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학·군대·취업 대신 몸·사업·여행을 적어 내려가던 밤
책상 위에 쓰고 있던 노트를 다시 펼쳤다.
오른쪽 위에는
‘앞으로의 계획’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아래에는 연필로 썼다 지운 자국들이
군데군데 겹쳐 있었다.
`26년 2학년 복학`
`군대`
`취업`
단어들마다 동그라미가 쳐져 있고
옆에는 물음표가 붙어 있거나
굵은 빗금이 여러 번 그어져 있었다.
어떤 줄은 진하게 적어 두었다가
X 표시가 여러 번 겹쳐져 있었고,
어떤 줄은 중간까지만 쓰이다 말고
거기서 끊겨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머릿속으로 그려 왔던
‘평범한 루트’가
여러 페이지 안에서 뒤엉켜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노트를 조금 더 가까이 당기고
몇 줄을 천천히 다시 읽었다.
그러다 숨을 한 번 길게 쉬고
페이지를 한 장 넘겼다.
새로 넘긴 페이지 맨 위에
제목을 하나 적었다.
`1학년 이후, 내가 해보고 싶은 것들`
글자를 다 쓰고 나니
잠깐 손이 멈췄다.
나는 줄을 한 칸 내려
첫 번째 항목을 적었다.
`몸만들기`
옆에는 짧게 메모를 덧붙였다.
`다이어트`
`자전거`
`꾸준한 운동 루틴`
올해 내 머릿속을
가장 오래 차지하고 있던 단어들이었다.
그다음 줄에는
조금 다른 말을 적었다.
`사업 · YV`
옆에는 키워드만 나열했다.
`글쓰기`
`영상`
`운동 프로그램`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프로젝트`
실제로 어떻게 할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머릿속에서만 계속 굴리던 말들을
처음으로 노트 위에 옮겨 적는 느낌이었다.
한 줄을 더 내려
세 번째 항목을 적었다.
`여행 · 디지털 노마드`
도시 이름 대신
내가 떠올리는 장면들을 짧게 적었다.
`노트북 하나`
`카페 · 숙소 · 여행지, 그곳에서 이어지는 일상`
`시간표를 내가 짜는 하루`
옆에는
조금 더 작은 글씨로
이렇게 적어 두었다.
`관광이 아니라,
이 방식으로 살아보는 것`
페이지 위쪽에
세 줄의 목록이 나란히 서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나는 펜을 아래쪽 여백으로 옮겼다.
이번에는
페이지 아래쪽에
긴 직사각형 두 개를
위아래로 겹치지 않게 그렸다.
먼저 아래 칸 위쪽에
조금 크게 글자를 적었다.
`내적`
그 안을 가로로 세 줄로 나누고
각 칸마다 단어를 하나씩 넣었다.
`몸`
`정신`
`의미`
몸 옆에는 연필로
작게 `체력 · 건강 · 생활 리듬`이라고 적었다.
정신 옆에는 `집중 · 멘탈 · 태도`,
의미 옆에는 `왜 하는지 · 방향감`이라고
빼곡하게 메모를 붙였다.
그 위, 두 번째 직사각형 위에는
`외적`이라고 적었다.
그 안에는
내가 방금 위에 썼던 단어들을
다시 한번 옮겨 적었다.
`사업(YV)`
`여행`
`디지털 노마드`
그리고 옆에 작게
`돈`, `장소`, `일하는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두 칸을 위아래로 연결하는 선을
조용히 한 번 더 그어 보았다.
아래 칸에는
내가 어떤 사람으로 서 있고 싶은지가 들어 있고,
위 칸에는
그 사람이 세상에서
어떤 모양으로 살아가고 싶은지가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펜을 내려놓고
노트 두 페이지를 번갈아 바라봤다.
왼쪽에는
복학, 군대, 취업이라는 단어들이
지워진 자국으로 남아 있고,
오른쪽에는
몸만들기, 사업, 여행과 디지털 노마드를 적어 둔 목록과
‘내적’과 ‘외적’이라고 적힌
두 개의 칸이 층처럼 쌓여 있었다.
왜 하필 이런 것들을
해보고 싶다고 적었는지,
지금 당장은 그 이유를
길게 풀어쓰지는 못했다.
나는 노트를
‘1학년 이후, 내가 해보고 싶은 것들’ 페이지에 맞춰 펼쳐 둔 채,
조용히 펜을 덮었다.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가
내가 쌓아 보고 싶은 다음 탑의 윤곽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