둘러싼 현실이 오로지 '너'로 모인다. 우리는 비로소 우리를 방해하는 이 숲에서 도망치기만 하면 된다.


'더 랍스터'

부분적이지만 전체적으로 현실과 닮았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게 되고 하라고 하면 시큰둥한 심리도 그렇지만 영화 속 사랑과 가장 많이 닮은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현실을 보라고 한다. 어느 순간에나 그 말은 안전하고 정확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말은 항상 무효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영화와 현실 속 사랑에서는. 사랑할 땐 현실을 보기보다 '나'와 '너'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널 닮은 '나', 날 닮은 '너'가 아니라 '나'와 '너'.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지만 나를 버리고 너를 닮아가는 건 이 세상에서 나를 잃을 뿐이다. 나를 다시 찾음으로써 우리의 끝과 시작은 이제야 현실로 돌아왔다. 영화 속 데이비드는 사랑을 찾기 위한 호텔에서도, 사랑을 찾았지만 숨겨야 하는 숲 속에서도 항상 우울했다. 숲을 벗어난 데이비드는 어떨지 '더 랍스터'의 엔딩을 상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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