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바람
소리와 냄새, 그리고 기도
몇 년 전 일이다. 한가한 주말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볕에 누운 고양이처럼 침대에서 게으름을 피우고 있을 때였다. 꿈을 꾸듯 멀리서 아득한 소리가 들려왔다. 풍경 소리였다. 순간 내 가슴은 두근거렸고 알 수 없는 감동으로 가득 차 올랐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불규칙적이고 작위 없는 저 바람 소리에 나는 한동안 귀를 기울였고, 이내 긴 잠에서 깨어난 것 같은 기분으로 상념에 잠겼다. 하지만 내 이성은 곧 감성을 추월했고, 그 풍경 소리는 처음 듣는 게 아니라 늘 듣던 소리라는 것을 내게 알려 주었다. 사실이었다. 멀리도 아니고 바로 옆집 처마에 달린 풍경이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소리였던 것이다. 그러나 익숙한 것들이 문득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들을 언제나 고대하는 내게 그 소리는 이미 보이지 않는 세계가 내 일상으로 침투하여 건넨 인사였으며 내 안의 나를 깨우는 노래였다.
바람은 소리를 실어 나른다. 소리는 부동의 존재자를 살아 숨 쉬게 하는 바람의 노래다. 내가 그날 들었던 소리는 바람이 불어 풍경이 움직이는 순간 말 없던 두 존재자가 공명하며 모습을 드러내는 소리였다. 존재의 의미를 깨닫고 자신에게 주어진 고유한 사명을 감당하는 거룩한 순간이었다. 풍경은 거친 바람에 저항하지 않고 온몸을 실어 바람과 함께 모든 순간들을 노래로 승화시킨다. 풍경(風景)이 되어버린 풍경(風磬)은 더 이상 풍경이라 할 수 없다. 풍경은 바람을 타고 노래해야 풍경다운 풍경이 된다. 그날 나는 풍경에게 한 수 배울 수 있었다. 바람은 버티지 않고 타는 것이라고. 존재는 시련을 피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그것을 정면으로 승부하며 온전히 끌어안을 때에야 비로소 그 시련과 함께 승화된 모습으로 삶을 노래할 수 있다고. 나는 잠시 눈을 감고 나도 그렇게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신께 조용히 기도했다.
풍경 소리로 열린 내 귀에는 다른 미세한 소리들도 들려왔다. 바람은 새가 이따금 지저귀는 소리, 나뭇가지가 바람에 나부끼는 소리, 무리를 지어 거리를 지나가는 아이들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도 함께 실어왔다. 그것들은 평소에 잊고 있던 숨은 존재자들의 고요한 외침이었다. 항상 존재하지만 좀처럼 들리지 않던 소리들. 내 마음과 생각을 흥분시키고 영혼까지 잠식시키는 끝없는 탐욕의 소리들에 묻혀 언제나 배제되고 소외되어 왔던 작은 소리들. 내 안의 소란함이 멈추면 비로소 들리기 시작하는 고요의 소리들. 수치심과 죄책감에 몸을 떨며 나는 다시 신께 기도했다. 작지만 사그라들지 않는 저 소리들을 좀 더 사랑할 수 있기를. 변함없이 내 일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저 작은 소리들을 경청하는 경건한 침묵의 사람이 되기를.
기도를 마칠 무렵 고소한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 어디선가 버터 향 가득한 토스트를 굽고 있는 듯했다. 갑자기 허기를 느낀 나는 미끄러지듯 침대에서 빠져나와 곧장 주방으로 내려가서 식빵과 버터를 준비하고 프라이팬을 가열했다. 스틱으로 된 가염버터를 가열된 프라이팬에 두루자 조금 전에 맡았던 바로 그 향이 더 강렬하게 나기 시작했다. 희열이 일었다. 어제 산 신선한 식빵 두 조각을 올려 타지 않고 적당히 연한 갈색이 나올 때까지 앞뒤로 살짝살짝 가장자리까지 골고루 눌러주며 구웠다. 아들은 우유 한 잔, 나는 진하게 내린 커피 한 잔과 함께 버터 향 가득한 토스트를 즐겼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디선가 누군가는 이 맛있는 냄새를 맡겠지. 바람에 실려 누군가의 코를 간지럽히겠지. 속으로 쿡쿡 웃으며 나는 그날 아들과 그렇게 늦은 아침식사를 했었다.
바람은 냄새도 실어 나른다. 냄새 역시 부동의 존재자를 일으키는 힘이 있다. 하지만 소리와는 다르다. 냄새는 기본적인 욕구를 자극하고 마음보다는 몸을 깨워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날 바람에 실려온 버터 향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침대에서 더 뒹굴대며 게으름을 만끽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냄새는 소리보다 더 역동적인 힘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결국 그날 내 게으른 몸을 움직이게 만든 힘도 소리가 아닌 냄새였지 않은가.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는 방으로 올라갔다.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들렸던 풍경 소리는 무언가를 경고하듯 맥박을 더 빨리 하고 있었고, 구수한 버터 향은 온데간데없이 축축한 흙냄새가 섞인 비 냄새가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서둘러 창문들을 닫자 고요가 엄습했다. 바람은 거세졌고 빗발은 창을 때렸다. 경고음이 되어버린 풍경 소리도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시계 초침 소리가 크게 들렸고, 귓전에 울리는 내 심장 박동 소리는 점점 온 세상을 가득 메우는 듯했다. 외부의 소리들을 차단하자 내부의 소리들이 볼륨을 높였던 것이다.
폭풍 가운데 안전한 은신처로 피신한 것 같은 기분에 그렇게 한동안 젖어 있을 무렵 또 다른 깨달음이 나를 찾아왔다. 비바람이 몰아쳐 창문을 닫은 뒤 내가 누리고 있던 평화에 대해서였다. 내게 임한 평화는 비바람으로부터의 피신인 동시에 비바람이 가져다준 선물이라는 것. 곧장 나는 ‘제자리’의 의미를 생각했다. 그날 아침 늘 듣던 풍경 소리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더라면, 마침 그때 버터 향이 나지 않았더라면, 아침식사를 마치고 비가 쏟아지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도 평소와 다름없이 아무런 깨달음 없는 게으른 주말 아침을 보냈을지 모른다. 그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지지 않았더라도 나는 똑같은 시간 똑같은 장소에 있었겠지만, 그날의 기억은 일점일획도 남지 않고 허공으로 증발되어 버렸을 것이다. 그곳은 분명 같은 자리였겠지만 결코 똑같은 자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다시 돌아온 자의 제자리는 다를 수밖에 없을 테니까. 정신을 가다듬고 나는 다시 신께 기도했다. 진부할 정도의 익숙함을 낯섦의 검으로 쪼개어 누구나 알 수 있지만 아무나 알 수 없는 진리를 깨달을 수 있기를. 제자리에 고여있는 자가 아닌 매일 제자리로 돌아온 자가 되기를.
수년이 지난 지금 그날의 기억은 여러 빛바랜 기억의 더미 가운데 선명하게 빛나는 보석으로 남아 있다. 바람으로 시작된 그날의 기억, 바람이 가져다준 소중한 깨달음, 그리고 내 영혼의 기도. 오늘도 나는 바람을 기다린다. 나지막한 풍경 소리와 구수한 버터 향을 실어올 그 바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