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나왔다

<퓨처랩: 미래를 위한 디자인 연구실> 출간 소식

by 정영욱

대학 교수가 책 쓰는 것이 뭐 별거라고.


애써 쿨한 척해보지만 뿌듯한 건 어쩔 수 없다. 전체에서 20페이지 남짓이 내가 쓴 분량이지만 그래도 저자명에 내 이름이 있는 게 신기해서 교보문고 앱에 들어가 책 소개 페이지를 보고 또 본다. 다른 아홉 분의 교수님들과 함께 쓴 <퓨처랩: 미래를 위한 디자인 연구실>이 출간된 것이다.


작년 이 무렵,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윤재영 교수님께 연락이 왔다. 다른 대학 디자인학과 교수님들과 연구 그룹을 만들고, 연구 결과를 책으로 내보려고 하는데 같이 해보자는 제안이었다. 항상 그렇듯 내 답은 ‘오 좋습니다’였다. 나는 일을 벌이는 건 잘못해도 들어오는 제안은 대부분 수락한다. 그렇게 출판 프로젝트는 작년 3월 28일 홍익대 홍문관에서 첫 모임으로 시작되었다. 연구 그룹에 참여하게 된 교수님들과 안그라픽스 관계자분들이 모여 책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출판사 분들을 만나니 책을 낸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안그라픽스에서 그동안 여러 명의 디자이너 혹은 교수님들이 함께 쓴 책의 사례들을 들고 와 보여주었다. 나는 마치 책이라는 문물을 처음 접하듯 조심스럽게 펼쳐보았다.


책은 AI를 포함한 현재 주목받는 기술과 디자인에 대한 주제로 쓰는 것으로 방향이 잡혔다. 각 교수님이 연구한 내용을 세미나 형태로 진행하고, 그 내용을 토대로 집필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회의에 이어 저녁 식사까지 한 뒤에 출판을 위한 첫 모임이 끝났다. 집에 오는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열고 연구 주제를 끼적였다. AI와 디자인이라.


세미나는 작년 6월, 7월, 8월 총 세 번에 걸쳐 진행되었다. 나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심규하 교수님, 유니스트 김황 교수님과 함께 마지막 세미나에서 발표하기로 했다. 시간을 좀 벌어 다행이었다.


대학에서 학기는 정직하게 흘러간다. 3월 2일에 개강을 하면, 2주 차 강의가 다가오고, 그렇게 한 주 한 주가 거듭되면 6월 20일쯤에 어김없이 종강을 맞이한다. 달력을 보니 작년에도 6월 19일에 종강했다. 종강을 하고 성적 처리를 했다. 학기 중에 못 한 밀린 일들까지 하고 나니 벌써 7월이었다. 이제 쓸 때가 됐다.


책을 내는 것은 처음이지만 디자인 프로젝트는 수없이 해왔다. 디자인 프로젝트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명확한 컨셉의 유무다. 프로젝트 전체를 아우르는 뾰족한 디자인 컨셉을 잡았다면 결과는 대체로 성공적으로 나온다. 글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했다. 내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제목이 나오면 글은 그 제목 아래서 정리되리라 생각했다. 그동안 디자인과 AI에 대해 연구하고 고민해 온 내용들을 펼쳐놓고 고민한 끝에 제목을 뽑았다.


‘디자이너, 사고하는 기계를 만나다’


마음에 든다. 이 제목이라면 뻔한 이야기로 흐르지 않을 것 같았다. 목차를 구성하고 한 꼭지씩 내용을 정리했다. 물론 AI를 활용했다. 챗GPT에게 글 쓰는 목적을 설명하고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 알려준 뒤에 초안을 써보라고 했다. 그럴듯한 내용이 나왔다. 하지만 내 글이 아니다. 내 이야기가 하나도 담겨있지 않아 내 글이 아니었다. 그래서 읽고 참고하고 버렸다. 처음부터 다시 썼다. AI를 사용해 책을 쓴 과정은 다음 글에서 더 자세히 다루려고 한다.


7월 14일부터 8월 1일까지 약 3주 동안 매일 두 시간씩 글을 썼다. 웃긴 얘기지만 새벽에 일어나 매일 200자 원고지 스무 장 분량의 글을 쓴다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생각났다. 아주 아주 조금 나도 그 루틴을 경험을 했다. 초고가 완성되고 소리 내 읽어봤다. 글쓰기 책에서 그렇게 하라고 배웠다. 소리 내서 읽어보고 어색한 곳을 여러 차례 고친 뒤 내 몫을 마쳤다. 글은 안그라픽스 담당 편집자께 전달되었다. 두어 번 세부적인 수정 과정이 있었고, 평소보다 담당 과목이 많았던 지난 가을 학기를 마칠 때쯤 책이 거의 완성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글을 쓰는 1월 20일 오늘이 정식으로 책이 출고되는 날이다. 두꺼운 텍스트가 쉽게 요약되고 정보가 빠르게 소비되는 시대에 책을 내는 의미가 있는지 사람들은 반문한다. 몇 사람이나 내가 쓴 글을 시간을 들여 읽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나는 좋다. 내가 쓴 글이 담긴 책이 어느 서점에 있는지 찾아서 마중 갈 생각을 하면 신이 난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900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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