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루틴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하루 계획을 정리하고,
주어진 일들을 하나씩 해냈다.
계획표는 빽빽했고,
체크리스트는 자주 비워졌다.
누가 봐도 성실한 하루였다.
나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할 일을 다 했는데도
자꾸만 어딘가가 비어 있었다.
“나는 뭘 그렇게 한 걸까?”
“왜 이렇게 허전하지?”
그래서 더 밀도 있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쉬는 시간에도 책을 읽고,
이동 중에도 할 일을 찾아보고,
잠들기 전까지도 무언가를 채워 넣었다.
이미 오랜 시간, ‘버텨야만 했던 시절’을 지나왔으니까.
쉬면 안 될 것 같았고,
멈추면 놓쳐버릴 것 같았다.
그 시절엔 나를 돌볼 겨를도 없이
해야 할 일들에 쫓겨 살아야만 했으니까.
그러다 보니
지금이라도 내 시간을 붙잡아야 한다는 조급함이
습관처럼 남아 있었다.
나는 금이 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게 아무 일 아니길 바랐고,
괜찮을 거라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았다.
루틴으로 메꿨다.
하루를 더 빽빽하게 채웠고,
나를 더 단단하게 조일수록
무너짐은 멀어질 거라 믿었다.
그렇게 쉴 틈 없이 덧칠한 루틴은
금이 간 벽 위에 시멘트를 바르는 것처럼
겉은 멀쩡했지만,
속은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그게 ‘공허함’이었다.
말할 수 없는 허전함,
할 일을 다 해도 남는 정적,
지켜낸 하루 끝에서 느끼는 이상한 비어 있음.
그리고 결국,
나는 알게 모르게 망가져 있었다.
계획을 미뤘고, 운동을 건너뛰었고,
하고 싶었던 일도 하지 않았고,
해야 할 일들도 하지 않았다.
처음엔 하루쯤은 괜찮겠지 싶었다.
하지만 하루가 이틀이 되고,
그게 계속해서 반복되자 알게 됐다.
나는 쉰 게 아니었다.
그동안 조용히 금이 가던 나만의 댐이
아무도 모르게 터져버린 것이었다.
눈물도, 폭발도 없었다.
그저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왜 이렇게까지 된 걸까.’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금이 가 있었던 걸까.’
질문만 맴돌았고,
대답은 끝내 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열심히 사는 나를 칭찬했다.
“대단하다”, “꾸준하네”, “정말 열심히 살아.”
그 말들이 점점
내가 무너지면 안 된다는 주문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더 말할 수 없었다.
무너졌다고, 지쳤다고, 그만하고 싶었다고.
무너진 댐 뒤로 남은 건
쑥대밭이었다.
정리되지 않은 마음과,
붙잡지 못한 하루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때 내가 메우려 했던 건 금이 아니라,
그 안에서 울리고 있던 나의 신호였다는 걸.
이제는 다르게 해보려 한다.
루틴은 다시 시작되겠지만,
이번엔 나를 억누르는 틀이 아니라,
나를 살리는 구조로.
성과가 아닌 충만함을,
강박이 아닌 방향을,
남이 아닌 나를 위한 하루를.
이 글은 그런 나의 기록이다.
그리고 어쩌면,
당신의 기록이 될 수도 있다.
공허함 속에 조용히 가라앉아 있던 마음에
이 글이,
작은 숨구멍 하나라도 되어주기를.
아직 늦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우리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당신은,
지금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나요?
말로 다 꺼낼 수 없는 감정들이 있다면,
그 조용한 마음도 언젠가 들려주세요.
당신의 이야기 역시,
충분히 누군가의 숨구멍이 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