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 대신 내가 감당할 불안

남들이 정한 루트 밖에서, 출발하려는 시도

by youngvocati

노트 위에서 처음으로 내 삶을 묻다


책상 위에 노트를 펼쳐 두고

내적과 외적이라는 두 칸을 그려 넣던 그날 밤이

계속 머릿속에서 재생된다.


아래 칸에는 몸·정신·의미,

위 칸에는 사업·여행·‘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삶’.


단어만 보면 별거 아닐지 모르지만,

나에게 그 밤은


처음으로 내 삶에 대해

나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진지하게 대답해 보려 했던 순간이었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은

훨씬 단순한 한 줄짜리 문장이었다.


수능을 보고, 대학교에 들어가고,

군대를 다녀와서 복학하고, 졸업 후 취업을 한다.


이 문장은

너무 많이 듣고,

너무 익숙하게 보아 와서


굳이 의심해 볼 필요조차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중간에 쉼표를 찍는다는 건

뭔가 잘못되거나,

힘들어서 도망치는 사람들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냥 참고 4년 채우는 게 낫지 않아?”

“휴학하면 취업도 늦어지고, 모든 게 늦어질 텐데?”


이런 말을 들으며,

나도 자연스럽게

그게 하나의 ‘진실’이라고 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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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과 외적, 내가 쌓고 싶은 탑의 구조


그런데 1학년을 보내는 동안

조금씩 이상한 감각이 쌓였다.


몸을 바꿔 보려고 자전거를 타고,

다이어트를 하고,

운동생리학 수업에서

내가 믿던 다이어트 공식이

틀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기 계발 책을 읽으며

‘성공’이라는 단어에 달려 있던

너무 반듯한 화살표들이


조금씩 비뚤어져 보이기 시작했다.


열심히 운동하면

당연히 살이 빠질 거라 믿었는데

정작 체중계 숫자는 그대로였던 것처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선택한 학과에서 공부를 하다 보면

재밌게, 열심히 다닐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와는 달랐다.


열심히 학교를 다니면

당연히 ‘괜찮은 삶’에 도착한다고 믿었는데,

정작 그게

내가 정말 살고 싶은 삶인지에 대해서는

점점 확신이 없어졌다.


그래서 노트 위에

‘내적’이라는 칸을 쓰고

그 안에 몸·정신·의미를 적을 때,


조금은 정리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몸이라는 말 안에는

그동안 자전거를 타고,

다이어트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면서

몸으로 깨달은 것들이 들어 있다.


정신이라는 말 안에는

꾸준히 하고 싶은 일을

끝까지 붙잡고 있는 힘,

무너졌을 때 다시 돌아오는 힘,

루틴을 유지할 수 있는 멘탈이 들어 있다.


의미라는 말 안에는

“왜 이걸 하는지”,

“이걸 해서 어디로 가고 싶은지”가 들어 있다.


이 세 가지가

어느 정도는 맞물려 돌아갈 때,


비로소 나는


“아, 나라는 탑의 기초층이

조금은 쌓여 가고 있구나”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위에

‘외적’이라는 칸을 올려놓은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그냥

몸만 건강한 사람으로 살고 싶지도 않고,

생각만 깊어지는 사람으로 살고 싶지도 않다.


내가 쌓은 것들이

어딘가로 흘러 나가고,

누군가의 삶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주고,


그 과정에서 의미 있게,

가능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걸 지금의 나에게서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단어들이

사업이고, YV고,

여행과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삶’이다.


사업이라는 말은 아직도

조금 과한 단어처럼 느껴지지만,


내가 먼저 몸과 정신, 루틴을 실험해 보고

그 과정을 글과 영상, 프로그램으로 정리해서

다른 사람에게 건네주는 일.


그게 내가 생각하는

사업의 모양이다.


여행과,

사람들이 요즘 말하는 디지털 노마드 같은 삶 역시


‘현실 도피’라기보다


내가 만든 일과 루틴을

다른 장소에서도 이어갈 수 있는지

시험해 보는 방식에 더 가깝다.


어디에 있든

아침에 어떻게 몸을 깨우고,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어떤 리듬으로 하루를 마무리할지,


시간표를 남이 아니라

내가 정할 수 있는 상태.


나는 그런 삶을

오래 상상해 왔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풍경이 많아서가 아니라,

똑같은 나인데

배경과 환경을 바꾸면

삶의 리듬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직접 느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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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아래층을 버티게 하는 힘과 내가 원하는 자유


그렇다고 해서

“돈 같은 건 안 중요하다”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언제나 가장 아래층에서

버텨줘야 하는 것들이 있다.


잘 곳, 먹을 것,

몸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


그 바닥을 받치고 있는 곳에는

언제나 돈이 깊게 얽혀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나도 쉽게 못 하겠다.


다만, 내 삶 전체를

돈이라는 한 가지 기준으로만

쌓고 싶지는 않다.


나는 돈을

위에 모셔 두는 왕처럼 대하고 싶기보다는,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조금 더 오래 버틸 수 있도록 움직이는

하나의 도구에 가깝게 두고 싶다.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돈을 어느 정도는 내가 부릴 수 있으려면,


내가 어느 정도의 돈이 있어야

시간과 마음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지를

스스로 알고 있어야 한다.


결국 내가 바라는 건

돈에서 완전히 벗어난 삶이 아니라,


돈 때문에

내가 정한 삶의 방향과 시간을

거꾸로 돌리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일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들을

멋있게 치장하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일일 수 있다.


다만 나는,

내 탑의 아래층이 비어 있는 상태에서

겉모습만 높이 쌓는 구조는

오래 버티기 힘들다는 쪽에

조금 더 마음이 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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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의 순서를 바꾸며 시작해 보려는 다음 시즌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내가 틀렸다고 느낀 건

처음부터 대학이나 취업 그 자체가 아니었다.


틀렸던 건,


“대학과 취업이 탑의 기초고,

나라는 사람은 그 위에 얹히는 장식이다”

라고 믿었던 생각이었다.


이제는 그 순서를

거꾸로 보고 싶어졌다.


먼저 나라는 사람이

어떤 몸과 정신과 의미를 가진 존재인지,

기초층을 쌓아 보고,


그 위에

어떤 삶의 모양을 올릴지

천천히 골라 보려는 것.


대학은 그중 하나의 선택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아주 좋은 탑의 모양일 수 있다.


다만 나에게는,

“반드시 4년을 한 번에 채워야 하고,

그 이후의 루트도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

더 이상은

유일한 정답처럼 느껴지지 않을 뿐이다.


물론 두려움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복학 대신

다른 것을 택한다는 건,


남들이 알아주는 길에서

한동안 벗어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계획대로 안 될 수도 있고,

몸이 생각만큼 따라주지 않을 수도 있고,

사업이 잘 안 될 수도 있다.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삶’은

말 그대로 노마드라서,

안정과는 조금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노트 위에

내적과 외적을 나눠 그려 놓고 나니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나는 더 이상

내 바깥에 있는 구조를

그냥 받아들이는 것으로

안정을 얻고 싶지는 않다는 것.


대신

내 안에 어떤 탑을 쌓고 있는지,

조금은 스스로 알고 있는 상태로

불안과 마주해 보고 싶다는 것.


아직 휴학 원서를 낸 것도 아니고,

내가 만든 계획이

그대로 실현된다는 보장도 없다.


1학년 이후의 삶이

정확히 어떻게 흘러갈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노트에 그려 둔 이 탑만큼은,


“남들이 정해 준 정답”이 아니라

내가 한 번쯤 믿어 보고 싶은 가설이다.


이 시리즈 제목처럼,

내가 아는 것이 틀렸을지 모른다는 걸

조금은 인정해 보면서,


이번에는

남들이 맞다고 말해 온 루트를

잠시 내려놓고,


내가 직접 그려 본

내적과 외적의 탑 위에서,

한 시즌만이라도

살아보려고 한다.


나중에 돌이켜봤을 때

이 선택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는


그때 가서야 알 수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이 불안과 설렘이 섞인 상태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한 번 제대로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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