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공허 속에서 버티는 나
그날은 그냥 그렇게 흘러갔다.
일어나자마자 밥을 먹고,
유튜브를 틀고, 아무 생각 없이 영상을 봤다.
폰을 만지작거리다가,
게임 몇 판 하다가,
다시 영상 보고,
그러다 멍하니 있다가,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해야 할 일은 떠올랐지만,
딱히 손이 가지 않았다.
‘하기 싫다’는 생각도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머리도, 마음도 멈춘 채
그저 시간 속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그 하루는 내가 산 게 아니었다.
그저 흘러간, 살아진 하루였다.
‘사는 중’이라는 감각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문제는,
그런 하루가 한 번이 아니었다는 거다.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비슷하게 흘러갔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미 지쳐 있었고,
시작조차 하기 전에 끝나버린 하루 같았다.
게임을 하고, 유튜브를 보고,
시간이 사라지는 걸 보면서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그게 오히려 나를 더 지치게 만들었다.
SNS를 켜보면
사람들은 바쁘게 살고, 운동하고, 공부하고,
계획을 세우고, 성과를 나누고 있었다.
사람들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런 화면들을 보고 있자면
나만 가만히 제자리에서 멈춰 있는 것 같았다.
그럴수록 더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었다.
말 그대로,
무너지고 있었다.
속으로는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소리가 계속 들렸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그 하루를 또 흘려보냈다.
하루가 지나고, 밤이 되면
거울 속 내가 낯설게 느껴졌다.
“이게 진짜 나 맞나?”
“원래 나는 이러지 않았는데…”
내가 내 삶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살고 있는 나’는 없고,
그냥 흘러가는 하루만 남아 있었다.
문득, 그런 내가 조금 무서워졌다.
이 익숙함이… 두려웠다.
이대로 계속 흘러가다 보면
정말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그런데도,
다시 시작할 힘은 좀처럼 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별것 아닌 장면들이 자꾸 머릿속에 떠올랐다.
책상 위에 먼지 쌓인 다이어리,
계획만 적다 말았던 앱,
예전에 기록해둔 나의 하루들.
‘그냥 다시 해볼까?’
‘작게라도 괜찮지 않을까?’
아직은 확신도 없고,
예전만큼 의욕도 없지만,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는 것 자체가
조금 낯설고, 조금은 반가웠다.
그게 대단한 변화는 아니었지만,
오랜 무기력 속에서 처음으로 떠오른
작은 감정의 파편이었다.
예전의 나와 연결되는 작은 끈 하나가
아직 남아 있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그날 밤,
처음으로 조용히, 그리고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물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내가 흘려보낸 하루들이, 이렇게 많았던가…”
그제야 보였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날들을
그냥 흘려보냈는지.
하루 이틀쯤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잠깐은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위로했다.
하지만 그런 날들이 차곡차곡 쌓여
내 한 달이 되고,
계절이 지나고,
지금의 내가 되어 있었다.
이따금 되묻게 된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어디에 있었던 걸까.
무엇을 느끼고,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아왔던 걸까.
솔직히 말하면,
그런 나 자신이 조금 무서워졌다.
무기력한 나를 방치하는 게 익숙해지면서,
“이 정도면 됐지” 하며 자꾸 기준을 낮추는 나.
변화를 미루면서,
그저 내일을 기다리기만 하는 나.
그게 나인 것 같기도 하면서,
결코 나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두려운 건,
‘이렇게 계속 살게 될까 봐’ 드는 감정이었다.
지금도 힘이 좀처럼 나지 않는데,
앞으로도 계속 이럴까 봐.
언젠가 정말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 될까 봐.
그 불안이 천천히, 그리고 깊게
마음을 잠식해 들어왔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마지막 남은 작은 감정 하나가
내 안에서 천천히 꿈틀거리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괜찮지 않을까.’
‘작게라도 다시 시작해보면 안 될까.’
확신은 없었지만,
그 마음만은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