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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진정성

천쉐 저, ‘오직 쓰기 위하여‘를 읽고

by 김영웅

작가의 진정성


천쉐 저, ‘오직 쓰기 위하여‘를 읽고


글쓰기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쓰고 싶은 욕망은 여전히 가득했지만 정체되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늘 비슷한 류의 글을 양산하는 복사기가 된 것 같았다. 총은 계속 쏘고 싶은데 총알도 떨어지고 총도 노후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뭔가 쇄신이 필요했다. 그즈음이었다. 나는 서점에 기웃거리며 작법서들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작가들이 어떻게 글을 쓰는지 알고 싶었다. 어떤 비밀스러운 팁이 있다면 얼른 습득하고 싶었다. 정체된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서너 권 정도 읽었을 때 알았다. 시중에 깔린 글쓰기 책들 혹은 작법서들은 천편일률적인 내용으로 도배된 채 수십 종이 넘게 출간되어 있다는 것을. 그 이후로 그런 책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서점에서 훑어보는 정도로만 소화하기 시작했다. 그걸로 충분했다.


작법서들을 읽으며 나름대로 내린 결론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작법서는 작법을 잘하기 위한 목적을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는 것. 그런 책들은 글쓰기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이 가나다를 배우는 용도, 혹은 이미 글쓰기 경험이 다년간 쌓인 사람들이 공감과 위로를 받는 용도, 이렇게 두 가지 용도로 이용하면 된다는 것. 즉 글쓰기를 어느 정도 하다가 나처럼 어느 순간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에겐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 이런 결론에 이른 나는 서점에 가도 작법서는 읽지 않게 되었고, 갈증이 느껴질 땐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들을 정독하고 필사하는 방법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이런 패턴은 지속되고 있다.


문지혁 작가의 유튜브 채널을 보다가 알게 된 작법서 한 권에 내 마음이 이상하게 끌렸던 건 나도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으며 가방에 챙긴 다섯 권의 책 중 당당히 포함되기도 했고, 실제로 탑승하자마자 읽어버린 첫 책이기도 했다. 바로 이 책, 처음 들어보는 작가 천쉐의 ‘오직 쓰기 위하여‘이다.


상업성이 가미된 듯한 인상을 주는 ‘글쓰기의 12가지 방법‘이라는 부제를 가진 책이라는 사실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자신이 체득한 글쓰기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고 나눈다. 목차만 봐도 그 조언들은 쉽게 알 수 있다. 경력 30년 작가의 내공이랄까 연륜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겐 12가지 비법서가 아니라 천쉐라는 작가의 글쓰기를 향한 진심이 담긴 책으로 읽혔다. 부제보다는 제목이 이 책의 메시지를 더 잘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직 쓰기 위하여 저자는 자기 몸 관리, 마음 관리, 시간 관리, 관계 관리를 성실하고 지속적으로, 무엇보다 현재진행형으로 해 내고 있는 작가다. 치열하다고도 독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만큼 저자는 삶의 중심에 글쓰기를 두고 있다. 이런 여러 관리들을 어떻게 해 내는지 자신의 경험을 아낌없이 나누는데, 이것들이 비법이라면 비법이라 할 수 있겠다.


편집 문제인지 저자의 글쓰기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의 이 책 한 권에는 중첩되는 내용들이 여러 번 반복되는데, 이를 상술이라고 보는 독자들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 눈엔 저자의 진정 어린 조언이 강조되는 부분으로 보였다. 글쓰기 비법을 전수하기 위한 책이 아닌, 저자가 작가가 되어가는 여정을 진솔하게 담은 책이라는 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진정성은 시중에 나온 천편일률적인 작법서들보다도 내겐 더 명징한 메시지로 와닿았다.


저자가 강조하는 점이 내겐 크게 두 가지로 보였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두 가지라 해도 무방하다. 하나는 자기 관리, 즉 글쓰기라는 지난한 여정을 묵묵히 걸어 나가는 동안 빈번하게 마주하는 절망, 좌절, 정체위기 등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스스로 잘 지켜내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믿어야 하고 힘든 시기를 견뎌야 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 뿐만이 아니다. 마음과 생각이 그렇게 건강하기 위해서는 몸도 건강해야 하므로 기본적인 수면 시간과 작업 시간, 운동 시간을 성실하게 사수하는 것의 중요성을 저자는 강조한다.


다른 하나는 경제적 수입에 관련된 부분이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시장에서 장사하는 일)에서도 글쓰기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발전시켜 지금은 전업작가가 된 저자는 글쓰기를 위해 해 내야만 하는 여러 관리 중에서도 생계유지를 위해 버는 돈의 액수를 어느 정도 정해 놓고 그 이상 욕심부리지 않는다고 한다. 저자는 글쓰기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하나는 저자가 주업이라고 여기는 소설 쓰기이고, 다른 하나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쓰는 여러 다양한 글들, 이를테면 인터뷰, 여행에세이, 자서전 대필, 칼럼, 기타 청탁받은 원고들, 그리고 강연들로 이뤄진다. 저자는 소설 쓰기를 지속하기 위해 다른 글들로 돈을 버는 일이 필수이나 그것이 절대 우선순위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돈을 좇는 작가가 아니라 진짜 소설 쓰는 게 좋고 그것으로 삶의 의미를 발견하여 행복과 만족을 얻는 작가로 살아가는 저자의 진정성을 단적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천성 작가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저자가 아름답게 느껴졌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결혼하고 직장도 가지고 있으며 아이까지 키워야 하는 작가들에게는 저자의 조언들이 그럴 수도 있겠다, 정도로만 들릴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인데, 나처럼 이 책을 읽으며 비법 찾기가 아니라 진정성에 매료된다면 이조차도 큰 문제는 아니라 생각한다. 저자의 작가로서의 철학과 삶과 미래를 응원한다. 저자의 진정성만큼은 나도 꼭 본받아야 할 점일 것이다.


#글항아리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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