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버리기 위한 여행, 길을 잃기 위한 독서
무언가를 얻기 위한 여행이 아닌, 무언가를 버리기 위해 떠나는 여행. 여행은 일이 아닌 쉼이다. 그래야 한다. 일은 무언가를 계속 채우는 것이다. 쉼은 무언가를 비워내는 것이다. 현대는 잉여 시대다. 사람들과의 소통마저도 과잉인 시대다. 과잉 소통 시대에 필요한 건 고독이다. 혼자 있을 줄 아는 힘. 외로움으로 치닫지 않고 고독을 자발적으로 찾고 누리는 힘.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용기다. 무언가를 버리고 비워내는 행위는 고독의 시간에만 가능하다. 우리가 여행이라고 부르는 시간, 비로소 쉼을 얻을 수 있는 시간 말이다.
길을 찾기 위한 독서가 아닌 길을 잃기 위한 독서. 우리가 불안하고 공허한 까닭은 길을 찾지 못해서가 아니다. 길이라고 믿어왔던 것이 길이 아닌 것 같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내가 믿고 따르던 진리들이 힘을 잃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너무 많은 길이, 내가 찾지도 않고 구하지도 않았던 길이 내 손에 내 머리에 내 발에 가득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길을 잃을 필요가 있다. 허무는 시간이다. 무너지는 시간이다. 파괴하는 시간이다. 새로 짓기 위해서, 새 창조를 위해서 필요한 시간이다. 파괴와 창조 사이에는 지난한 시간이 존재할지 모른다. 그 시간을 견뎌낼 수 있다면, 인내할 수 있다면, 나아가 즐길 수 있다면 바로 그 순간 자유가 무엇인지 결과가 아닌 과정이 왜 소중한지 무엇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인지 알게 될지도 모른다. 길을 잃은 상실감은 잠시다. 두려운 건 혼란일 테지만, 그 혼란은 노예가 해방될 때 필연적으로 따르는, 뒤늦은 변화의 시작일 뿐이다. 길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변화를 갈망하자. 무너뜨리고 새로 짓기를 즐기자. 심장이 쉬지 않고 계속 뛰게 하자. 움직이자. 항상 깨어 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