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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 그러나 앞으로 나아가는 삶

문지혁 저, ‘고잉 홈‘을 읽고

by 김영웅

불확실성, 그러나 앞으로 나아가는 삶


문지혁 저, ‘고잉 홈‘을 읽고


’소설 쓰고 앉아 있네’라는 제목의 소설 작법서로 처음 만난 문지혁 작가의 소설이 궁금했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초급 한국어‘를 고를까 하다가 작년에 출간된 ’고잉 홈‘을 이번 추석 연휴에 읽을 책으로 골랐다. 이유는 다분히 즉흥적이었다. 책에 실린 첫 단편이 뉴욕발 한국행 비행기 안에서 쓰였다는 설정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 한국발 엘에이행 비행기 안에서 이 책을 읽으며 이렇게 감상을 남기고 있다. 비행기 안이라는 비슷한 상황 덕에 왠지 책에 몰입할 수 있을 거라는 내 즉흥적인 예감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책에 실린 아홉 편의 단편소설에 대한 짧은 감상을 남긴다.


1. 에어 메이드 바이오그래피

책을 여는 작품으로 적절하다는 생각이다. 특히 ‘고잉 홈’이라는 제목의 소설집 표제작으로 아쉬움이 전혀 없었다. 내가 작품 속 화자처럼 비행기 안에서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심드렁한 것 같으면서도 미국 이민 1세대이자 화자의 장인어른인 호철의 인생을 가볍지 않게 담아냈다는 점이 훌륭하게 다가왔다. 그러면서도 화자뿐 아니라 그의 아내, 그리고 호철의 캐릭터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도록 세밀하게 조율한 흔적이 느껴지는, 다시 말하자면, 대충 쓴 것처럼 보이기 위해 치밀하게 설계한 것 같은 작가의 애씀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2. 고잉 홈

소설집 제목과 같은 제목의 단편소설인데, 다 읽고 나서 내가 뭘 놓친 게 아닌가 싶은 생각, 아니 뭘 읽은 거지? 하는 생각이 남았다. 소설은 인터넷 광고에 뜬 실험에 참여하며 표면적으로는 님도 보고 뽕도 따는 주인공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카고에서 뉴욕으로 가야만 하는 가난한 주인공은 현금으로 오백 달러를 주면서 공짜로 태워준다는, 단 차 안에서 이야기를 계속해야 한다는 조건의 실험에 참여하게 된다. 주인공에게 맡겨진 일은 인공지능이 쓰는 소설에 인간적인 재료를, 그러니까 자신의 고유한 이야기를 제공하는 것뿐이었다. 그것만 하면 차 안에 설치되어 모든 소리를 듣고 있는 컴퓨터 속의 인공지능 작가가 실시간으로 소설을 써낸다는 것이었다. 주인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현재 자신의 상태와 마찬가지로, 의아한 기분으로 뉴욕에 아무 탈 없이 도착하게 되는데, 중간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가 깨었을 때 여전히 꿈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광경을 보고 다시 잠이 든 이상한 경험 말고는 딱히 이변이 발생하지 않았다. 뭔가 사건이 벌어질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아 김이 새는 듯하게 설정한 것도 작가의 설계이리라 짐작한다. 아니면 내가 전혀 헛다리를 짚고 있는 걸지도. 인공지능이 쓴 소설은 마지막 문장을 남기며 끝을 맺었고, 차는 홀연히 떠났으며, 뉴욕에 도착한 주인공의 손에는 약속대로 오백 달러 현금이 들려있었다. 그는 무엇인가에 홀린 듯한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손에 들린 현금을 보고 꿈이 아님을 알았을 것이다. 아니면 이 모든 게 가짜이거나. 마치 잃어버린, 종이로 접은 유니콘처럼.


3. 핑크 팰리스 러브

뒤통수를 맞은 듯한 섬뜩함을 느낄 수 있는 공포 (혹은 심령?) 소설이다. 결혼 1주년을 맞이하여 한파가 내린 뉴저지를 떠나 따뜻한 남쪽 나라 플로리다로 3박 4일 기념 여행을 떠난 젊은 부부는 핑크빛 건물의 돈 세사르 호텔에 묵게 된다. 거기에는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었다. 13층에서 묵었던, 사랑하는 연인을 잃고 그 기억을 담아 그 호텔을 지은 장본인이기도 한 토마스라는 사람이 유령으로 자주 출몰한다는 것이었다. 한편 주인공 부부는 둘 다 서로를 반려자로 받아들이기 전에 사귀던 연인이 있었다. 그들은 이 호텔에서 각자의 옛 연인을 만나게 된다. 작품 속 화자는 공교롭게도 13층에서 3일 동안 연이어 옛 연인을 아내 몰래 독대하게 되고, 화자의 아내 또한 작품에는 묘사되지는 않지만 (일인칭 주인공 시점의 소설적 장치의 한계라고 볼 수도 있지만, 문지혁 작가는 그 한계를 십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이 감각하지 못하는 것들은 사각지대로 처리되기 때문이다), 남편이 모르는 사이에 옛 연인을 만난다. 마지막 밤에는 평소 술을 즐기지 않던 아내가 독한 위스키를 마시고 충동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데, 그 이유를 듣고 화자인 남편은 소스라치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옛 연인과의 기괴한 만남 때문에 괴이한 경험을 하고 있었는데, 아내에게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런 공포소설은 스포가 쥐약이므로 그 사건이 무엇인지는 작품을 직접 읽어보기 바란다.


4. 크리스마스 캐러셀

상실에 대한 슬픔도 느껴지지만 은근히 가슴 따스해지는 소설이다. 어머니를 난소암으로 잃은 주인공 청년은 아버지의 재혼 직후 여전히 계모를 아주머니라고 부르는 상태에서 미국으로 여행을 오게 된다. 고모네가 있는 뉴저지에서 며칠을 묵으면서 이곳저곳 여행을 하려는 심산이었다. 고모네는 공개입양을 하여 열두 살짜리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생일인 에밀리의 소원을 이루어주기 위해 고모네는 크리스마스에 플로리다 올랜도에 위치한 디즈니월드로 놀러 가기로 한다. 주인공도 덩달아 가게 된다. 에밀리는 아픈 사연이 있었다. 입양하기 전의 부모 사이에서 있었던 일에 관해서였다. 혼자 돌아다니겠다며 고집을 피우던 에밀리를 잃어버리게 된 일행은 에밀리를 찾아 나선다. 구름 같은 인파 속에서 가까스로 찾은 에밀리는 회전목마(캐러셀)를 타고 있었다. 그곳은 이전 부모와 마지막으로 함께 있었던 곳이었다. 에밀리는 과거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고모네로부터 들은 에밀리에 관한 이야기 덕분에 에밀리의 심정을 알아챈 주인공은 에밀리와 함께 회전목마를 타면서 문득 집에 돌아가면 계모를 아주머니가 아닌 엄마라고 불러볼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뜻밖의 장소, 뜻밖의 사건을 통해 뜻밖의 결론을 얻게 되는 뜻밖의 과정이 상당히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작품을 직접 읽어보길 바란다. 충분히 가치가 있을 테니.


5. 골드 브라스 세탁소

미국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러 유학을 떠난 '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청년의 이야기다. 미국 유학생의 일상을 경험해보지 못했다면 쓸 수 없는 부분들이 있어서, 그리고 나 역시 미국 생활 초창기에 겪었던 경험들과 비슷한 부분들이 많아서 공감이 많이 되었다. 골드 브라스 세탁소는 이민 1세대가 운영하는 곳이다. 주인공 영 역시 유학생들이 대부분 거치는 한인교회의 커뮤니티를 통해 인간관계를 쌓게 되는데, 어느 날 실수로 '수'라는 청년의 바지에 김치찌개를 쏟게 되어 부랴부랴 세탁소를 찾게 되면서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된다. 수 차례의 좌절 끝에 세탁수 주인장을 인뎁스 인터뷰 대상으로 삼아 쓴 '스토리'가 훌륭한 평가를 받게 되면서 일상의 조그만 성취와 행복을 느끼는 영의 이야기는 미국 유학생들의 마음 저변에 깔린 불안과 우울을 극복하며 희망의 메시지를 선사하는 하나의 견고한 디딤돌이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Gold Brass Cleaners가 God Bless의 의미를 띠게 되는 장면 (이 설정은 처음부터 세탁소 이름을 왜 저렇게 지었는지 알 수 있게 되는 깜짝 장치였음을 드러낸다)은 특히 주인공 영만이 아닌 모든 미국 유학생들에게 안겨주고 싶은 저자의 축복 담은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또한 이민 1세대가 내린 뿌리가 미국에서 생활하는 유학생들에게 은근한 위로와 힘이 된다는 숨은 메시지도 담겨 있는 것 같다. 세탁소 주인장 같은 어르신들과의 만남이 많은 미국 유학생들에게 선물로 주어지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져보게 된다.


6. 뷰잉

뷰잉은 고인을 마지막으로 대면할 수 있는 장례 절차의 마지막 순서에 해당된다. 미망인이 된 맹 선생님과의 만남이 시작되었던 곳도 뷰잉이었다. 한 사람의 죽음, 그리고 새로운 만남의 시작. 주인공은 한국어 전공을 하게 되는 미국 유학생이다. 대개 한인 교회에서 한글학교를 하게 되는데 (나 또한 인디애나주에 거주할 때 다니던 교회에서 한글학교가 운영되었다. 내 아들도 그곳에서 한글을 배웠다), 주인공은 맹 선생님이 부교장으로 계시는 한글학교에서 맹 선생님의 권유로 교사로 봉사하게 된다. 거기에서 가정 불화와 ADHD로 의심되는 한 아이와의 마찰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은 후 주인공은 한글학교만이 아니라 교회까지 등지게 되는데, 마침 늘 식사와 라이드를 제공해 주시던 맹 선생님이 쓰러지시기도 해서 그와의 만남도 끊어지게 된다. 미국 유학 초창기 시절의 불안과 혼란이 저변에 깔린 주인공에게 맹 선생님은 하나의 빛으로 작용했었다. 그런데 그런 빛과의 교류가 끊어진 것이었다. 주인공은 학업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강사롤 일하게 되면서 미국 유학 시절을 회상한다. 맹 선생님이 문득 보고 싶어진다. 못다 한 이야기들도 많았고 물어보고 싶은 것들도 많았는데 말이다. 그러나 이미 맹 선생님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이 회고록 역시 맹 선생님의 부고 소식을 듣고 나서 써 내려간 것이다. 아쉬움이 짙게 깔린 작품이다. 주인공의 급하고 슬프고 어떻게 할 수 없어하는 마음이 잘 느껴졌다. 이 책에 실린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미국 유학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훨씬 더 공감을 깊게 할 수 있을 것이다.


7. 나이트호크스

이 작품을 읽고 이 글을 쓰기 전, 인터넷으로 에드워드 호퍼의 나이트호크스를 검색했다. 주인공 부부가 응급실 다녀온 후 다이너에서 아주 늦은 저녁식사를 했던 장면을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화면에서 보이는 그림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밝은 느낌이었다. 작품 속에서 느껴진 뉴저지의 눈 내리는 밤은 내겐 음산함마저 주었기 때문이다. 그림에서 가장 어두워 보이는 존재는 이 소설 속에서 손목을 다쳐 응급실에서 꿰맨 아내가 자기 자신의 모습이라도 여겼던, 뒷모습의 남성이다.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이 소설의 진짜 주인공은 아내일지도 모른다고. 소설 속 화자는 이야기를 끌고 갈 뿐, 정작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내의 마음일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그 마음은 비단 아내의 것만이 아니라 한인들, 나아가 소외된 소수자들의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 마음은 여러 층위를 가질 것이다. 그리고 남편인 화자도, 그의 아내도 미국으로 오기 전에 가졌던 핑크빛 꿈들이 정작 미국에 와서는 대부분이 모래가 되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텅 빈 눈으로 한숨을 쉬며 자기와 세상을 탓하기도 하며 인생을 돌아보았을 것이다. 저자의 의도가 느껴지는 듯했다. 이 소설의 배경으로 뉴욕, 한 해의 마지막과 또 다른 한 해의 시작이 중첩되는 시점으로 잡은 이유도 알 것 같았다. 화려한 배경, 시끄러운 축제 분위기를 뒤로 한 채 마치 그것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마치 나이트호크스의 뒷모습의 남자처럼, 소외된 듯한 한인 부부에게 드리워진 애환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하기 위해서였다고. 그리고 마지막 화자의 대사에서 나는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라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다층적인 애환이 저변에 깔려 있더라도 그들의 삶은 꾸역꾸역 지속되는 것이다. 해피 뉴이어!


8. 뜰 안의 볕

다양성과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작품이다. 늘봄이라는 이름의 청년은 기독교 신학도다. 한국에서의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며 근본주의적 보수 색채가 강한 신학교와 목회 현장을 떠나 미국에서 목회학 석사 과정에 다니고 있다. 대형교회의 전도사로 일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미래에 대해 불투명한 상태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담임목사님은 스태프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도 하셨지만, 신학이나 목회 현장에 계속 몸을 담아야 하는지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자신의 성정체성조차도 모호하게 여겨질 정도다. 그러던 중 자신을 도와주기도 했던 한 집사가 담임목사와 단 둘이 차 안에 있는 현장을 목격하기도 하고, 마침 그 순간 목사의 사모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기도하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되기도 한다. 모든 게 혼란스럽기만 하다.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는 공동 공간인 정원에 입주민 중 하나인 유대인이 자신의 명절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어떤 구조물을 지어놓았다는 이유로 다른 입주민인 중국인이 항의하는 상황을 겪게 된다. 소설은 입주민 단체 회의에 참석하게 되는 주인공이 어두워져 가는 시간에 반딧불이의 빛을 보며 어떤 계시를 느끼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데, 문득 늘봄은 자신의 이름의 의미가 '올웨이즈 스프링'이 아니라 '이터널 스프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나의 계절이 오고 또 가지만, 밤은 모든 계절에 공평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늘봄의 생각도 뼈가 있어 보인다. 여러 다양한 목소리들이 존재하고 많은 것들이 변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언제나 변하지 않고 동일한 그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해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제목 뜰 안의 볕의 의미도 이런 것을 함축하는 것 같다.


9. 우리들의 파이널 컷

지적 장애인인 아버지를 상실하고 다시 찾는 딸의 이야기다. 다시 찾았을 땐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지만, 아버지의 유품으로 미루어 보아 딸에 대한 사랑을 끝까지 간직했음을 알 수 있는 가슴 짠해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품은 화자를 포함한 아마추어 네 명이 영화를 한 편 만들고자 하는 과정을 통해 위에 소개한 딸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작품에서도 미국과 한국 사이의 지리적 괴리와 심리적 괴리가 다뤄진다. 아버지가 지적 장애인이라는 점은 이 괴리를 더욱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듯하다. 화자 역시 아버지를 잃은 사람이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아버지가 남긴 유품 아닌 유품이 플레잉 카드였다. 서로 다른 두 아버지가 남긴 서로 다른 카드들. 아버지를 상실한 사람끼리의 공감과 소통의 상징일까. 작품 마지막 장면에서 화자는 딸의 아버지의 유품 중 백 장이 넘는 공중전화카드를 자신이 가진 플레잉 카드들과 섞어서 카드 게임을 하자며 카드를 그 딸에게 건넨다. 그리고 소설은 끝을 맺는다.


나가며

소설가의 소설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다. 치밀한 설계와 그렇게 설계된 서사의 전개, 인물의 설정과 그들의 심리 묘사, 그 와중에서도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 돋보였다. 이 책에 실린 아홉 편의 단편소설들은 공통점을 가진다.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국 유학 생활을 짧게 경험했던 저자의 세밀한 관찰과 공감능력이 작품 곳곳에서 구체적인 묘사에서 빛을 발한다. 미국 생활을 경험해보지 못한 독자들은 아마도 쉽게 놓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아서, 그래서 이 책의 가치를 온전히 알아채지 못할 한국 독자들이 많을 것 같아서 읽는 내내 아쉽다는 생각도 했다.


잠시 가족과 시간을 함께 하기 위해 미국에 방문한 내게 이 책은 묘한 공감과 감동을 주었다. 미국 11년 생활을 나도 내가 쓸지도 모를 미래의 소설 속에 잘 녹여보리라는 막연한 계획도 가져보게 된다. 굳이 미국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 읽어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지만, 특별히 미국 생활 (관광 말고 실제로 거주한 경험)을 해본 사람들은 꼭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이민자들의 애환을 공감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앞으로 꾸역꾸역 나아가는 삶을 볼 수 있고 희망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몇 년 전에 읽은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미국 이민 1세대 작가가 쓴 소설집이 떠오른다. 함께 읽어도 좋겠다.


#문학과지성사

#김영웅의책과일상


* 황숙진 저, 마이너리티 리포트': https://rtmodel.tistory.com/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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