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제대로 선물하는 맛
대학 때부터 친한 동생 T군의 생일이다. 정은 많은데 살가운 성격은 아닌 T군은 본인의 생일도 홍보하는 법이 없다. 하필 생일이 1월 2일이라 신정 지나고 멍하니 있다 보면 간혹 당일에 생일 축하를 못해주는 경우가 있다. 한 번은 생일에 친한 이들에게 축하를 받지 못했다며 살짝 우울해 하기에 어찌나 마음이 쓰이던지. 그때가 유독 기억에 남아서인지, 아니면 그야말로 '츤데레'인 T군이 감동받는 모습을 보는 게 재미있어서인지, T군의 생일은 웬만하면 잊지 않고 선물을 챙겨주곤 한다.
코로나 시국이라 선물도 비대면으로 주고받는 경우가 늘어, 안 그래도 수완이 좋은 '카카오톡 선물하기'가 계속해서 매출이 빠르게 상승한다고 한다. 간편하게 선물을 고르고 보내기에 카카오톡만한 게 없긴 하다. 필자도 자주 만날 일 없는 사이는 카카오톡으로 선물을 보내긴 한다만은 (만날 일 없는 사이가 반드시 소원한 사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성의 없다'는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 초반의 커피 기프티콘을 선물하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서도 그렇지만, 카카오톡은 뭐랄까, 지나치게 편리하다. 우리가 어떤 사이인지, 얼마를 쓰고 싶은지에 따라 똑부러지게 분류되어 있어, 어쩐지 선물한다는 느낌보다는 효율적으로 태스크를 처리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편지를 쓴다면 진심을 담아 쓰고 싶고, 선물을 한다면 상대방에게 꼭 필요한 걸 사주고 싶은 편이다. 진심이 없는 편지는 '편지'라는 이름 때문에 더 초라하게 느껴지고, 약속 전에 급하게 호불호 안 갈리게 골라잡아 건넨 선물은 찝찝함을 남긴다. 아, 생일 선물이라고 이름 붙이기에 민망한데, 저거.
캘린더 메모장에 'T군 선물 고르기'를 적었다. '뭐 주지?'하고 고민하는 것부터가 선물 여정의 시작이다. 올해는 뭘 줘볼까 고민을 하면서 지난 1년 기억의 조각들을 맞춰본다. 아, 그 친구 요새 뭐에 관심이 있었지. 아, 저번에 집에 가보니 뭐가 아쉬워 보였었지. 이런 과정을 카카오톡 선물하기는 슥삭 단축시킨다.
자취를 하는 T군은 코로나 시국에 모임 장소를 잃은 친구들을 위해 툴툴거리면서도 항상 자취방을 기꺼이 내준다. 어디 보자. 자취방에 둘 분위기 있는 조명? 곧잘 자취방에 콕 틀어박혀있는 T군 집에 조명이 하나 있다면 참 근사할 거야. 친구들 초대했을 때 백열등보다 조명 하나 켜 두면 분위기도 훨씬 살 거고. 퇴근길 지하철에서 '오늘의 집' 앱을 열어 조명을 열심히 검색해본다. 하지만 조명이라는 것이 취향이나 생활 패턴에 따라 너무 갈린다. 장스탠드? 미니 스탠드? 무드등? 한참을 찾아보다가 오늘 선물 검색은 종료.
며칠 뒤. 그렇다면 주방에서 쓸만한 무언가를 선물해볼까. 요리에 관심이 많은데 완벽주의도 있어, 본인이 요리를 해주겠다고 한 날은 전날부터 재료 준비에 손질에 모든 걸 마쳐놓고는, 당일에는 "망했으니 기대하지 마라" "맛이 이상하다" "망했으니 피자 시켜먹자" 등을 연달아 카톡으로 보낸다. 이미 패턴을 꿰뚫고 있는 친구들은 '오늘따라 더 호들갑인걸 보니 대단한 걸 준비했나 보군' 하며 기대감을 높이지만.
집에서 프로틴이랑 시리얼 대충 말아 우적우적 먹지 말고, 스스로 대접해주면서 먹으라고 1인 식기 세트는 어떨까? 다시 검색 시작. 아, 그릇들이 중간이 없네. 인스타그램 감성 얹힌 보급형 접시 vs 고급 접시로 너무 양분화되어있다. 적당한 가격대에 품질 좋은 식기 세트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아예 요리 도구를 선물해줘 볼까. 귀여운 가스버너를 발견했다. 디자인도 괜찮아 보이고, 성능도 꽤 좋다는 평이다. 친구들을 초대했을 때 테이블에 얹어놓고 보글보글 전골 끓여주기에 딱 좋아 보인다. 근데... 사서 몇 번이나 쓰려나.... 탈락.
오늘의집에서는 답이 안 나온다. 실용적이지만 특별함이 부족하다. 나름대로 '브랜드 마케터' 특기를 살려, 괜찮은 작은 브랜드에서 만든 수공예품으로 시선을 돌려본다. 일하면서 알게 된 유명 플리마켓에 참가했던 목조 수공예 브랜드들을 쭉 검색해본다. 오, 역시 수공예로 만든 제품들은 잠깐 봐도 공 들인 흔적이 묻어난다. 요리, 수공예, 홈파티 키워드의 조합으로 요새 핫한 '나무 도마'로 테마를 좁히고 검색하니 속도가 붙는다. 딱 하나, 가격만 빼면 다 좋은데, 수공예 품이라 어쩔 수 없이 비싸긴 하다.
다음날 휴일. 낮잠을 자려다가, 아 맞다, 선물! 하고 다시 네이버에 '나무도마'를 검색한다. 파워링크 광고로 스마트스토어가 하나 뜬다. 속는 셈 치고 한 번 들어가 봤는데, 어 웬걸, 어제 봤던 수많은 나무도마보다 가격대도 적당히 합리적이고, 디자인도 예쁘고, 설명도 사람 냄새가 난다. 리뷰도 꾸밈없이 진솔하다. 어, 생각보다 너무 괜찮은데. 이거보다 괜찮은 거 찾기 어렵겠는걸, 하는 느낌이 온다. 이 정도 느낌이 오면 보통 꽤 괜찮은 선물이 된다.
이미 주소를 알고 있는 친구라 바로 배송지를 입력해서 보내주려고 하는데, 네이버 페이에도 선물하기 기능이 생긴 것이 아닌가? 카카오톡 선물하기가 이렇게 쑥쑥 커가는데 가만히 손 놓고 있을 네이버가 아니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꽤 편리하다. 카카오톡과 연동되어 네이버에서 구매한 상품을 카카오톡 친구에게 바로 보낼 수 있고, 선물 메시지를 받은 친구가 배송지를 입력한다. 현재 프로모션 중으로 네이버 플러스 멤버십에 가입한 구매자는 선물 적립금까지 두둑이 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카카오톡 선물하기가 남겼던 찝찝한 맛이 없다. 만물상인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 온전히 스스로 고른 제품이라는 확신이 있다. 고객 리뷰를 꼼꼼히 읽어보고 살 수 있다. 선물하기 UX까지 매끄러우니 어, 앞으로 이렇게 선물하면 딱 되겠다는 인상을 받는다. 카카오톡 선물하기는 빠르고 효율적인 반면, 네이버 선물하기는 정석으로 했다는 느낌이 남았다.
선물을 보내고 10분 안에 답장이 왔다.
성공! 감동했다는 T군 식의 표현이다.
"애정에 기반한 센스라고 해둘게. ㅎㅎ"
이게 선물의 맛이지. 단순히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하는 것 그 이상. 너를 지난 1년에도 역시나 봐왔음을, 너를 잘 알고 있음을 고르고 고른 물건에 담아 전달하는 것. 바쁘게 살다 보면 매번 이렇게 선물하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마감일에 맞춰 바삐 건네는 선물보다는, 당신이 생각날 때, 내 옆에 있어주어 고맙다는 의미로 찬찬히 골라 불쑥 내미는 선물이 더 재미있긴 하다.
결론은, 생일 축하해, 친구!
사진 출처 :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도요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