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방향 대신, 지금의 나에게 맞는 기준을 다시 그려보는 시간
몇 달 동안 나는, 머릿속 어딘가에 있는 미로를 떠돌아다니는 기분으로 지냈다.
겉으로 보이는 건 학교, 과제, 통학길, 사람들인데
생각은 늘 같은 모퉁이만 빙빙 돌고 있었다.
한 번은 빠져나온 줄 알았던 길로
다시 돌아와 서 있는 느낌.
발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은데,
지도를 펼쳐 보면 언제나 같은 지점에 표시가 찍혀 있었다.
머릿속에는 비슷한 질문이 계속 흘러 다녔다.
“이렇게 해도 되는 걸까.”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다이어트와 실천에 대해 말을 꺼내려다가도
결국 입을 닫고 돌아서는 일이 몇 번이나 반복됐다.
내 몸 하나도 제대로 바꾸지 못하면서,
무슨 실천이니, 무슨 사업이니,
무슨 삶의 방향이니 말할 수 있겠냐는 생각.
그 생각들 속에서
나는 같은 자리에서 맴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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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문득, 예전에 책에서 읽었던 문장이 하나 떠올랐다.
어느 책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그 한 줄만 선명했다.
> 나를 3자의 시선에서 보라.
그래서 잠시 멈췄다.
그리고 진짜로, 나를 바깥에서 바라보려고 했다.
이번에는 ‘나’라고 생각하지 말고,
나랑 비슷한 나이의 한 사람이
내 상황을 그대로 겪고 있다고 상상해 봤다.
다이어트를 여러 번 시도했다.
한 번은 큰 폭의 감량도 해봤다.
지금은 몇 달째 같은 숫자에서 막혀 있다.
그래도 어떻게든 다시 해보려고
계속 고민하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나에게 와서
“내가 이런 선택을 해도 될까?
이 상태에서 다이어트나 실천에 대해 말해도 될까?”
라고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답했을까.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 같았다.
“지금 너한테는 이게 최선일 수도 있지.
조건이 이 정도라면,
쓸 수 있는 도구는 다 써보는 게 맞는 거 아닐까.
그게 네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지금 네가 가진 상황 중 하나일 수도 있어.”
남에게 라면 비교적 쉽게 해 줄 수 있는 이 말을,
정작 나 자신에게는 한 번도 해 준 적이 없었다는 걸
그때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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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내가 헤매고 있던 미로의 규칙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내 머릿속 지도 위에서
어떤 선택들은 자동으로 좋은 길이 되었고,
어떤 선택들은 이유도 모른 채
나쁜 길로 분류되어 있었다.
예전에 나는
다이어트약의 도움을 받아
체중을 뺀 적이 있다.
지금 다시 위고비를 맞아볼까 고민하는 나를 떠올리면
마음 한쪽에서 이런 문장이 올라왔다.
“이건 진짜 내 힘으로 한 게 아니다.”
“이쪽으로 가면 완전히 틀린 길로 빠지는 거다.”
반대로, 머릿속에는 또 이런 기준도 자리 잡고 있었다.
“약이 아니라,
의지와 루틴만으로 버티는 게 진짜다.”
“그렇게 해서 성공한 사람만
실천과 다이어트를 말할 자격이 있다.”
약을 쓰는 쪽은 언제나 나쁜 길,
맨몸 의지는 언제나 좋은 길로 표시된 지도.
나는 그 지도를 의심하기보다는
그 기준에 맞지 않는 나를
계속 깎아내리고 있었던 것 같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나는 어딘가에 ‘완벽하게 올바른 방향’이
정답처럼 존재한다고 믿고 있었던 것 같다.
약에 기대지 않고,
의지와 루틴만으로,
꾸준함으로 버티는 사람.
그런 사람이
다이어트와 실천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 기준에 비해
늘 부족한 나를 떠올리며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하지만 한참을 미로 속에서 헤매다가
조금은 담담하게 인정하게 되었다.
완벽한 방향은 존재하지 않는다.
완전히 잘못된 방향도,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 않다.
예전에 내가 맞았던 약도,
지금 다시 고민하고 있는 약의 선택도,
틀렸다고 단정 지을 수 없고,
지금까지 해 온 다이어트의 시도들 역시
완전히 지워 버릴 수는 없다.
그저 그때그때
내가 가진 정보와 컨디션, 상황 속에서
골라 온 길들일 뿐이다.
중요한 건,
그 길들 중 어느 것도
영원한 정답이나 영원한 오답으로
고정돼 있지 않다는 걸 아는 것.
필요하다면 수정할 수 있고,
조금 돌아가더라도 방향을 바꿀 수 있고,
내가 붙잡고 있던 기준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
이걸 인정하는 순간,
조금은 중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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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당연하게 믿어 온 것들 중
꽤 많은 것들이 틀려 있었다.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면 된다.
꾸준함이 전부다.
의지로만 버티면 언젠가 된다.
이런 문장들은
칼로리 계산표 위에서는 맞는 말일지 몰라도,
지금의 나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문장들이었다.
약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예전의 나는
약을 쓰는 순간
‘자기 힘으로 하지 못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그래서 약을 쓰는 선택과
내가 말하고 싶은 실천의 방향이
서로 완전히 어긋나 있다고 느꼈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려고 한다.
약의 도움을 받는 선택도,
지금까지 해 온 다이어트의 선택들도,
둘 다 내 삶의 일부다.
둘 중 하나를 완전히 지우고
정답과 오답으로 나누는 대신,
이제는 그 사이에서
내가 무엇을 더 배우고 있는지를
조금 더 오래 바라보고 싶다.
이 연재의 제목은
‘내가 아는 것이 틀렸을 때도’다.
여기서 “틀렸다”는 말은
내가 가진 지식 전체가 다 무너졌다는 뜻이라기보다,
그때그때 고쳐 갈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 두는 말에 가깝다.
약을 쓰는 선택도,
약 없이 버티려 했던 선택도,
모두 한 사람의 삶 안에서
계속 수정되고 있는 방향들이다.
이제 나는,
틀린 줄 알면서도 한동안 붙잡고 있었던 기준들,
맞는 줄 알고 믿었지만
결국 내려놓게 된 방식들,
그 사이를 오가며 업데이트되는 생각들을
하나씩 적어 보려 한다.
아마 그 과정에서
‘내가 아는 것(v1)’은 여러 번 틀릴 것이고,
그때마다 조금씩 다른 버전으로 고쳐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수정의 기록들 속에서
“그래도 그때,
나는 나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구나.”
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이 첫 번째 노트를 남겨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