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한 줄이 나한테 힐이 되던 밤
“문장 하나하나 깊게 와닿는다”는 말을 처음 들은 날
그 댓글을 본 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브런치에 들어갔던 어느 날 밤이었다.
과제를 대충 정리하고 침대에 누워
폰으로 이것저것 넘기다가
습관처럼 브런치 앱을 눌렀다.
새 글을 올린 것도 아니고,
딱히 확인할 이유도 없었는데
화면 위쪽에 작은 동그라미가 하나 떠 있었다.
“새 댓글 1개가 달렸습니다.”
잠깐 멈칫했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내 글은 조용했다.
조회수 몇십, 라이킷 몇 개,
댓글은 거의 없는 편.
그래서 “새 댓글”이라는 문구가
괜히 알림 창에 잘못 뜬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눌렀다.
어차피 할 일도 없었으니까.
완결을 앞두고 썼던 글.
실천, 루틴, 공허 같은 말들을 나름 진지하게 꺼내 놓았던 회차.
그 아래,
익숙하지 않은 닉네임 하나와 함께 긴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그냥 “와, 이 정도로 길게 써 주셨네?” 하는 놀라움이 먼저 왔다.
그다음에는 얼굴이 조금 뜨거워졌다.
내가 쓴 문장보다 그분이 남겨 준 문장이 더 잘 쓰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 줄 한 줄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문장 하나하나 깊게 와닿는다.”
그 말을 입안으로 굴려 보다가
갑자기 숨이 약간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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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나빴던 건 아니다.
오히려 너무 기분이 좋았다.
누군가 내 글을
“흔치 않은 독창성”이라고 표현해 준다는 건
내가 상상도 못 했던 종류의 칭찬이었다.
그런데 동시에,
어딘가가 이상하게 뻐근했다.
“문장 하나하나 깊게 와닿는다”는 말은
지금의 내가 감당해도 되는 말인가.
댓글을 읽고 나서
나는 그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어 내려갔다.
실천에 대해서,
루틴에 대해서,
공허와 방향에 대해서
내가 써 두었던 문장들.
그때의 나는 꽤 단단한 사람처럼 보였다.
“실천이 말을 걸어올 때 그 말을 듣는 삶을 살겠다”는 식의 문장들.
폰을 들고 있는 손이 살짝 어색해졌다.
몇 달째 103kg에 머물러 있는 지금의 나와,
그 글 속에서 말하고 있는 나 사이에는
분명히 거리가 있었다.
실천과 루틴이 잘 굴러가는 사람처럼 적어 둔 문장들 아래에서
지금의 나는
다이어트도, 공부도, 루틴도
자주 미끄러지고 있었다.
댓글 속의 나는
“문장 하나하나 깊게 와닿는 사람”이었고,
실제의 나는
그 문장들을 그대로 살아내지 못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그 간격이,
그날따라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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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이 댓글을 생각할수록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말을 들었으면,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써야 하는 건가.”
“실천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라면,
실제로도 실천이 잘 되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댓글을 읽기 전에는 없던 기준이
댓글을 읽은 뒤에는
조용히 생겨난 것 같았다.
누군가가 나를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고 불러준 순간부터
나는 갑자기 그 이름에 맞게 살아야 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실천에 대해 쓰는 사람이라면
실천을 잘해야 할 것 같고,
공허에 대해 쓰는 사람이라면
공허에 대해 잘 다뤄야 할 것 같고,
독창성 있는 글을 쓴다고 칭찬받은 사람이라면
매번 새롭고 멋진 문장을 적어야 할 것 같았다.
그 기준을 다 채우지 못하는 지금의 나는
어딘가 들킨 사람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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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댓글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만이 드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날 이후로
브런치에 들어가면
새 글보다 먼저
그 댓글이 달려 있는 글을 한 번 더 눌러보게 되었다.
기분이 꺼질 때마다
그 문장을 다시 읽어 보는 습관이 생겼다.
“문장 하나하나 깊게 와닿는다”는 말이
지금의 나에게는
조금 과장된 칭찬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언젠가는
저 문장이
전혀 과장이 아닌 날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내 삶이 조금씩 바뀌면서,
내가 쓰는 문장들도
조금씩 따라 바뀌다 보면,
어느 시점에는
그 댓글이
미리 당겨서 말해 준 미래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날 밤,
폰 화면을 끄면
서 나는 조용히 그렇게 생각했다.
아직은 저 말에
완전히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그래, 그때 그 댓글이
괜히 달린 말은 아니었구나.”
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고.
그 댓글을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조용히 가리키고 있는
작은 표지판처럼 마음에 꽂아 두기로 하면서,
그날의 브런치를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