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는 안전하지 않다

by 김영웅

안주는 안전하지 않다


오래전의 일이다. 늘 성장하기를 원한다고 했고, 우물 안에 갇힌 것 같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도 했으며, 낯설고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여 진정한 자아를 찾겠노라고 다짐까지 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이런저런 합리화를 하면서 끝내 안주하기를 선택했고, 나는 그의 앞에서 아무 말도 해 줄 수가 없었다.


좋은 말과 좋은 글이 좋은 말과 좋은 글로만 끝나는 장면들을 도대체 나는 살면서 얼마나 더 지켜봐야 하는 걸까. 기대는 실망으로, 실망은 구천을 맴돌다가 끝내 나 자신에게로 화살을 돌린다. 이 무한반복에서 나도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이 반복이 나를 강하게 한다는 사실을 무시하지는 못한다. 이게 어쩌면 내가 짊어져야 할 숙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도 하게 된다. 어차피 나는 전하는 사람일 뿐 받아들이고 삶으로 옮기는 건 당사자 몫이라는 생각. 이 생각만이 지금의 나를 위로한다.


안주는 안전하지 않다. 제자리에 고인 사람은 제자리에 있는 게 아니다. 다시 돌아온 자의 제자리만이 진정한 제자리다. 제자리는 흐르는 물과 같아서 결코 정지되거나 고정된 시공간이 아니다. 같은 삶을 두 번 사는 것처럼 현재를 사랑하는 것. 바로 그 자리.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현재를 붙잡고 살아내는 것. 안주 따위에 내 짧은 인생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끝내 안주하기를 택하는 사람을 나는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앞으로도 괴리 속에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큰 고난도 없겠지만 성장도 없을 것이며, 안전하다고 믿겠지만 그곳은 무풍지대로 다가올 것이다. 그렇게 찾던 안정감이 그를 메말라 죽게 만들 것이다. 그는 너무나도 오랫동안 우물 안에 머물렀기에 그곳에서 썩게 될 줄 알면서도 그곳이 가장 편안하게 여겨질 정도로 퇴화했던 것이다. 고인 물은 썩을 수밖에 없다. 고인 물 안에서 있기를 선택하면 썩는 물과 함께 퇴화할 수밖에 없는 법이다.


여백은 신비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당신의 삶에는 여백이 없다. 실낱 같은 빈틈도 찾을 수가 없다. 분주하게 살면 삶을 잘 살고 있다고 믿는가? 당신이 희생한다고 여기는 행위들로 인해 당신은 행복한가? 그러나 공허함 위에 부유하는 당신의 텅 빈 눈은 속일 수 없다. 한 밤에 홀로 스탠드 불빛 아래 앉으면 당신은 외롭고 처절한 불행을 느낀다. 당신의 분주함과 선한 행위들과 희생과 봉사가 당신을 갉아먹고 더욱더 앙상하게 만들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겠지만, 인정해야만 한다. 사실은 사실이니까. 당신은 여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 주체적인 것은 멋진 일이지만 객관이 동반되지 않은 주관은 한 끗 차이지만 반지성의 연장선일 뿐이다. 그런 삶은 쥐구멍에 고개를 처박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걸 공감해 줄 사람은 당신을 아직 잘 모르거나, 깊이 알고 싶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 정도 밖에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늘 당신이 외로운 이유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게 당신이 안주하기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다시 시작하라. 불확실함 속으로 걸어 들어가라. 불안을 끌어안고 그 속에서도 별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라. 그 바닥에서부터 근성을 맛봐야만 한다. 당신이 겪은 고난은 갇혀 있는 작은 우물 위에 떨어진 나뭇잎이 만든 물결일 뿐이었다. 그것을 부풀리고 부풀려서 마치 당신도 바닥을 경험한 것처럼 그동안 스스로를 만들어왔던 것이다. 이것도 어쩌면 당신의 안주하기의 일환이다. 사실을 사실로 보지 않고 혼자서 그럴듯하게, 피해자 코스프레하면서 은폐시킨 것. 그것은 죄다. 진실하게 스스로를 드러내고 발견하라. 거기가 시작이다. 그 시작은 결코 안주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그러나 그때부터가 마침내 당신의 삶을 당신 스스로 주체적으로 살아내기 시작하는 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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