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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 힘

by 김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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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 힘


비가 오면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커튼처럼 무거운 비도, 암흑 같이 짙은 안개도 가리지 못하는 것들. 더 이상 살아 있지 않은 것들, 아니 기억의 저편에서 여전히 가느다란 숨을 쉬고 있는 것들. 세상의 모든 상실은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는 걸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내리는 비는 내게도 내려 상실의 정령들을 다시 불러낸다.


가는 모래 무덤이 비에 젖으면 단단해지듯 내 마음도 비가 내리면 처음엔 고집 센 아이처럼 굳어진다. 유연함은 사라지고 귀는 꽉 막힌 채 티눈처럼 박힌 마음의 상처가 발톱을 드러내어 내 각막을 사정없이 할퀴기 시작한다. 세상은 비뚤어져 보이고 나는 어느새 곁눈질하며 심통이 단단히 난 상태로 씩씩거리는 아이가 된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곧이어 잊혔던 슬픔이 깨어나면 나는 일 초도 안 되는 사이에 벌써 그때 그 장소로 가 있다. 내 조절능력을 가뿐히 압도하는 그 기분에 휩싸일 때마다 나는 나를 옥죄어오는 지독한 슬픔에 그냥 몸을 내어 맡긴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거니와, 저항해 봤자 그것 때문에 더 깊이 패이는 구덩이로 말미암아 어두운 곳에 박혀있는 시간이 더 길어진다는 걸 체득했기 때문이다. 때론 지혜란 주체로서 어떤 해결책을 강구하는 민첩한 적극성에 있지 않고, 객체로서 그저 주위의 흐름만을 느끼며 일절 저항하지 않는 수동성에 있다. 이 수동성은 적극성보다 더 치열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때론 어떤 것을 하는 것보다 더 힘든 법이다. 스스로를 참아낸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를 참아내는 것보다 언제나 더 어렵다.


그렇게 슬픔에 스스로 감금된 상태로 가만히 있다 보면 금세 내 코는 비가 올 때만 맡을 수 있는 특유의 대지의 냄새에 길들여진다. 간간히 바람에 실려 내 이마를 때리는 빗방울에 나의 촉각이 살아나고, 덕분에 난 다행히 살아있음을 느끼고 감사하게 된다. 회색빛 하늘 아래 눈물과도 같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거리를 바라보는 내 눈은 이내 굴절이 깊어지고, 난 조심스레 안경을 벗는다. 나도 내 이마도, 그리고 일상에서 내 눈이 되어주던 안경도 함께 젖는다. 비와 하나가 된다.


비는 다른 소리들을 잠재우는 힘이 있다. 평소에 들리던 아이들의 뛰어노는 소리도, 방 안에서 들리던 시계 초침 소리도, 이따금 지저귀는 새소리도, 저만치에서 아득하게 들려오는 자동차와 기차의 경적 소리도 쉬지 않고 들려오고 있었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라고 만다. 내 일상을 이루던 백색소음들을 잠재우고 자신의 소리로 대체하는 비의 단독 공연 시간. 이 공연은 많은 죽음의 향연이다. 구름이 빗방울의 생성이라면, 비가 내리는 것은 빗방울의 죽음이기 때문이다. 구름이 되어 바람을 타고 신선놀음을 하다가 중력에 의해 아래로 아래로 떨어져 맨몸으로 딱딱한 바닥에, 차가운 물 위에, 뾰족한 탑 꼭대기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난다. 비 오는 날 비린내가 나는 것도 그 때문이지 않을까 하고 나는 상상한다. 빗방울의 시체 더미들이 내는, 가끔 토악질이 날 정도로 역하기도 한, 그 죽음의 냄새 말이다.


놀랍게도 이런 빗방울의 시체들이 만물을 소생시키는 힘을 가진다는 역설에 나는 강한 매력을 느낀다. 축축하게 젖은 대기 사이로 가느다랗게 피어오르는 김을 보며 나는 죽어야 사는 것들, 죽었다가 부활하는 것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죽음 뒤 다시 생을 얻어 승천 중인 것이다. 더욱더 미세한 몸으로, 더욱더 가벼워진 몸으로 부활의 과정을 묵묵히 밟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들을 가만히 응시하는 나는 문득 희망을 깨닫고 겸허하고 감사한 마음이 된다. 마침내 나도 부활할 준비가 된다. 죽었다가 살아날 준비가 된 것이다. 자발적 감금 상태로부터 해방될 준비를 비로소 마치게 되는 것이다. 비 때문에 시작된 상실과 슬픔의 여정은 그렇게 다시 비 때문에 끝을 맺게 된다.


상실과 슬픔의 늪이 죽음의 장소가 아닌 부활의 장소라는 것.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면 죽게 되고, 죽기로 작정하면 다시 살 수 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 살아나는 시간이라는 것. 이것이 시공간을 관통하는 비가 가진 전복적인 힘이다. 만물을 소생시키는 힘. 죽음에서 부활을 견인하는 힘. 이 힘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낮은 마음이 되고, 조금 더 단단한 심장이 된다. 그리고 나는 내게 주어진 어떤 테스트 하나를 끝내 통과한 듯한 기분으로 내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다. 비 온 뒤 말끔히 갠 뽀얀 하늘처럼 선명한 눈으로 세상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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