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규철 저, '그림자를 말하는 사람'을 읽고
그림자로 그림자의 주인을 바라볼 때
안규철 저, '그림자를 말하는 사람'을 읽고
몇 개월 전 '사물의 뒷모습'이라는 에세이집을 읽고 안규철 작가의 글쓰기에 매력을 느꼈다. 대상을 관찰하는 그의 시선, 그 이후에 따라오는 성찰, 그리고 사유의 마침표를 찍는 그의 통찰이 짧은 글 안에 잘 녹아 있었다. 제목에 나온 뒷모습이라는 단어도 마음에 쏙 들었는데, 나는 사람의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더 많은 말을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듬어지지 않고 숨길 수 없는 한 사람의 본연의 모습이 뒷모습에 많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사물의 뒷모습이라니. 그의 시선은 사람에 머물지 않는다. 생명을 가진 것들에 머물지도 않는다. 세상 모든 것들의 뒷모습을 보며 사유하는 작가 안규철의 그다음 책이 나는 몹시 궁금했다.
제목이 '그림자를 말하는 사람'이다. 이럴 수가! 뒷모습에 이어 내가 늘 마음에 품고 있는 단어 하나가 그림자다. 뒷모습과 그림자는 내게 있어 비슷한 이미지다. 여백이랄까, 무랄까. 말해지지 않는 말, 보이지 않고 보이는 그 무엇. 어떤 통제할 수 없는 사물 혹은 사람 본연의 모습이 뒷모습과 그림자에 담긴다고 나는 믿는다. 저자 역시 '책머리에'에서 정확히 그 점을 짚는다. '그림자를 말하는 사람'은 '사물의 뒷모습'의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다고. 사물의 뒷모습을 말하는 것은 사물의 그림자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 회색의 다채로움을 말하는 것이라고. 낯선 이의 글에서 우연히 내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온 문장을 읽어낼 때의 그 신비한 쾌감을 나는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안규철 작가는 미술가다. 이 점이 나는 그의 책을 읽을 때 절대 무시하면 안 되는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글쓰기를 하나의 예술로 본다면, 작가는 글쓰기(글)를, 음악가는 음악(소리)을, 미술가는 미술(그림이나 조각)로 본인의 마음과 생각을 경유한 그 무언가를 표현한다. 글과 소리와 그림은 예술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지만, 서로 침범할 수 없는 고유한 영역도 가진다. 그런데 저자는 글과 그림의 영역을 모두 아우르는 작가인 것이다. 이렇게 두 세계를 모두 관통할 수 있는 눈을 가지고 그 세계에서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는 저자의 글은 뭔가 다르지 않겠는가.
독서란 한 작가의 고유한 시선을 함께 한다는 의미도 지닌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즐거웠다. 부러운 마음도 한가득이었지만, 나는 나대로 고유한 시선과 통찰을 살리면 된다는 용기도 얻을 수 있었다.
참고로, 이 책은 '안규철의 내 이야기로 그림 그림, 그 세 번째 이야기'인데, 첫 번째 이야기가 아직 책장에 꽂혀 있다. 아껴서 읽을 작정이다.
#현대문학
#김영웅의책과일상
* 안규철 읽기
1. 사물의 뒷모습: https://rtmodel.tistory.com/1992
2. 그림자를 말하는 사람: https://rtmodel.tistory.com/2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