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이 기준이 되어버릴 때

남이 본 나와 내가 아는 나 사이에서

by youngvocati


첫 댓글이 남긴 질문


수요일 글에서 말했듯이,

첫 댓글을 읽었을 때 나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자기 전, 불을 다 끈 방에서

폰 화면만 밝게 켜둔 채

그 댓글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는지 모른다.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서 받은 첫 댓글이라는 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게 다가왔다.


인터넷 상에서 글을 쓰고,

그 글을 읽은 사람이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내가 쓴 글에 공감한다는 것을


직접 적어준 경험은 처음이었다.

정말 ‘처음 듣는 소리’였다.

처음에는 그저 고마웠다.

이렇게 길게, 이렇게 진심으로

내 글을 읽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댓글이 나에게

조금 다른 얼굴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마치 이렇게 묻는 것 같았다.


> 너는 정말 이 글에서 말한 대로 살고 있니?

> 너는 이 말들을 지키면서,

> 네가 한 말에 책임을 지며 살아갈 수 있니?


이 질문들은

댓글을 단 그분이 직접 한 말이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가까웠다.


내가 전에 뱉어놓은 말들을 지키지 못한 기억들,

지켜보겠다고 해놓고

금방 놓아버린 약속들 때문에,

이 질문이 더 크게 들려왔던 것 같다.


“정말 내가 이런 말을 남들에게 할 수 있는 사람인가?”


나에 대한 의심이 조금씩 커져갔고,

그래서 그 댓글이

나를 응원하기보다

나를 시험하는 문장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연재가 끝나고 새 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이 의문이 더 커졌고,

그게 글을 쓰기 어렵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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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숨겨 둔 규칙 하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런 질문들에 대한 생각은

거창한 데서 온 게 아니었다.


누가 내 앞에서

“너는 네 말대로 안 산다”고

대놓고 지적한 적도 없었다.


댓글을 남긴 그분이

나를 몰아붙이려고 쓴 말도 아니었다.


이 질문들은 전부,

내가 나에게 던지고 있던 것들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나한테 이런 규칙을 들이대고 있었다.


> 제대로 하는 사람만 말할 자격이 있다.


다이어트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적어도 몸이 많이 달라져 있어야 할 것 같았고,


실천과 루틴을 말하려면

몇 달은 꾸준히 지켜본 다음에야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주제처럼 느껴졌다.


공부, 성적, 진로,

사업이나 돈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결과가 없으면,

아예 말을 꺼내면 안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니까,

“문장 하나하나 깊게 와닿는다”는 댓글을 읽는 순간,

나는 그 말을

“너는 계속 이런 문장을 써야 한다”는 기준으로

바꿔서 듣고 있었던 거다.


나는 정말,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이 질문이

댓글을 읽을수록 점점 더 크게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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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도 되는 자리, 시험대가 되어버릴 때


돌아보면,

내 일상에는

‘잠깐 쉬어도 된다’는 표지판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뭔가를 시작하면

끝까지 버텨야 할 것만 같았고,


조금만 느슨해져도

금방 “역시 난 안 되나 보다”로

결론을 내렸다.


그런 기준 속에서 보면,

그 댓글은 사실

길 위에 드문드문 있는 큰 휴게소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한동안 혼자 달리다가

숨이 턱까지 차올랐을 때,


“그래도 네가 쓰는 문장은

누군가에게 도착하고 있다”고

조용히 말해주는 표지판.


원래라면,

잠깐 거기서 쉬어가고,

물도 한 잔 마시고,

다시 갈 힘을 얻으면 그만인 장소.


그런데 나는

그 휴게소를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잠깐 쉬어갈 공간이 아니라,


“이 휴게소에 들어오려면

최소한 이 정도 속도로,

이 정도 거리까지는 뛰어온 사람이어야 한다”는

자격 시험장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잠깐 숨 고르라고 놓인 의자를,

“여기에 앉을 자격이 있는지 증명해야 하는 자리”로

바꿔버리고 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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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정의해 온 방식


생각해보면

나는 꽤 오랫동안

나를 이렇게 정의해 왔던 것 같다.


몸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사람,

생각은 많은데 실천은 부족한 사람.


그래서 누군가가

“문장 하나하나 깊게 와닿는다”고 말해줄 때마다,


그 말은 항상

내가 알고 있던 ‘나’라는 사람의 버전과

어딘가에서 부딪혔다.


예전의 나는

이 충돌이 생기면

대부분 이렇게 결론 내렸다.


“저 사람은 나를 과대평가하고 있는 거야.”

“그냥 그날 기분이 좋아서 남긴 댓글일 뿐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부담은 줄어든다.


대신 같이 줄어드는 게 있다.


내가 될 수도 있었던

다른 버전의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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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을 잣대가 아닌 화살표로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지금의 내가

완전히 그 댓글에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억지로 믿으려 하기보다는,


언젠가 저 말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쪽에

조금 더 마음을 두려고 한다.


그러면 그 댓글은

지금의 나를 재는 잣대가 아니라,


앞으로 내가

어떤 방향으로 글을 쓰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조용히 가리키고 있는

작은 화살표 같은 것이 된다.


나를 억누르는 문장이 아니라,

내가 나를 조금 더 크게 상상해 보게 만드는 문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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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재의 제목은

‘내가 아는 것이 틀렸을 때도’다.


아마 앞으로도

내가 아는 나와

남이 보는 나 사이의 간격을

여러 번 마주치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그런 사람 아니야”라고

서둘러 부정하는 대신,


“어쩌면 내가 나를

조금 작게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열어둘 수 있다면,


그게 이 댓글이

나에게 남겨준 가장 큰 선물일지도 모른다.


아직은,

“문장 하나하나 깊게 와닿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말이

나에게 완전히 어울리지는 않을지 모른다.


그래도 언젠가,

내 삶과 글이 조금씩 쌓이다 보면,

“그래, 그때 그 댓글이

괜히 달린 말은 아니었구나.”

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오늘의 노트를 여기까지 적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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