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각적 독서
독서는 공감각적이다. 같은 책을 읽어도 어느 장소, 어느 시간에 읽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효과를 내기도 한다. 나는 책만 읽는 게 아닌 것이다. 나와 책이 있는 시공간도 읽는다. 뿐만 아니다. 나만 읽는 게 아니다. 이 시공간도 나와 함께 책을 읽는다. 공감각적인 독서는 독서의 지경을 넓힐 뿐 아니라 깊이와 풍성함을 더하며 전환의 효과를 낸다.
내가 사는 구축 아파트 뒷산으로 곧장 이어지는 한남대 둘레길을 조금 걷다 보면 한남대로 바로 진입할 수 있다. 사진에 담은 이곳은 내가 자주 찾는 장소이다. 여기서 나는 주로 책을 읽고 글을 쓰기도 하고 사색에 잠기기도 한다.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장소가 누구에게나 한 군데 쯤은 있지 않을까. 비밀도 아니고 모두에게 공개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왠지 이 장소는 처음부터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된 공간처럼 느껴졌다. 처음이지만 익숙한 느낌, 그 아늑한 감성이 좋아서 나는 한가할 때마다 이곳을 찾아 책을 펼친다. 이곳에서 그동안 몇 권의 책을 읽었는지 모른다. 한 번은 두 시간 정도 내리 읽어 한 권을 완독한 적도 있었다. 늘 책을 읽는 내 방 책상에서는 좀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기억된다. 적당한 햇살과 적당한 바람과 적당한 온도. 책을 잠시 무릎에 내려놓고 고개를 들면 보이는 한남대의 아름다운 정경이 모두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나의 독서를, 사색을, 글쓰기를 돕는 것이다. 이 전환이 나는 참 좋다. 방구석에 앉아 게으름을 피느니 이렇게 운동화를 신고 편한 차림에 책 한 권 들고 나와 지금, 여기에서 내게 주어진 시공간을 누릴 수 있다는 것. 일상에 흩어진 행복의 조각을 나는 이렇게 하나 더 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