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은 게으름이 아니었다

Part 1. 공허 속에서 버티는 나

by youngvocati

게라도 다시 시작해 보자는 마음은

분명 진심이었다.

‘오늘 하루, 딱 한 가지만 해보자.’

너무 욕심내지 않고,

기상부터 시작해 보자고,

운동 대신 가벼운 정리부터 해보자고

나는 나를 천천히 일으켜보려 했다.

그 시작은

조금은 조심스러웠고,

조금은 기대에 찼다.

이번엔 정말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작게 시도하며 마음을 붙잡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작게 시작하자’고 다짐하면서도

항상 완벽한 계획부터 세우고 있었다.

하루를 시간 단위로 쪼개고,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해야 할 일들을 줄 세웠다.

‘이 정도는 해야지.’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자.’

그 다짐은 곧 강박이 되었고,

‘조금이라도 못 지키면 소용없어’라는 믿음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렇게 완벽하지 못한 날은

내가 무너져도 되는 날이 되었다.


결국 다시 무너졌다.

계획을 지키지 못한 날이 쌓일수록

나는 점점 자신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또 실패했네.”

“왜 이렇게 작심삼일이야.”

“넌 정말 안 되는 사람이구나.”

그 비난은 날카로웠고,

날카로운 만큼 자주 반복됐다.

나중엔 그 말들이

하루 일과가 아니라 정체성처럼 따라붙었다.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보기 시작했다.

“계획만 세우는 사람.”

“말은 거창한데 실천은 못 하는 사람.”

“또 시작했네.”

그 말들이 아프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더 아픈 건,

그 말들을 내가 이미 내 안에서 되뇌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나를 믿지 못하게 되었고,

남들도 나를 믿지 않게 되었다.


그 시점부터

나는 시도하지 않게 되었다.

어설픈 시작이라도 하려 하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어차피 안 지킬 거잖아.”

“이번에도 또 그럴 거면서.”

“하지 마. 실망만 클 거야.”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하루가 쌓였다.

침대에 누워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다 하루가 지나갔다.

그런 날들 속에서

나는 점점 더 작아지고, 더 무뎌지고, 더 공허해졌다.


나는 한동안

그걸 게으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게으른 게 아니었다.

나는 그저,

완벽하지 않으면 시작도 못 하는 완벽주의에 갇혀 있었고, 조금이라도 실패하면 모든 걸 포기해 버리는 극단적 사고 속에 있었고, 스스로를 반복해서 실망시켜 온 그 기억에 지쳐 있었던 것이었다.


게으름은 내 문제가 아니었다.

내 방식이, 내 믿음이, 내 사고가

나를 스스로 옭아매고 있었을 뿐이었다.

무기력은 그런 내 마음이

“이제 그만하자”라고 보내던 신호였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조용히 말하고 있었던 거였다.


무기력은 게으름이 아니었다.

완벽을 꿈꾸다 무너진 시도들의 잔해였고,

반복된 자기 실망이 만들어낸 믿음의 붕괴였다.

더는 자신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더는 기대하고 싶지 않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 상태.

무기력은 내 마음이 보내던 마지막 구조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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