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잘 못 찾고 인터넷도 잘 못하는데 어쩌죠
"어디있는지 못 찾겠네."
그의 혼잣말이다. 그러나 지향성 혼잣말. 그 말이 나를 향해 날아올 때 생각한다. 내가 찾으면 금방 찾을 것 같은데. 부디 그가 다시 눈 크게 뜨고 찾을 수 있길 바라며 짐짓 못 들은 척 한다.
"하... 이게 수업 내용이 안 나와있어. 이렇게 수업코드만 있고. 어떤 수업인지 어떻게 찾으라는 거지?"
몇 차례 푸념을 듣다가 조용히 내 노트북을 열었다. 그의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클릭, 클릭해보니 실라부스가 실려있는 안내파일이 나왔다. 웃음이 킥 새어나오는 걸 참지 않고 이렇게나 쉽게 찾아진다며 그를 골렸다. 나는 짓궂은 부인이다.
그가 못 찾는 걸 나는 곧잘 찾아낸다. 한국에서 택배로 보내준 새 양말은 옷장 안 스툴 아래에 있고, USB메모리는 수납장 안 은색 파우치 안에 있어. 나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어딘가로 용케도 집어넣고 다행히도 기억을 잘 하는 편이다. 무언가를 꺼내 쓰고 나면 다시 자리에 넣어둔다. 각각의 물건마다 각각의 서랍으로, 그의 카테고리로 돌려보낸다.
그는 '수집'은 엄청 하는데 '수납'은 잘 못한다(안하는 것일 수도 있다). 대학생 시절, 그의 집에 놀러갔다가 1-2학년 때 학교 수업에서 받았을 유인물들이 피아노 위에 더미로 쌓여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분명히 다시 안볼 것 같은데 왜 저렇게 쌓아두고 있지 싶었다. 그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이사했을 때에도 그의 집엔 역시 대학생 시절, 스터디 시절 사용했던 잡다한 유인물이 그저 '쌓여' 있었다. 보관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골라내서 책장이든 수납박스에든 잘 넣어두면 좋을텐데. 그렇다고 버리지도 않고.
눈에 보이는 곳에 쌓아두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어서인지, 그는 물건을 쓰고 나서는 그대로 눈에 보이는 데 내버려두었고, 내가 자리를 정해놓은 물건들의 위치를 알려주어도 이내 그 자리를 잊었다. 여보, 빨래 개서 정리한 거 고마운데 내 운동복은 저기에 넣으면 돼. 아... 이건 여기 보이는 데 그냥 놔두지 말고 찬장 문 한번만 열어서 넣어두면 되는데^^.. 근데 이거 계속 쓸 거야? 버려도 되는 거 아니야?
이런 분류와 수납의 체계가 가상공간에서도 똑같이 작동하는 것인지, 그는 웹사이트에서 으레 '이곳에 카테고라이징 되어 있을 것 같은' 것을 '으레' 발견하지 못해서 내가 종종 찾아주곤 한다. 파일을 다운로드하면 폴더 정리를 안해두곤 나중에 파일을 못 찾아서 또 파일을 다운로드하길래, 처음 다운받을 때 미리 파일을 원하는 곳에 저장해두라 귀띔해주었다. 중요한 이메일에는 플래그를 달아두면 나중에 검색해서 볼 때도 편해. 홈페이지 여러번 들어오지 말고 PDF 내보내기 해두면 언제든 쉽게 열어볼 수 있어.
나는 엄마가 아니야.
물건 찾아주는 건 우리 엄마가 제일 잘했는데. 엄마는 집안일을 도맡아 한 만큼 집안 각종 물건의 원래 자리를 잘 알고 있기도 했지만 누군가가 '여기에 두고는 잊어버린' 물건마저 잘 찾았다. 우리집에선 나도 헐렁이었는데. 지금 나는 집안일을 전혀 도맡아 하지 않지만 그가 놓친 걸 발견하고 그가 무언가를 놓칠 세라 한 마디를 한다. 이것은 점차 잔소리가 되는 것일까.
남편은 주말만 지나면 본격적인 석사 생활을 시작한다. 나도 같이 공부를 하는 처지지만 내 학사일정은 10월이 되어야 시작하는지라 일단 그의 하루하루부터 걱정(?)하게 됐다. 어떡해... 잘 해낼 거야. 진심으로 같이 긴장하고 응원해주다, 무심코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라는 생각이 들 뻔하여 얼른 생각을 멈추었다. 원래 잘 하고 듬직한 사람인데. 특별히 나서지 않아도 본인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자연스레 모이는 사람. 물건 수납 정리는 통 안하는 것 같은데 지식 정리는 잘 해두는지 '척화파 김상헌'이 입에서 툭 튀어나오는 사람. 우리 부모님 상견례 날 별 말 안한 것 같은데 '논리적이고 말 잘하더라'는 예상치 못한 인상을 남기는 사람.
물에 뛰어들기 전 발바닥이 찌르르해져오는 느낌은 즐겨야지 뭐.
부인이 응원할게.
* 이 글은 남편이 쓴 <이제 그녀와 멀어져야 한다>에 이어서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