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은 운동으로만 빠지는 줄 알았다

왕복 62km 통학과 운동생리학이 바꿔준 다이어트 공식

by youngvocati

자전거 통학을 하던 그 2학기 내내

나는 한 가지 공식을 굳게 믿고 있었다.


> 운동을 많이 하면, 살은 당연히 빠진다.


왕복 62km 자전거 통학에

헬스장까지 거의 매일 가고 있었다.

이 정도면, 살이 안 빠지는 게 이상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체중계 숫자가 그대로일 때마다

내가 세운 결론은 늘 같았다.


> “아직 덜 했나 보다.

> 더 타야겠다.”


운동량을 줄이는 선택지는

애초에 내 머릿속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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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쉽게 줄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는 건 분명 좋았다.

해 뜨기 전 강변 공기,

아침 바람이 얼굴을 때리는 느낌,

도로 위를 스스로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감각.


그런데 통학이 쌓이고,

헬스장 출석이 늘어갈수록

자전거는 점점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효율이 안 나오는 투자’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체중계 위에 올라갈 때마다

나는 운동량이 아니라 나 자신을 평가했다.


>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안 빠지는 나는

> 뭔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사람 아닌가.”


살이 안 빠지는 건

내가 게으르거나,

어딘가 부족해서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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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이 바뀐 건,

아이러니하게도 학교 수업 때문이었다.


운동생리학 시간에 교수님이 이렇게 말했다.


> “체중 변화에는

> 운동량보다 섭취 에너지,

> 그러니까 ‘얼마나 먹느냐’가 훨씬 큰 영향을 미칩니다.”


몸무게는 결국

들어오는 에너지와 나가는 에너지의 차이인데,

몸은 생각보다 영리해서

활동량이 늘어나면

다른 데서 에너지를 아끼려고 한다는 이야기였다.


하루에 자전거로 에너지를 많이 써도,

그만큼 평소에 덜 움직이거나

기초대사량을 조금씩 줄이는 식으로

몸이 균형을 맞추려 한다는 설명이었다.


그래서,

> “운동을 많이 하는 것만으로는

> 우리가 상상하는 만큼 체중이 잘 안 빠질 수 있다.

> 진짜 크게 영향을 미치는 건,

> 결국 얼마나 먹느냐 쪽이다.”


정확한 그래프나 수식은 머릿속에서 거의 지워졌는데,

이 말만은 이상하게 또렷하게 남았다.


그 순간,

자전거 통학을 하고 돌아와

샤워를 하고,

물도 제대로 안 닦은 채

체중계 위에 올라섰던 아침들이 떠올랐다.


나는 그동안

‘운동을 얼마나 했는지’만 신경 쓰면서,

‘얼마나 먹고 있는지’는

대충 감으로만 넘기고 있었던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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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내 머릿속 공식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 예전 공식: 운동을 많이 하면 살이 빠진다.

> 지금 공식: 살을 빼려면, 일단 덜 먹어야 한다.

> 운동은 그 위에 얹는 보너스에 가깝다.


이 말을 글로 쓰면

되게 당연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근데 나는

이 당연한 걸 머리로만 알고 있다가,

자전거 통학 시즌을 거치고

운동생리학 수업을 들으면서

몸으로 다시 이해하게 된 셈이다.


운동량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체중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걸

억울하다 싶을 만큼 충분히 겪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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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운동이 쓸모없어졌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공식을 바꾸고 나서

운동의 역할이 더 또렷해졌다.


살을 빼는 건

먹는 것을 조절하는 쪽이

확실히 더 결정적인 문제라면,


운동은 이제

다른 일들을 맡을 수 있게 되었다.


- 아침에 몸을 깨우는 일

- 하루를 버틸 힘을 쌓는 일

- “나, 여기까지는 올 수 있는 사람이구나”를

몸으로 확인시키는 일


왕복 62km 자전거 통학은

체중계 숫자를 크게 바꾸지는 못했지만,

내가 어디까지 페달을 밟을 수 있는 사람인지는

명확하게 보여줬다.


강변 바람,

점점 익숙해지는 거리감,

학교에 도착했을 때 느껴지는 묘한 개운함.


그것들은

숫자가 아니어도 남는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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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나는 다이어트 중이다.

여전히 체중계 숫자를 자주 본다.


‘덜 먹어야 빠진다’는 말을

몸으로 인정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식단을 줄인다는 건

생활 자체를 고치는 일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도 예전처럼

운동 하나에 모든 기대를 걸었다가

실망하는 방식으로 살고 싶지는 않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말해보고 싶다.

> 운동은

> 체중계를 설득하는 도구이기 전에,

> 내가 나한테 설명을 해주는 시간이라고.


오늘 페달을 얼마나 밟았는지보다,

오늘의 나는 어떤 기분으로 돌아왔는지.


얼마나 빠졌는지보다,

그래도 계속 해볼 마음이 남아 있는지.


살이 얼마나 빠졌는지는

체중계가 알려주겠지만,

내가 어디까지 와봤는지는

왕복 62km를 오갔던 다리들이

더 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 생각을 떠올리면,

자전거를 다시 끌고 나가는 일이

조금은 덜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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