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어려운 것. 그러나 깨우치고 나면 세상 마음이 편해지는 것.
점심시간에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감사하게도 나에 대한 정말 감사한 코멘트를 들었다.
"저는 OO님과 일하는 것이 즐거워요. 일을 부탁드리는 입장에서 항상 에너지 있게 '해보겠다!'고 시원시원하게 말씀해 주시고, 또 실수하셨을 때는 깔끔하게 실수했다고 인정해 주시고. 함께 일해서 정말 좋아요."
회사 내에서 나의 직무 초점이 Sales Marketing으로 옮겨가면서 협업할 일이 많아진 운영팀의 동료분이었다. 매일 동료들에게서 배울 점들을 발견하지만, 그것을 언어화해서 상대의 눈을 보며 건네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에 표현해 주신 마음이 정말 감사했고, 집에 와서도 곱씹어보게 되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시다면, 감사하고 행복한 대화였어요.)
아, 실수를 인정하는 것.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는데.
실수하면 가차 없이 등수가 오르내리는 환경에서 너무 오랫동안 훈련받다 보니 실수가 드러나거나 나의 무지가 보였을 때 부끄럽고 힘들었다. 그런 순간들에 오히려 실수를 짚어준 동료에게 예민하게 대꾸하거나, 혹은 혼자서 속이 상해 '나는 뭐가 문제일까' '왜 나는 이 정도밖에 못하는 거지' '왜 내 성장은 이렇게 더디지' 하며 끝없이 생각이 이어지는 밤을 보내곤 했다.
스스로의 실력에 자신이 없었고, 그럴수록 실력과 성장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에 집착했다.
실력의 부족이 드러나는 순간에는 내 모든 노력이 부정당한 것처럼 괴로움을 느꼈다. 부족해 보이는 부분을 메꾸기 위해 또 노력하고, 왜 이 노력은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인가 또 괴로워하는 것의 악순환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부분최적화식 성장은 이루어지고 있었겠지만.)
그러다가 4~5년 차쯤 되었을 때, 스스로의 부족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드러내고, 인정하는 것이 빠른 성장의 비결이라는 걸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마케터는 사내에서는 개발자, 디자이너, 다른 마케터, 인턴, 그리고 외부의 대행사, 협업사 담당자들과 동시다발적으로 소통하면서 일을 진행한다. 예전에는 디자인, 개발, 모바일마케팅 등 협업 분야에서 내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부끄러웠고, 실수하면 미안했다. 내가 민폐를 끼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렇지만, 내가 기획한 광고의 기획 의도는 내가 가장 많은 고민을 했듯이, 웹과 앱의 시스템과 효율성에 대해서는 개발자와 PM이, 머티리얼 디자인의 효과성과 미감은 디자이너가, 각 광고 채널의 효율성은 각 플랫폼 담당자분이 가장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저들의 시간과 고민, 전문성을 인정하고, 그들의 의사 결정 로직을 충분히 듣고, 방향성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을 대화해서 조율하는 일.
그 과정에서 이해가 안 되거나 모르겠는 것이 있다면?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 " "이건 궁금해서 질문드리는 건데요" 하고 정중하게 질문한다. 세부 디테일까지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 큰 방향성이 맞고, 걱정되는 지점이 없다면? 웬만하면 상대의 결정을 따른다. 상대가 제일 많이 고민했을 영역이므로.
2~3년 전쯤, 시니어 마케터 L은 나에게 통제에 대한 압박을 내려놓는 꿀팁을 알려주신 적이 있는데, "대세에 지장 없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일을 설겅설겅 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잘 모르겠는 언어와 개념, 영역이 오고 갈 때, 그래서 일이 내 손에 쥐어져있지 않다는 감각으로 스트레스가 올 때면, 이 모호함이 나를 잡아먹지 않도록 주문을 거는 방법이다. "대세엔 지장 없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니, 협업자와 의견이 달라 고민 중인 많은 선택이 사실 상대의 의견을 따라도 전혀 무방한 경우가 많았다.
함께 일한 지 6개월쯤 되어가는 동료 시니어 마케터분 J는 나보다 경력이 훨씬 많으심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나에게 얼마든지 질문하시고 대답을 곰곰이 들어주신다. 그리고 나의 제언을 대부분 따라주시는데, 그때마다 참 감사하고 효능감을 느낀다. 내 고민이 충분히 받아들여지는구나! J는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직무의 사람들과 이러한 방식으로 소통한다.
내가 마케터로서 'Creativity'가 충분한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던 적이 있는데, J는 '마케터는 Creativity가 아니라,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다양한 이들의 의견을 버무려서 끝까지 실행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과연 마케팅에 대한 J의 이러한 생각은, 늘 동료들과 소통하고, 질문하고, 배우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그 부분에서는 당신만큼 나는 알고 있지 못합니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데에는 충분히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무지를 인정하면, 그때부터는 마음 놓고 배울 수 있다. 무언가를 방어해야 한다는 생각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때 두 가지 정도의 전제가 있는데, 내가 해내야만 하는 고민에 있어서는 (그들만큼이나) 시간과 정성을 들여 고민해 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모호함 속에서 자신감을 얻기 위해 업무 외 시간에 해당 영역(개발, 디자인 등)에 있어서 '교양'을 쌓으려는 노력을 하는 것.
실수를 인정해도 괜찮다는 것을 깨우치기까지 스스로에게 참 많은 스트레스를 주었다는 것을 알기에,
실수를 인정할 줄 안다는 동료의 칭찬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준 날이었다. 앞으로도 회사를 학교 삼아 더 많이 배워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