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밤, 발행하기를 누르기까지
수요일 밤, 두 번째 브런치북의 첫 글을 발행했다.
발행하기 버튼을 누르기 직전까지
손가락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조금만 더 다듬고… 표지도 한 번만 더 보고…
조금만 더 준비하고 나서 시작하자.”
몇 달 동안 나를 붙잡고 있던 생각이었다.
결국 나는,
준비가 다 되면 시작할 수 있다는 문장이
조금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생각보다 조용하게,
발행하기를 눌렀다.
사흘 뒤, 토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습관처럼 휴대폰부터 집어 들었다.
알림에는
수요일 밤에 발행한 글에 달린 하트 몇 개와
새로 생긴 구독자 알림이
조용하게 쌓여 있었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나도
수요일 밤의 그 “결심한 사람”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알람을 세 번이나 끄고,
일어나기까지 스스로와 몇 번이나 실랑이를 벌였다.
운동을 갈지 말지,
점심을 뭐 먹을지,
오늘 글을 쓸지 말지.
수요일 밤에 “새로운 나”가 된 것 같았는데,
토요일 아침의 나는
다시 예전의 나와 비슷한 곳에 서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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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나라면,
여기서 곧장 이런 말을 꺼냈을 것이다.
> “역시 난 안 변해.”
> “의지가 약해서 그래.”
시작이 중요한 걸 모르는 것도 아닌데,
실행이 중요하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는데도,
막상 시작하려고 하면
몸이 먼저 뒤로 물러나는 느낌.
조금만 더 미루고 싶어지고,
아직 안정되지 않은 것 같고,
막상 시작했다가 망하면 어떡하나 싶어
괜히 무서워지는 순간들.
나는 이걸 전부
내 성격 탓, 의지 탓으로만 돌려 왔다.
그런데 요즘은
이 반응이 꼭 “나만 이상해서” 그런 건 아닐지도 모른다고
조금은 다르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사람들이 사냥하고 채집하며 살던 시절에서는
그때의 인간에게
가장 확실한 생존 전략은
“지금 이 상태를 최대한 유지하는 것”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갑자기 새로운 장소로 옮겨 가거나,
낯선 음식을 함부로 먹어보는 일은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 모험이었다.
그 시대의 뇌는
계속해서 이렇게 학습했을 것이다.
> “변화 = 위험”
> “익숙함 = 생존”
그렇게 각인된 회로가
우리 안에 여전히 남아 있다면,
지금 내가 “시작”이라는 걸 앞에 두고
유난히 겁을 먹는 것도
어쩌면 꽤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새로운 프로젝트, 새로운 습관, 새로운 글.
머리로는 “이게 나에게 좋다”는 걸 알고 있어도,
뇌 어딘가에는 여전히
“그냥 지금처럼 살아도 먹고는 사는데,
굳이 모험을 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속삭이고 있는 부위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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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마음을 다잡고
발행하기까지 눌러도 문제는 남는다.
한 번 시작했다는 이유만으로
인생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보장은 없다.
실제로도 그랬다.
일찍 일어나 운동하고,
식단을 챙기고,
글을 꾸준히 쓰는 날들이
며칠간 이어지다가도
어느 순간부터
다시 알람을 미루고,
운동을 빼먹고,
글쓰기 창을 열지 않는 날들이
슬그머니 늘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 롤백이
너무 싫었다.
> “이럴 거면 왜 시작했지?”
> “결국 나는 안 변하는 사람인가 보다.”
그러다 한 번은
심리학 책에서 ‘항상성’이라는 단어를 봤다.
몸이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것처럼,
마음도, 생활도, 심지어는 “나라는 사람의 모습”까지도
익숙한 수준으로 돌아가려는 힘이 있다는 말.
새로운 시도를 하면
일시적으로 그래프가 튀어 올라가지만,
잠깐 방심하면
원래의 선으로 부드럽게 내려오는 그래프 그림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그 그림 속에서,
나는 실패한 사람이 아니라
그저 “예전의 나”와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사람에 가까웠다.
생각해 보면,
항상성이 아예 없다면
우리는 매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어제의 나는 일곱 시에 일어나고,
오늘의 나는 오후 세 시에 일어나고,
내일의 나는 아예 잠을 안 자 버리는 식으로.
어느 정도의 롤백,
어느 정도의 ‘원래대로 돌아가려는 힘’이 있기에
사람은 자기 삶을 이어갈 수 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힘이
지금의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지,
아니면 나를 계속 같은 자리에 묶어 두는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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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침대에서 겨우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았을 때,
나는 수요일 밤의 나와
토요일의 나를 나란히 떠올려 보았다.
수요일의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준비를 핑계 삼던 손가락으로
발행하기를 눌렀다.
토요일의 나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려는 힘에
조금씩 끌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이렇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 “나는 의지가 특별히 약해서가 아니라,
> 그냥 꽤 강한 항상성을 가진 몸과 마음을
> 가지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앞으로 여섯 주 동안
내가 해야 할 일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이 항상성을
조금 덜 과거 쪽으로,
조금 더 내가 되고 싶은 쪽으로
조정해 가는 작업에 가깝다.
새벽 기상, 완벽한 식단, 매일 글쓰기.
이 모든 걸 한 번에 바꾸겠다고 나서는 대신,
수요일에 한 번 발행하기를 눌렀다면,
토요일의 나는 최소한
다시 예전으로 되돌아가려는 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끝까지 지켜보는 사람이라도 되어 보고 싶다.
그게 이 브런치북에서
내가 해 보고 싶은 실험이다.
시작이 중요한 걸 아는 사람에서 멈추지 않고,
시작이 왜 이렇게 두려운지,
왜 이렇게 자꾸 예전으로 롤백되는지,
그 이유를
단순히 “내 탓”으로만 돌리지 않고
조금 더 길게, 조금 더 다르게
설명해 보려는 시도.
그렇게 생각하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이 토요일도
그냥 흘려보내기에는
조금 아까운 하루처럼 느껴졌다.
나는 다시 모니터를 켜고
하얀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수요일 밤에 눌렀던 그 버튼을 떠올리며,
이번에는
되돌아가려는 힘까지 함께 끌고 가겠다는 마음으로
토요일의 이야기를
조용히 타이핑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