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제니 Nov 16. 2020

서브웨이를 먹으며 든 생각

건강하면서 힙한 게 좋아, 사람도 샌드위치도.

오늘은 퇴근하는 길에 너무 배가 고팠다. 배란기 무렵이라 그런가, 확실히 든든하고 조미료 친 음식이 땡기는 것이, 사람 몸이 항상성이 있는 게 이렇게 또 느껴지는구나 싶었다.


살이 찌고 빠지고를 반복하고,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이 늘어가고 그런 자신이 미워지는 고리를 끊어내고자, 2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습관 성형'을 하기 시작했다. (필자가 좋아하는 건강한 다이어트 회사 '다노'에서 만든 캐치프레이즈. 정말 잘 만든 브랜드 슬로건이라고 생각한다. 성형이라는 단어와 습관이라는 단어의 만남도 그렇지만, 그 표현 자체로 무엇을 하고 싶은 회사인지 너무 잘 보여준다. 그리고 네 글자다!) 탄수화물과 국물을 너무 좋아해서, '나는 밥과 빵과 떡, 그리고 빨간 국물이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야.'라고 단언하던 사고를 끊어내고, 나는 '밥과 빵과 떡의 양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국물이 없어도 식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어주는 과정이 필요했다. (스스로에게 변화를 원할 때 주변에서 믿고 신뢰해주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만큼 스스로가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어주는 자신감 회복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짐-성취의 고리를 작게 가져가야 하고. 그래야 더 자주 자신을 칭찬해주고, 표현해줄 수 있으니까. 자신과 관계 맺는 방법도 정말 타인과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최근 CEO이자 브랜드의 얼굴이신 다노언니가 순산을 하셨다.

무튼, 그 과정에서 실제로 필자의 입맛이 많이 바뀌었다. 지금도 기름지고, 탄수화물이 대부분의 영양성분을 이루는 음식을 먹으면 혀가 즐거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음식이 내 몸에 건강하지 않음을 이미 알아버렸고, 건강하지 않은 것을 먹었을 때의 내 몸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실제로 몸이 보내는 거북하다는 시그널이 식후 만족감에 영향을 주어 맛있게 먹고도 그리 행복하지 않다. 이 굴레가 자리 잡은 것이 온전한 '습관 성형'의 과정이었다. 내 몸이 좋아하는 걸 섭취해야 온전히 행복해지는 기제가 완성된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모든 음식에서 떡사리를 빠짐없이 건져가던 내가, 이제는 한 끼 식사로 면이나 떡류를 먹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애인이 지인에게 필자를 ‘준 비건에 저탄수 식단을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말을 듣고 어찌나 놀랐던지.)


그런 의미에서, 오늘 퇴근 후 서브웨이 꿀조합을 찾아, 짭조름한 게 당기는 날이라 이탈리안 비엠티를 시켜 우적우적 씹고 있으니, 서브웨이를 처음 먹었던 10년 전이 떠오르면서, 참 대단하단 생각을 했다. 사교육을 꽤나 많이 받았던 필자는, 중학교 때 학원이 끝나고 다음 수업을 기다리는 동안 점심으로 뭘 먹어야 하나 가 항상 고민거리였다. 낯을 많이 가리기도 했고, 아무 데나 불쑥 들어가서 혼자 식사하는 게 쉽지는 않은 나이였으므로. 당시 이삭토스트와 서브웨이가 나란히 붙어있었는데, 친언니가 맛있다고 했던 샌드위치 집이 서브웨이인줄 알고 처음 들어갔다가 계속해서 질문을 몰아치는 직원을 마주하고는 거짓말 쬐금 보태 눈물이 날 것 같았고, 어찌어찌 대답을 마치고 먹었던 샌드위치는 짜기만 했다. 다음 수업을 들으며 꽤나 배를 곯았을게다. (그리고는 한동안 이삭토스트를 애용했다.)


그게 벌써 10년 전이니, 10년 동안 서브웨이의 위상이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생각하면 놀라지 않을 수가 없는 거다. 그 사이 바뀐 사람들의 트렌드는 서브웨이에게 '물 들어오는' 변화였고, 이에 맞춰 서브웨이도 노를 참 잘 저어 마케팅을 했다. 사실 내 입맛이 건강하게 바뀌어갔던 건 단순히 내가 20대 후반으로 접어들어 어른의 입맛으로 바뀌고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습관 성형'이라는 단어를 제시해 준 다노와 같은 회사가 나타난 것도, 유튜브 생태계가 생겨나 건강한 다이어트를 말하는 수많은 유튜버들이 좋은 콘텐츠를 무상으로 제공해준 것도 (10~15년 전에는 이소라 다이어트 비디오, 옥주현 비디오 등이 유명했던 것 같다) 모두 밀레니얼이 지속가능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추구하는 데에 한몫을 했다. 자신이 먹고 마시고 두르는 모든 것이 자기를 이루기에 하나하나에 '진리'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내 가치와 취향을 담고 싶어 하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챙기는 사람들에게 서브웨이는 건강하면서, 동시에 간편한 선택지다. 야채는 항상 신선하고, 탄단지를 완벽하게 구성할 수 있으며, 가끔 일탈을 원할 때는 충분히 질펀하게 먹을 수도 있다.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기고 싶은 무드일 때 (보통 월경 끝난 다음 주가 그렇다) 로티세리 치킨에 올리브 오일과 후추, 위트 빵을 초이스해 가볍게 먹고 '건강했다-'며 뿌듯해하고, 몸에 부담을 좀 주고 싶은 날엔 (보통 배란기 근처와 월경 직전이 그러하다) 짭조름한 햄이 잔뜩 들어간 메뉴에 고소한 랜치 드레싱을 한 줄 얹는다. (에그마요를 추가하는 것도 방법이나, 어쩐지 마요는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게 먹어도 속 부대끼는 일 없이 소화가 곧잘 되고, 야채가 듬뿍 들어가 생각보다 든든하다. 맥도날드를 먹으면 그렇게 빨리 꺼지는데. 빠르게 먹었지만 나의 몸과 기분을 잘 보살펴줬다는 만족감이 맥도날드에는 없지만 서브웨이에는 있다.




다만 모두가 알다시피 서브웨이의 가장 큰 대중화 걸림돌은 '익숙지 않음'이었다. 일단 들어가서 알바생과 '진득하게' 이야기하며 본인의 선호를 이야기해야 하는 시간은 내향인에게만 부담스러운 과정은 아니다. 심지어 빵이나 소스의 이름도 그리 입에 잘 붙지 않는다.

그리고 또, 어중간하다. 완전히 기름진 배덕한 맛도, 그렇다고 패스트푸드이기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웰빙'의 기준에 부합하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포지션.


서브웨이는 이 두 단점을 광고 매체별로 스마트하게 풀어낸다. TV 광고에 적절한 연예인을 채택해 서브웨이를 최대한 친숙하고 힙하게 만든다. 메뉴를 고르는 점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내가 원하는 대로 조립할 수 있다는 점으로 역이용해, '조합'과 '센스'에 능한 패셔너블한 연예인들로 유쾌한 광고물들을 만든다. 3년 전 박재범부터, 화사, 블락비 피오와 나다, 장성규, 크러쉬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최근 '민경장군' 캐릭터로 여성들의 열렬한 응원을 받고 있는 김민경도.


올 상반기에는 휠라와의 콜라보로 여러 스타일리시한 아이템들을 출시하기도 했다. 서브웨이 브랜드 컬러 자체가 화려해서 사실 어느 아이템에 매치해도 예쁠 색이지만, 화보컷을 보고 있자니 프라이탁의 느낌도 나는 것이, 음식 브랜드가 패션 콜라보를 꽤나 잘 풀어냈다 싶다.

휠라X서브웨이 콜라보(좌) 화제성은 좋았던 잘 싸운 곰표 패딩(우)

그와 동시에 수면 아래에서는 '건강함'이라는 구체적인 장점을 소구한다. 수많은 운동 유튜버들에게 유료광고를 의뢰하고, 건강하게 먹기 위한 방법들을 콘텐츠화한다. 소위 ‘헬창 트레이너’가 하루 세끼를 서브웨이로 건강하게 먹는 식이다. 이 지점이 재미있는데, 메인 스트림 광고에서는 브랜드의 힙함과 친숙함만을 강조하고, 타게팅하여 접근할 수 있는 온라인 광고에서는 제품이 가진 아주 구체적인 장점과 활용법을 소구한다.

실제로 운동 꽤나 하는 친구들이 서브웨이를 정말 좋아한다

서브웨이는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건강하고 간편하지만 재미있는 브랜드로 자리 잡아간다. 오늘 써브웨이 매장에 앉아서 천천히 위트 빵을 음미하며 씹는 동안, 매장에 들어오는 초중생들이 자신만의 꿀조합을 당당하게 외치며 (“난  원래 터키야” “난 오늘은 미트볼”) 소스까지 완벽하게 주문을 끝내는 모습을 보면서, 10년의 장기적인 마케팅의 결실을(!) 느꼈다. 그러다 야채를 하나씩 음미하며, 그러고 보면 10년 동안 서브웨이를 먹으며 단 한 번도 채소가 신선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는 점을 떠올리고는, 새삼 그 마케팅을 뒷받침한 탄탄한 코어에 감탄을 한 것이다.


아, 그리고 9월에는 얼터밋(대체육) 메뉴를 출시했다. 또 한 번 서브웨이를 관심 갖고 지켜보는 계기가 되었다. 변화의 흐름을 읽고 주 타겟 층의 바람을 똑똑하게 담아낼 줄 아는 브랜드다.

작가의 이전글 불안해하는 자신에게 해야 하는 질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