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중계가 103kg에서 멈춰 있는 동안

도망치던 체중계 앞에서

by youngvocati

지난 몇 달간 체중계에 올라가기 싫었다.


샤워를 마치고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발로

체중계 위에 올라가는 그 몇 초가,

이상할 정도로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숫자가 깜빡거리다 멈추면,

몇 개월째 똑같은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103kg.


나는 그 숫자를 보지 않기 위해

별의별 이유를 대며 나 스스로에게 변명했다.

바빠서, 학교 때문에,

요즘 컨디션이 안 좋아서,

지금은 적응기니까…


남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그럴듯한 이유를 대며

핑계와 회피를 반복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이런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정작 나는 지난 몇 개월 동안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고

말만 번지르르하게 한 게 아닐까?”


이 질문이 남에게서 들은 것도 아닌데,

내 안에서 저절로 올라온다는 게 싫었다.

이 기분을 느끼는 것 자체가 싫어서,

아예 체중계에 올라가지 않으려 할 때가 많았다.


변명을 계속하고 있다는 기분이

조금씩 나를 좀먹고 있다는 걸 느꼈다.


아마 그래서, 이 브런치북의 첫 글 주제로

계속 회피하고 있었던,

계속 변명만 하고 싶었던

바로 이 이야기를 고르게 된 것 같다.


---


어렸을 때부터 다이어트에 대해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곤 했지만

진지하게 고민하지는 않았다.


운동하는 것도 좋아하고, 먹는 것도 좋아했기에

“조금 더 운동하면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늘 채우고 있었다.


처음 다이어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 건

아마 고2 이후였던 것 같다.


그때부터 급격하게 살이 찌기 시작했고,

뱃살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전까진 뚱뚱하다기보다는

“통통한 편”에 가까웠던 것 같다.


하지만 고2부터는,

몸보다 공부가 더 중요하다고 모두가 말하는 시기였다.


“지금은 공부가 먼저지.”

“수능 끝나고 하면 되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몸에 대한 고민은 잠깐 떠올랐다가도

“나중에 수능 끝나고 하자”는 말로

스스로를 설득하며 외면했다.


그렇게 계속 외면하다가,

수능이 끝난 뒤 체중계에 찍힌 숫자는 122kg이었다.


그때는 그냥

“아, 몸이 망가졌구나”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컨디션은 안 좋았고,

정작 수능이 나에게 중요한지조차

제대로 묻지 못한 상태에서 시험을 치렀으니

결과도 좋을 리 없었다.


공부에서도, 몸에서도,

나는 방향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다.


---


그래서 그때, 처음으로

“다이어트를 제대로 해봐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이건 나에게 정말 중요한 문제다”라는 생각이

내 안에서 또렷하게 들었다.


나는 식단과 운동에 대해

정말 열심히 찾아보고 공부했다.

그리고 약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위고비를 맞기 시작했다.


4~5개월 만에 20kg 넘게 뺐다.


그 과정에서 나는

단순히 살만 뺀 게 아니라,

“나라는 사람”에 대해

훨씬 많이 생각하게 됐다.


학교에서 공부로 배우는 가치들만으로는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나 스스로 시간을 들여

나는 누구인지,

앞으로 어디로 가고 싶은지

고민해야 한다는 걸

처음으로 느끼게 해 준 경험이었다.


---


하지만 그런 마음도

대학 생활이 시작되면서 조금씩 흔들렸다.


새로운 생활 리듬, 새로운 과제들,

새롭게 마주한 인간관계들.


그 사이에서

체중계 숫자는 몇 주, 몇 달째

103kg에 그대로 멈춰 있었다.


나는 또다시 변명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은 1학년이니까…”

“학교에 적응하고 나서 진짜 시작하면 되지…”


그러면서도

내가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다시 약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다시 위고비를 맞아보기로 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선택이 너무 부끄러웠다.


내가 그동안 말해온 것들이

대부분 다이어트와 몸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정작 나는 약의 도움 없이는

못 하는 사람 같아서.


“나는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건가?”

“내 몸 하나도 스스로 못 바꾸면서,

앞으로 뭘 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거지?”


이런 생각이 나를 흔들었다.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지,

나는 남들과 비슷한 길을 가야 하는 건지,

내가 생각해 온 것들에

도전할 자격이 있는지.


내 몸 하나도 제대로 바꾸지 못하는데,

무슨 실천이니, 무슨 사업이니

말할 수 있나 싶었다.


그 생각들 속에서

몇 달 동안 나는,

내가 만든 미로 안을 빙빙 돌고 있었다.


---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103kg이라는 숫자를

이제 더 이상 내 인생의 “기본값”으로

두고 싶지는 않다는 것.


부끄러움을 안고서라도

다시 한번 해보기로 했다.


약의 도움을 받는 나도 인정하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실천들도

다시 하나씩 쌓아보려고 한다.


이게 지금,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는 내가 서 있는

솔직한 출발선이다.


이전 01화내가 아는 것이 틀렸을 때도, 계속 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