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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박과 대박 사이: 작가, 운명, 기적

폴 오스터 저, '빵 굽는 타자기'를 읽고

by 김영웅

쪽박과 대박 사이: 작가, 운명, 기적


폴 오스터 저, '빵 굽는 타자기'를 읽고


이 책을 손에 집어든 건 비단 문지혁 작가를 작가로 만든 문장, “의사나 경찰관이 되는 것은 하나의 진로 결정이지만, 작가가 되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선택하는 것이기보다 선택되는 것이다”를 직접 읽어보고 싶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제목 ‘빵 굽는 타자기‘의 원제 ’hand to mouth'가 내 관심을 빼앗았기 때문이다. 원제는 말 그대로 하루살이를 뜻한다.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사는 삶 말이다.


작가는 선택하는 게 아니라 선택되는 것이라는 문장을 잇는 다음 문장은 다음과 같다. 나는 이 부분이 원제의 의미를 잘 드러내는 동시에 폴 오스터의 담백한 심정을 잘 묘사한 것이라 생각한다.


"글 쓰는 것 말고는 어떤 일도 자기한테 어우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평생 동안 멀고도 험한 길을 걸어갈 각오를 해야 한다. 신들의 호의를 얻지 못하면, 글만 써서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 비바람을 막아 줄 방 한 칸 없이 떠돌다가 굶어 죽지 않으려면, 일찌감치 작가가 되기를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이해했고 각오도 되어 있었으니까, 불만은 없었다. 그 점에서는 정말 운이 좋았다. 물질적으로 특별히 원하는 것도 없었고, 내 앞에 가난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겁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원한 것은 재능 (나는 이것이 내 안에 있다고 느꼈다)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 그것뿐이었다."


이어지는 문장은 작가의 이중 직업에 대해서다. 글만 쓰고 사는 건 금수저로 태어나거나 어떤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논리가 이 문장들뿐 아니라 이 책 저변에 깔려 있다. 이 일관된 논리를 작가는 선택되는 것이라는 문장과 연결시키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필연적으로 탄생하게 된다.


“작가는 쪽박 차게 되는 운명을 지닌 자들이다.”


이 간결한 문장은 전 세계 거의 모든 작가들이 공감할 수 있고, 또 많은 경우 자신의 삶에서 직접 체험한 적이 있지 않을까 한다. 내가 알기론 저 유명한 도스토옙스키도 생계형 작가였다. 폴 오스터 역시 시대만 다를 뿐 같은 족속에 속하는 작가였던 것 같다. 이 책은 폴 오스터의 자전적 이야기로써, 그의 작가로서의 시작과 초창기 무명시절의 일대기를 에세이로 쓴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두 가지 단어가 남았다. 하나는 자유, 다른 하나는 믿음이다. 두 가지는 모두 폴 오스터의 작가 초창기, 아니 그의 젊은 시절을 모두 아우르는 키워드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자유라 함은 선택의 기로에서 그의 태도를 말한다. 이는 두 번째 단어인 믿음이 전제되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십 대 후반과 이십 대 초반에 인생의 연륜이란 걸 쌓을 순 없으므로 폴 오스터의 자유로워 보이는 선택은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라기보다는 근거 없는 믿음, 혹은 객기가 기반이었다고 보는 게 더 적절하게 느껴진다. 그는 어떤 규칙이나 의무에 묶여 있길 싫어했다. 자기 옷이 아닌 옷을 입는 걸 참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청소년 시기를 갓 벗어난 자가 어떤 옷이 자기 옷인지 아닌지 분별하기란 어려웠겠지만. 어쨌거나 그는 수학적으로 필요한 일이 아닌 영혼이 끌리는 일을 언제나 선택했다. 가까운 미래에 생계가 어려워지리라는 수학적인 계산 결과가 나와도 그는 입에 풀칠을 하면서도 읽고 쓰는 일을 선택했다. 어찌 보면 폴 오스터는 그의 현재 모습이 아닌 미래 모습에 대한 믿음을 그때부터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2024년에 타개한 폴 오스터는 전 세계적인 대작가 반열에 그의 이름을 당당하게 올렸기 때문이다.


이제 그가 실제 살아온 자유분방한, 동시에 현재 모습이 아닌 미래의 자기 모습에 대한 믿음을 기반한 삶을 "작가는 쪽박 차게 되는 운명을 지닌 자들이다"라는 문장과 연결시키게 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다.


"폴 오스터는 작가는 쪽박 차게 되는 운명을 지닌 자들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그 삶을 선택했고 그렇게 살아냈다. 그리고 보란 듯이 대박을 터뜨리는 운명의 자들 중 하나가 되었다."


만약 폴 오스터가 무명으로 생을 마감한 작가였다면 이 책은 출간되지도, 아니 써지지도 않았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다. 이런 생각에 이르니, 이제야 보인다. 자신의 하루살이 시절을 각색하여 책으로 만들었다는 건 그렇게 해도 충분히 괜찮기 때문이었다는 것. 즉, 무명 시절 하루살이 생활을 솔직하게 꺼내보아도 더 얻었으면 얻었지 잃을 게 없기 때문이었다는 것. 말하자면 성공한 작가 스스로의 입을 빌린 자신의 어려운 시절 이야기는 오히려 작가의 생을 입체적으로 만들고 인간미를 불어넣어 더욱 멋진 작가로 각인시키는 역할을 충실히 담당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을 읽으며 폴 오스터의 초창기 시절을 현재 진행형으로 겪고 있는 많은 작가들은 위로와 공감을 얻는 동시에 희망과 용기도 얻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전업작가라는 단어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이 세상에 속한 단어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요원한 직업인 것이다. 그것을 꿈꾸는 게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무명작가 혹은 초보 작가 시절을 살아내고 있는 모든 작가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폴 오스터처럼 자유와 믿음 (가난과 경험을 필수적으로 전제한다)의 자세로 삶을 살아가면 언젠간 성공한 작가가 되리라는 바람은 허황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운명처럼 폴 오스터에게 찾아온 만남과 기회의 기적이 전혀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말이다.


#열린책들

#김영웅의책과일상


* 폴 오스터 읽기

1. 뉴욕 3부작 중 유리의 도시: https://rtmodel.tistory.com/1788

2. 뉴욕 3부작 중 유령들: https://rtmodel.tistory.com/1791

3. 뉴욕 3부작 중 잠겨 있는 방: https://rtmodel.tistory.com/1794

4. 빵 굽는 타자기: https://rtmodel.tistory.com/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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