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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욱 May 25. 2021

책 읽는 디자이너 생각이 담긴 디자인 (1/2)


'책 읽는 디자이너, 생각이 담긴 디자인'이라는 글을 통해 디자이너가 책을 읽었을 때 가지는 이점과 책을 조금 더 효과적으로 읽는 방법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번 편에서는 디자이너가 책을 읽었을 때 가지는 이점을 다룹니다.




왜 읽어야 할까?


책 읽는 것은 중요하다.

성공한 사람들의 인터뷰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성공의 비결에는 독서가 있다. 그렇다면 이미지와 같은 시각물을 다루는 디자이너에게도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할까? 그렇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아래의 세 가지로 그 이유를 설명하고자 한다.


1. 책을 읽으면 정보가 아니라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소설가는 상상만으로 글을 쓰지 않는다. 이전에 '살인자의 기억법'을 쓴 김영하 작가가 한 방송에 나와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고 소설가가 얼마나 많은 자료를 조사하고 깊이 있는 지식을 토대로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가에 대해 놀란 기억이 있다. 디자이너 역시 창의력만으로 디자인을 하지 않는다. 좋은 디자인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내 디자인을 쓸 사용자에 대한 이해와 함께 여러 분야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가져야 한다.


정보와 지식은 다르다. 예를 들어, Z세대가 어떤 브랜드의 제품을 소비하는지 보여주는 통계자료가 정보라면, 그들이 왜 특정 브랜드에 열광하는지를 파악한 내용은 지식이 된다. 마찬가지로 유튜브나 책과 같은 매체를 통해 보고 읽은 것은 정보이고, 이를 온전히 이해하고 내가 가진 지식 체계의 일부로 흡수시키면 그것은 나만의 지식이 된다.


유튜브를 보는 것보다 책을 읽는 것이 내 지식을 만들 확률이 높다. 유튜브에는 수많은 크리에이터가 다양한 영역에서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준 높은 정보를 제공한다. 나 역시도 유튜브를 통해 몰랐던 분야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을 즐긴다.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튜브에서 본 정보를 다시 되짚어 보고 이를 소화해 내 지식으로 만드는 일은 잘하지 않는다. 하나의 영상을 수동적으로 소비하고 바로 다음 영상을 재생한다.

책은 이와 달리 한 줄 한 줄 공을 들여 읽어 내려가야 한다.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으면 멈춰서 다시 읽기도 하고 중요한 부분은 밑줄을 긋거나 메모를 하기도 한다. 정보를 습득하고 소화하는 과정이 함께 일어나고 이는 곧 내 지식이 된다.


유튜브를 볼 때와 책을 읽을 때 우리의 행동이 다른 것은 각 매체가 가진 특성이 우리 행동을 더 편한 쪽으로 유도하기 때문이다. 정보와 지식을 얻기 위해 꼭 책만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유튜브도 훌륭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두 매체의 서로 다른 성격이 있음을 알고 이 조금 더 들더라도 책 읽는 것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2. 책을 읽으면 사고력을 길러 디자인 원형을 더 잘 만들 수 있다.


디자이너는 직관적 사고가 발달되어 있다. 단계를 거쳐 결과를 완성해 가기보다 결과를 먼저 생각하고 이것이 좋은 이유를 뒤에 찾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무지'와 '플러스마이너스제로'의 제품들을 디자인한 세계적인 디자이너 후카사와 나오토는 인터뷰에서 클라이언트와 첫 미팅에서 바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프로젝트 전반에 걸쳐 매우 어려움을 겪는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는 디자이너에게 통합적이고 직관적인 사고가 매우 중요함을 보여주는 사례기도 하다.


직관적 사고가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디자이너들만의 매우 훌륭한 무기이다. 'Design Thinking'이라는 것이 디자인계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화제가 되고 이를 배우려는 움직임이 일었던 것은 모두 디자이너의 직관적 사고가 가진 특별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일을 직관적으로만 해결하고자 할 때 문제가 발생된다. 디자이너라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다른 디자이너들은 어떻게 디자인을 했는지 예시를 찾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때 자칫하면 참고한 디자인에 생각이 갇히는 상황이 발생한다. 참고한 디자인보다 나은 아이디어를 생각하려고 할수록 더 틀에 갇히게 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게 된다.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은 디자인 프로젝트가 시작된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본질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중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왜 시작됐는가?' '내가 만든 디자인이 사용자에게 어떤 가치를 줄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며 생각을 전개하다 보면 다른 어떤 디자인과도 다른 나만의 고유한 디자인, 즉 디자인 원형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이 디자인이 훌륭한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도 있게 된다.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답을 찾는 사고력은 책을 읽으며 기를 수 있다. 독서가 사고력을 키워주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언어능력의 향상' 한 가지만 이야기하고자 한다. 책을 읽으면 평소 쓰지 않는 단어들을 많이 접하게 되고 이는 곧 우리의 언어의 폭과 수준을 높여준다. 우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 수준에서 생각할 수 있다면, 언어 능력의 향상이 우리의 사고력을 높인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디자인은 특히나 추상적인 개념을 많이 사용한다. 책을 가까이하면 어휘력과 사고력이 향상되고, 더 적절한 개념과 더 깊이 있는 생각을 내 디자인에 담을 수 있다.


3. 책을 읽으면 사람(사용자)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디자인은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되어 사람을 위하는 것으로 끝난다. 멋있으려고 쓴 말 같지만 디자인은 정말 사용자로 대변되는 '사람'이 시작이자 끝이다. Human-Centered Design이란 개념과 방법이 디자인 분야에서 오래도록 활용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만큼 디자인에서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 여러 종류의 사용자 조사 방법들을 동원해 사람을 관찰하고 분석한다. 그런데 평상시 사람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없던 디자이너가 디자인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후에 특정 사람들만 집중적으로 분석해 과연 그들의 내면에 숨겨진 의미 있는 것들을 발견해낼 수 있을까? 아마 그럴 확률은 높지 않을 것이다.


그럼 평상시에 사람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이 역시도 책에 해답이 있다. 나는 예전에 故 장영희 교수님이 쓰신 '문학을 왜 읽는가?'라는 글을 읽고 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 이 글을 읽기 전까지 솔직히 문학을 읽는 것을 단지 남는 시간에 하는 취미활동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 글에서 소개된 일화를 읽고 문학을 읽는다는 것이 결국 읽는 사람의 내면을 깊게 만들고 다른 사람을 공감할 수 있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문학을 왜 읽는가' 본문 내용을 발췌해 글 마지막에 적어두었으니 한 번 읽어보면 좋겠다). 수필을 읽으면 평상시에 깊은 대화가 아니면 얻을 수 있는 한 사람의 관점을 엿볼 수 있고, 소설을 읽으면 등장인물들이 겪는 일들에 공감을 하며 이야기를 따라갈 수도 있다. 이밖에도 모든 책이 사람과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있고 이것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사람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사람,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할 수 있는 디자이너가 결국은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멋진 디자인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마치며


지금까지 디자이너 입장에서 책 읽기가 왜 중요한지 세 가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았다. 다음 편에서는 책 읽는 것을 조금은 쉽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보다 실용적인 방법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문학을 왜 읽는가?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中에서)


  어제 출근길이었습니다. 우리 집은 서울 마포구 연남동인데, 제가 몸담고 있는 서강대학교로 가려면 한 차선으로 된 비탈길을 지나야 합니다. 길이 좁은 탓에 차 두 대가 한꺼번에 못 지나가고 한 대씩 천천히 가게 되어 있습니다.

  평소 지각을 잘하는 저는 어제도 회의 시각에 늦었습니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그 경사진 길에 차들이 멈춰 서서 꼼짝도 안 하는 것이 아닙니까. 마음은 급한데 때 아닌 정체라니, 전 창밖으로 목을 길게 빼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내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제 앞차 바로 앞으로 허리가 기역 자로 꼬부라진 할머니 한 분이 작은 수레에 마분지 상자 너덧 개와 폐지를 싣고 천천히 언덕을 내려가고 계셨습니다. 제 뒤로도 차들이 줄줄이 늘어섰지만, 비켜설 데가 없는 곳이라 할머니가 다 내려가실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제 바로 앞차는 젊은 남학생이 운전을 하고 여학생이 보조석에 타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대학생인지는 모르겠지만, 차도 꽤 좋은 차였습니다. 앞차는 계속 할머니를 향해 경적을 울려댔습니다. 그렇게 빵빵거려도 할머니는 피할 수도, 비켜줄 수도 없었습니다. 저 같으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조용히 기다리거나, 정 급하면 옆에 앉은 여학생이라도 내리게 해서 할머니가 빠르고 안전하게 내려가시도록 도왔을 겁니다.

  그러지는 못할망정 계속 빵빵대는 젊은이들을 보며, '저 사람은 평생 문학 작품이라고는 한 번도 못 읽어본 사람일 거야. 아침에 일어나면 뭐 맛있는 걸 먹을까, 어떻게 하면 여자 친구랑 호텔에 갈까 이런 것만 생각하며 살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할머니가 거동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얼마나 당황하고 계실지 절대로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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